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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교 Oct 03. 2022

녹음은 장비발이지

의지: '하고 싶은데 어떡해… 마이크부터 사자'

출판 계약은 했지만, 출간 시기는 알 수 없었다. 원고를 마무리해 담당 편집장에게 전달하고 나서도 출판사 내부에서 논의를 거쳐 결정된다고 했다. 출판 시장의 경향, 경제적인 측면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적지 않았다. 당장 미리듣기 형태의 오디오북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책 마케팅 아이디어로 제안했지만, 출판사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 한번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저질러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선, 출판사의 결정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조바심 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나, 유튜브 해볼까?”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한다. 각종 기기를 다루는 데 영 소질이 없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보면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쪽에 치우치곤 한다. 재료를 덜 정제해 만든 투박한 종이에 매력을 느끼고, 잉크 자국이 남기는 해도 쓰는 맛이 느껴지는 볼펜을 선호하고,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에 들렀다가 어렸을 때 동네 빵집에서 팔던 카스텔라 꽈배기가 그리워서 찔끔 눈물이 난 적도 있다. 이메일보다는 손 편지에서 저릿한 파동을 느끼고, 캘린더 애플리케이션에 일정을 정리하는 게 불안해서 탁상 달력에 다이어리까지 동원해 기어이 쓰고 나서야 한시름 놓는다. 조금 불편해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디지털 기기에 얼마나 관심이 없느냐 하면, 휴대전화는 전화와 메시지, 가끔 인터넷 검색을 할 정도의 똑똑함만 갖추면 된다는 주의라서 고장 나기 전까지 언제까지고 쓰마, 한 적도 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생일 선물을 핑계로 바꿔버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오래 사용했을지 알 수 없다.

 


뼛속까지 아날로그형 인간일 (가능성이 큰) 내가 유튜브를 떠올린 건, ‘에라이 모르겠다’ 심정이었다. 하고 싶은데 어떡해. 뭐든 해야 욕구 불만 상태를 벗어날 것 같은데. 요즘 세대는 궁금한 게 있으면 유튜브부터 검색한다지만 여전히 초록색 검색창에서 찾아보거나 책장을 들추는 게 편한데, 유튜브 채널을 만들겠다니! 목표가 야무졌다.



솔직하게 말하면, 결혼하기 전까지 얼리 어답터의 길을 걷던, 이쪽으로는 나보다 눈이 밝고 손이 빠른 남편이 도와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혼자 어쩌지 못하고 버벅대고 있으면 답답해서라도 분명히 도와주겠지, 하면서. 아니나 다를까. 유튜브를 해보겠다고 했더니, 영상 링크를 보내왔다. (역시 내 편!) 곧 나의 경쟁 상대(?)가 될 낭독 유튜버들의 영상과 초보 유튜버가 알아야 할 부분을 짚어주는 내용이었다. 유튜브를 시작할 때 필요한 기본 장비를 비교한 영상도 포함돼 있었다. 사용하기에 어떤 것이 더 편할지 고민해보라는 말과 함께.

 


굳이 장비를 사야 하나. 요즘 휴대전화 카메라 기능이 얼마나 좋은데. 낭독 녹음은 취재할 때 쓰던 녹음기를 쓰면 안 되려나. 샀다가 안 쓰면 돈만 버리는 거잖아. 제대로 사용할 수나 있을까. 와, 사용법이 왜 이리 복잡한 거야. 어휴, 이거 배우다가 시간 다 가겠네. 그냥 하지 말까? 괜히 일만 벌이는 게 아닐까. 자신 없다 정말.

 


분명 마음의 소리였는데. 동영상을 보면서 속으로 했던 말인데. 남편은 귀신같이 내 마음을 알아채고 영상 몇 개를 비교해보라고 했다. 시청자 모드로 귀를 쫑긋하고 들었더니 확실히 달랐다. 하나같이 좋은 콘텐츠였지만, 오디오 상태에 따라 채널에 대한 선호도가 나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오디오 콘텐츠는 특히 그랬다.

 


그래, 오디오 콘텐츠는 마이크발을 좀 세워줘야지. 육아도 아이템발이 얼마나 중요한데. 초보자일수록 도움을 받아야 콘텐츠 만드는 시늉이라도 하지. 사자, 사. 내 마이크.

 


선택의 연속이었다.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고 또 그리 살고 있지만, 무언가를 사기 위해 여러 선택지를 두고 머리를 싸매는 일에는 수동적인 인간이고만 싶다. 경험과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전문가들의 구매 팁을 읽어봐도 도대체 감이 오지 않았다. 어릴 때 마주했던 마이크는 마이크 스탠드에 끼워져 있던 막대 사탕 모양 마이크뿐이었는데. 다이나믹 마이크, 콘덴서 마이크, USB 마이크, 핀마이크…, 종류도 특징도 천차만별이었다. 여기에 오디오 인터페이스, 스피커까지 알아야 한다고? 큰일 났다 정말. 마이크를 고르다가 벌써 지치는 느낌이었다. 이럴수록 이성적으로 냉정해져야 했다.



낭독 콘텐츠에 적합한가?

혼자서도 쉽게 녹음할 수 있는가?

탁 트인 공간에서 녹음하기에 적합한가?

가성비? vs 퀄리티?

다루는 방법이 단순하고 편리한가?

중고음인 목소리를 얼마나 잘 담아내는가?

 


나름의 기준으로 거름망을 만들고 걸러냈다. 조작 방법이 단순한 마이크. 녹음 후 편집, 믹싱 작업까지 수월하게 할 수 있는 마이크. 편리하지만 평균 이상의 결과물을 자랑하는 마이크. 초보자도 쉽게 다룰 수 있지만, 결코 성능 떨어지지 않는 마이크. … 결국, 내가 원하는 건 최신 디지털 기술의 집약체로서 마이크였다.



나는 아날로그 감성만 좋아했나 보다. 정말 하고 싶어서 그런 거지. 정말, 잘해보고 싶어서 욕심을 낸 거야. 그렇게 나의 첫 마이크가 집으로 배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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