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인정을 못하겠음.
“너 완전 갓생 산다!”, “와, 너 정말 사서 고생한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꼭 그렇게 꼼꼼하게 할 필요가 있어?”
내가 자주 들어온 말들이다. 보통 한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린다.
나더러 완벽주의자라는 말도 그냥 흘려버렸다. 진짜 꼼꼼하고 세심한 완벽주의자를 못 본 게 아닐까 싶어 콧방귀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all-or-nothing 마인드가 강하다. 내 루틴이 무너지면 내 멘탈도 함께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완벽주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니, 왜 종종 무기력에 빠지고 번아웃이 오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나는 늘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을 세운다. 가족과 떨어져 여기까지 왔으니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선다.
공부하면서도 일을 놓지 못하는 건 부모님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어른이라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언제나 “더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붙잡혀 산다. 운동이든, 공부든, 일이든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늘 있다. 그러다 보니 준비 시간이 길어지고, 시작 자체가 지연된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아침 8시 반에 늦게 일어나면 하루를 이미 망쳤다고 느낀다. “벌써 늦었어”라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잠들어버리기도 한다.
놀랍게도 내 경험은 교과서 속 사례처럼 완벽주의와 무기력이 세트로 엮이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기대치는 높지만 체력과 시간이 받쳐주지 않으면 시작을 회피하고, 무기력 속에 빠져든다.
작은 일조차 뇌가 거대한 과업으로 해석해 스트레스를 주고, 다시 회피하게 만든다. 결국 “항상 더 해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내 사고방식이 만성 스트레스의 뿌리가 된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주먹구구식으로 끝내곤 했지만, 이제는 알겠다. 이대로는 스스로를 좀먹으며 살게 될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은 잠시 멈추어 서더라도,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도약을 준비하고 싶다.
그래서 일단 인정하겠다. 완전히 인정. 사실 이 인정조차 쉽지 않다.
흠, 내가 어딜 봐서 완벽주의자라는걸까. 툴툴대는 마음이 올라온다. 하지만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다음 단계는 불완전한 행동을 허용하는 것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더라도, 공부량을 반밖에 못 채우더라도, 그 행동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둘 것이다. 그것부터 시작하겠다.
이미 나는 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것을. 나는 지금 내가 거니는 길을 낙원으로 만드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