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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교 Oct 08. 2022

목소리를 잃었다

좌절: '그래, 내가 무슨 크리에이터야…'

몸이 먼저 계절의 변화를 알아챘다. 옷깃 사이로 새어든 바람에서 변화의 기운이 스쳤다. 봄비도 내렸다. 우산 끝에 맺혔다가 떨어지는 빗방울이 전처럼 소스라치게 차갑지 않았다. 비가 그치고 나면 포근한 계절이 나를 기다리겠지. 멀지 않아 입과 코를 가리지 않고도 마주 앉아 크게 소리 내 웃을 날이 올 거야. 조금은 설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도 모르게 숨겨두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그것을 이제 막 꺼내 든 참이라 마음이 더 달뜬 건지도 모르겠다. 살갗에 닿는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괜스레 몸을 가벼이 하고 싶어 계절을 앞선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별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 회사에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을 해냈고 이따금 하늘을 쳐다봤고, 또 가끔 아이의 사진을 넘겨봤고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바빴다.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고 아이의 저녁을 지었고 씻고 잠자리를 준비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따끔한 것만 빼면 평온했다. 계절이 바뀔 때면 으레 겪는 일이라서 크게 마음을 쓰지도 않았다. 약을 입에 털어 넣고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왔는데, 통증의 크기가 커진 느낌. 지난 며칠간의 행적을 돌아보곤, 아닐 거야, 애써 부정했지만, 코로나의 그림자가 드리웠음을 직감했다. 

 


3월 16일. 코로나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외부 접촉을 피하려고 방에 나를 가뒀다. 고요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의문이 생겼다. 2년 동안 바깥 활동을 피하면서 조심했는데, 도대체 어디서 이 바이러스가 옮아온 것인지. 다음 차례는 억울함이었다. 나보다 더 조심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몸을 사렸는데, 왜 내가 감염된 건지.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체념과 가족에게 옮아갈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날카로운 무언가에 편도를 베인 듯한 고통이 차례로 지나가고 나는 목소리를 잃었다.

 


갇힌 공간에서 바깥과 소통할 방법은 문자 메시지가 유일했다. 주파수 맞지 않는 라디오에서 나던 소리가 내 입에서 나왔다. 가족들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걸려 오는 전화를 받았다가 괜찮다는 한마디가 나오지 않아 서둘러 끊어야만 했다. 통증이 익숙해질 즈음, 기침이 터져 나왔다. 한 번, 두 번, 세 번…. 기침을 몇 번이나 했는지 세는 게 의미 없을 만큼 잦아지자 불안이 찾아왔다. 횟수가 더해질수록 코로나 이전의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나를 괴롭혔다. 하필 지금, 왜 하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건지, 무엇을 향한 것인지 모를 원망이 솟아올라 나를 뾰족하게 만들었다. 괜한 짓 하지 말라는 거야? 그래서 이러는 거야?

 


일주일 격리 후에도, 한 달이 지나고도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일상생활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일하고 대화하는 데는 잃어버린 내 목소리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굳이 목소리를 되찾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게 애 끓였다. 나만 아는 다름, 애타는 기분, 조급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버거웠다. 혼자 있을 시간만 기다렸다. 달라진 목소리를 나만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들었다. 출·퇴근길 도로 위. 자동차를 달리면서 소리 냈다. 거뜬했던 고음 노래를 틀어 따라부르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진행자의 멘트도 따라 했다. 달랐다. 잘하고 싶은데, 소리 내고 싶은데, 아무리 따라 해봐도 내 목소리는 전과 달랐다. 

 


두 달이 흘렀다. 그새 나는 후유증으로 호흡 곤란까지 겪었다. 대화하다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 가득 들숨을 채워 넣었지만, 말이 끝날 때까지 버티지 못했다. 병원 두세 군데를 돌았다. 뭔가 명확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당장 하지 못하는 이 상황을 스스로 이해할 만한 게 필요했는데, 검사 결과 특별한 이상 소견은 없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말이 그토록 무책임하게 들린 적이 없었다. 몰아치는 감정과 생각은 끝내, 눈물로 터져 나왔다. 그래, 내가 무슨 오디오 크리에이터야.

 


아이가 어릴 때 쓰던 거즈 손수건을 서랍에서 꺼냈다. 거실 한 편에 설치해뒀던 마이크 앞에 다가섰다. 나보다 먼저 내 마이크를 차지하고 있던 건 먼지였다. 먼지떨이로 털어내고 그 위에 손수건을 덮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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