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해, 학부모회에서 운영하는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모임에 참여했다. 토요일 아침마다 도시락을 만들고 배달하는 일이 만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라 즐거웠다.
그때 함께 활동했던 엄마들 중 셋을 아직도 만나고 있다. 이름하여 '네얼'. '네얼'이라는 이름은 한 명씩 어딘가 덜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하여 한 엄마가 영화 <세 얼간이>에 빗대 붙인 이름이다. 이름이 얼마나 위트 있고 찰떡같은지 우리는 만날 때마다 스스로를 '네얼'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막내는 종종 아이들끼리는 그다지 친하지도 만나지도 않는데 엄마들이 뭉치는 것에 신기함을 내비친다. 내가 생각해도 좀 신기하긴 하다.
개성이 다르고 나이도 천차만별인데 어째서 네얼은 지금까지 만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결이 그다지 다르지 않고 만남을 열심히 주선하는 한 엄마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 네얼과 얼마 전 시골집에 다녀왔다. 본의 아니게 이사를 가게 된 엄마와 직장일로 심신이 지친 엄마를 위로하기 위한 나들이였다.
그날, 한진포구에서 맛난 점심을 먹고, 해안산책로를 거닐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시골집도 둘러보고, 심훈문학관도 거닐다 돌아왔다.
월차를 내고 나들이에 합류한 두 엄마는 당일 여행이 너무 알차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는데, 특히 마지막으로 둘러본 '필경사'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충남 당진의 대표적인 작가를 꼽으라면 심훈을 꼽을 수 있겠다. 그가 태어난 곳은 서울 노량진이지만 대표작 '상록수'를 집필한 곳은 당진 한진포구 인근에 위치한 '필경사'이기 때문이다.
'필경사'는 심훈이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서울에서 내려와 1934년에 직접 설계하여 지은 초가집 이름이다. "붓으로 밭을 일군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때 교회로도 사용되었으나 그의 장조카가 다시 사서 당진군(지금은 당진시)에 기증 후 지금과 같은 모양새를 갖추었다고 한다[충청남도 기념물 당진필경사 (唐津筆耕舍) | 국가문화유산포탈 | 문화재 검색 (heritage.go.kr) 참조].
엄마들은 푸른 잔디 위를 걸으며 바다와는 또 다른 풍광을 만끽했다. 당일 여행으로는 훌륭한 마무리였다.
한진을 떠나오며 네얼은 너나없이 앞으로는 답답한 카페에서만 만날 게 아니라 자주 경치 좋은 곳으로 떠나자 말했다.
자주 그래야겠다.
ps.
네얼과 함께 떠난 여행 이야기를 한진포구 해안산책로에 대한 정보와 버무려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습니다. 혹, 관련 글이 궁금하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