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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Oct 31. 2024

INFJ 엄마도 가끔 유치해지는 이유


MBTI로 극 I인 나는 중도 E인 남편과 극 E인 아이의 어울림이 요즘 유난히 부럽다. 거실보다는 나만의 방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만큼 마주칠 기회도, 대화할 기회도 적긴 하다. 아이와 남편은 둘 다 활발해서인지 부딪힐 때도 있지만 종종 서로 '티카타카'를 열정적으로 한다. 



 이날은 웬일인지 부녀간의 알콩달콩한 대화에 괜히 신경이 쓰였다. 



"아빠, 이 인형 줄 테니까 가방에 메고 다녀요."


"그래? 또 준다고?"


방 안에 있던 나는 거실에서 스몰토크를 하고 있는 고3 아이와 남편의 대화를 들었다. 하지만 사소한 일에 내가 신경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원래 가방이나 핸드폰에 장식물을 달고 다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지만 무게가 더해지는 것 같고 금속성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흔들리거나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도 듣기 싫기 때문이다. 내 이런 성격을 아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냥 한번 내게 권하기라도 하지. 그러면 못 이기는 척하고 하나 달고 다닐 텐데.' 



이런 생각에 미치자 내 진짜 감정을 알고 싶었다. 하기 싫어하는데 굳이 아이가 내게도 인형을 주길 원하는 걸까. 아빠만 챙겨서 서운한가. 설마 유치하게 질투라도 하는 건가 싶었다. 나의 변덕스러운 감정에 당혹스러웠다. 내가 진정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별일이네. 그깟 인형이 뭐라고 이리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그날 나는 평소의 나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 마치 사랑을 구걸하는 것 같아 망설여졌지만 아이가 거실에 나와 있는 틈을 타서 말해 보았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일 테니. 



  "엄마도 인형 달고 싶다. 딸이 주는 건 달고 다닐 수 있는데..." 



혹여나 내 취향을 아는 아이가 엄마 왜 그러냐고 따지거나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이내 대답한다. 



  "그래? 말하지, 엄마. 나 인형 뽑기 해서 그런 거 많아. 가만있어 봐." 



그러더니 한 개도 아니고 세 개나 던져준다. 아이가 험하게 썼는지 때가 많이 타고 하나는 헝겊이 아니라 꽤 큰 소리로 짤랑거리는 신발 모형이었다. 하지만 불만은 접어두고 고맙다고 했다. 새것, 좋은 선물을 받고자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로 달기에는 너무 지저분해서 세탁기에 넣고 빨았다. 완전히 때가 없어지진 않았지만 아이의 흔적이라 여기고 배낭이나 에코백 따위에 하나씩 달았다. 



아이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나의 기분, 나의 취향, 나의 오랜 습관을 거의 여과 없이 드러냈는데 점점 아이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아이가 성인에 가까워지면서 가장 큰 변화는 단순히 나이나 신체적인 성숙도만은 아닌 것 같다. 그건 바로 내게 의지하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감정의 밀도가 낮아지며 독립을 하려는 아이의 날갯짓이다. 그러면 무심했던 나도 유치해지고 때로는 사랑을 구걸하고픈 욕구를 느끼게 된다. 나 또한 앞으로 다가올 헤어짐을 준비하고 아이에 대한 집착을 응원으로, 믿음으로 바꿔야 하는 시기라는 뜻이겠지. 



가방에 달린 인형을 보니 어쩌면 나는 몸에서 멀어진 아이의 숨결을 계속 느낄 뭔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얻어 기쁘다. 다소 억지로 받아내긴 했지만 말이다.



 '아이야, 고마워. 엄마의 유치한 마음을 알아줘서. 그런데 정말 알고 주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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