히스토리의 역습

과거의 기억으로 바라본 현재의 차이

by 얄리

내가 원해서는 아니지만 어느 날부터 과거에 한 때에 불현듯 머물러 서서 관찰자의 시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일이 잦아졌다.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를 다시 한번 가 보고 싶고, 이제는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진 옛사람의 현재가 궁금해서 핸드폰의 연락처를 뒤적이게 되는 일도 생겼다. 무엇보다 한 번쯤은 여태껏 살아온 나의 삶에 대해 연대기를 펼쳐 놓고 분석을 하듯 스캐닝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올라왔다. 유치하다고 쳐다보지도 않던 옛 노래 가사가 가슴속에 켜켜이 비늘을 일으켜 세우던 어느 날, 과거를 돌아보기 딱 좋은 날이다 싶었다.


공교롭게도 나의 어린 시절부터 회사생활에 경력이 꽤나 쌓인 시점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충무로와 명동 근방의 공간에서 보냈다. 매일의 일상에서 보는 풍경은 지난 추억이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처럼 묻어있었다. 단지 달라진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어느덧 나를 그 풍경 속으로 집어넣었던 부모님의 그 시절 즈음에 닿아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을 내어 그곳들에 머물러 보았다.


부모님이 내게 해주었던 것 혹은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 그 모든 것에 현재 시점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별로 없다는 것에 놀랐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서 잊어버렸다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부모님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겨났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지금의 나도 그다지 잘 단련된 어른이 아닌 것처럼 과거의 부모님도 그때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린 눈으로 바라봤던 어른은, 다시 보니 완성작이 아니어서 살아왔던 것에는 해석을 달아줄 수 있었지만 살아가고 있거나 살아가야 할 날에 대한 것은 노코멘트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내가 현재와 미래를 명확하게 그려낼 수 없는 것처럼.


만일 지금의 마음으로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지난날보다는 훨씬 담담하고 튼실하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젊고 아름답고 유능하며 패기 넘치는 가운데 삶에 대한 이해마저도 깊은 나라면 어땠을까? 싶지만 아니었다. 젊지 않고 아름답지 않고 유능하지 않고 패기 넘치지 않는 때라는 것이 없으면 삶에 대한 깊은 이해라는 것은 얻어지기 힘든 것이었다. 죽음이 없이 삶이 빛나지 않듯이 사라져 가는 것이 없을 때 가지고 있는 것은 빛이 나지 않았다. 지난날 내가 '가지지 못했다'라고 했던 것은 '가진 것도 몰랐던 것'이거나 '가지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중년에 이르기 바로 직전에 한참을 크게 방황한 적이 있었다. 혈기가 막바지에 달해 '아무리 부모님과 다른 삶을 살려고 발버둥 쳐도 태생이 밑바닥이라 헤어날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하며, 어쩔 수 없이 내가 선택한 역할놀이에 할당된 연기를 해야 하나 싶은 절망에 휩싸였을 때. 우연히 이제 막 성인에 접어든 내가 꿈꾸는 미래를 담은 일기장을 펼쳐 보고는 어이가 없어졌다.


젊은 시절 내가 꿈으로만 상상할 수 있었던 미래는 이미 현실화되어 있었다. 그때의 시절이 어떠했든 이미 미래가 바뀌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된 오늘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건 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나의 기대치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한 탓이다. '헤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 팩트가 아니라 '무엇에서 헤어나길 바라는지 조차 모른다'가 팩트였다.


물론 당시의 나는 너무 어리고 아는 게 없는 나였다. 그래서 바라는 것의 수위도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 높지 않은 것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때는 그걸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아가는 과정 중에 기준은 달라졌다. 그 과정을 생략하면 달라질 것도 없다. 지금의 생각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은 삶에서 큰 비약이다. 나라는 개인으로서는 그 비약이 유용할지 몰라도 그 나이의 나와 내 관계 속에 그 비약은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의 나의 이해가 그 비약 안에서도 고스란히 내게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과거는 과거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거다. 그래야 현재의 내가 그것을 두고 달라진 지금을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를 습격할 수 있지만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를 습격할 수 없다. 과거란 '이미 일어난 결과'라는 파괴 불가한 방패를 지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과거의 역습을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며 그 과거가 원인이 되었을 지금의 현재를 지켜내는 것뿐이다. 과거의 상처가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지만 견딜만한 상처가 되도록 단련하는 것, 그것은 일종의 심리적 면역체계를 세우는 일이다. 과거와 현재의 연은 여기까지다. 어쩌면 과거에 대한 무의식적인 그리움은 그 안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때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서 비로소 부모로부터 겨우 막 독립한 나를 마주하게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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