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금이 갈까. 금이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거울이 깨지면 금이 간다. 조각이 나 떨어지기도 하고 정도에 따라 땅이 갈라지듯 끔찍한 패인 자국이 충격을 말해주기도 한다.
거울. 테이프로 붙이면 얼추 사용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볼 때마다 프랑켄슈인처럼 어그러진 얼굴의 형태를 감내하며 사용해야 한다. 새것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어떻게 짜 맞추더라도 깨지기 전의 형태는 만들 수 없다.
도자기! 비싼 도자기는 없지만 밥과 국을 담기 위한 사기그릇은 있다. 커피나 차를 마실 때 쓰는 머그컵도 있구나. 떨어뜨리지 않아도 홈이 파이듯 깎여 있거나 금이 가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어디선가 들었다. 깨진 그릇이나 용기는 쓰는 게 아니라고. 아까워도 과감하게 버리라고. 미신인 것 같으면서도 왠지 꺼림칙해서 버리게 된다. 그런 연유로 우리 집의 그릇은 짝이 맞는 게 거의 없다. 그릇도 가지각색, 머그컵이나 앞접시도 다양하다.
핸드폰 액정. 현대인의 필수품,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면서 한두 번쯤 떨어뜨린 적이 있지 않은가. 오래전에 외부 화장실에서 떨어뜨려 액정 화면이 여러 갈래로 금이 간 것도 모자라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애먹은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화면만 문제라고 해도 교체와 수리 비용이 은근히 비싸서 그냥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완전히 부서져서 쓸 수 없지 않아도 뭔가가 금이 가고 깨지면 오래가지 않아 폐기 처분된다. 하지만 그게 몸이라면? 가능 여부를 떠나서 소모품 대하듯 장기 이식처럼 다른 신체로 바꾸는 게 쉬운 일인가. 현대의 과학은 가능하다고 하지만 아직 상용 단계는 아니다. 부담도 기술도 다른 조건을 포함해 역부족이다.
그날은 눈이 오다 말다를 반복했다. 기온도 워낙 낮고 전달의 폭설에 귀향 길 또한 초 비상이었다. 천천히 조심조심 가는 건 당연했다. 설날을 앞두고 모인 시댁 식구들은 명절의 들뜬 분위기에 한껏 취해 있었다. 사람이 모이면 음식이 빠질 수 없다. 언제나 그랬듯 닭백숙을 해 먹자는 말이 나왔고 함께 끓일 약수를 떠 오자는 말이 나왔다. 시골의 맑은 공기와 물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그곳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있는 청송 달기 약수터로 전국에서 철분 가득한 물을 마시기 위해 전국에서 모이는 사람들로 끊이지 않는다.
차를 타고 가야 했다. 남편이 운전하고 나는 그 옆에 뒷좌석에는 조카들과 둘째 아이가 차지했다. 눈길을 가야 했지만 건물보다는 산속 자연의 풍광 아래 가득한 하얀 세상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나는 물을 떠 오는 과정에서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답답해할 나의 기분을 늘 챙기느라 함께 가자는 핑계로 동행을 권한다. 바람 쐬고 온다는 기분으로 그렇게 길을 나섰다.
약수탕 상탕, 중탕 쪽 물은 철분도 더 많고 좋다고 하여 인적이 드물면서 다소 험악한 산길로 향했다. 눈이 워낙 많이 와서인지 사람의 흔적이 아예 없었다.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으니까. 나는 잠시 나가서 둘러보고는 차로 다시 들어와 몸을 녹이고 있었다. 조카들과 남편이 물통 한가득 떠오는 것을 볼 때까지만 해도 어서 출발해 카페에 들러 따뜻한 차라도 마시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섯 사람이 모두 안전벨트를 매고 남편은 시동을 걸었다. 그곳을 빠져나오려면 경사가 있는 작은 언덕길을 올라와야 도로를 만나는데 차가 올라가지를 못했다. 워낙 길이 미끄럽고 눈이 심각하게 쌓여서 그런 듯했다. 액셀을 밟으며 힘겨워하는 남편을 보고 너도나도 차에서 내려 밀어보자고 했다. 남편을 제외하고 모두 내린 후 뒤에서 차를 밀었지만 차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차는 아래로 다시 미끄러지고 우리는 다시 차를 따라 내려가 다시 승차하려고 했다. 몇 발자국이나 떼었을까. 나를 포함한 아이들 셋 모두 순식간에 넘어지고 말았다. 1초도 안 걸린 것 같았다. 손을 어디에 대었는지 어디를 제일 크게 부딪쳤는지 아직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낙상하면서 아픈 것은 둘째치고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서 팔에 충격이 간 것은 맞는데 일어날 수도 건드릴 수도 없었다. 나를 도와주려고 누군가 내 팔을 건드리기만 해도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아, 이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