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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교 Oct 15. 2022

자, 이제 현실 자각 타임입니다

자기합리화: '헛된 꿈 꾸지 말고 욕심 버려'

가라앉은 일상에 이제야 활기가 돌기 시작했는데, 바이러스가 짓궂은 장난을 걸어왔다. 이래도 해볼 테냐. 그 다짐과 결심, 너의 의지가 진심이냐. 정말 할 수 있겠느냐. 앞에서 깐족댔다. 절묘한 타이밍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아무 일 없다가 불쑥 이 시점에 감염이라니. 그래, 누구나 걸릴 수 있다고 치자. 어느 순간 긴장이 느슨해져서 감염됐다고 치자. 그런데 석 달이 넘도록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낭독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는데, 하필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다니. 저 높은 곳에 있는 누군가가 하지 말라는 계시를 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이제 와서 무슨 꿈이야.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는데, 괜히 일 벌였다가 망신당하지 말고. 적당히 해. 그냥 하던 거나 해. 하지 못할 핑계만 찾는다고? 듣기 거북한 목소리로 낭독한 콘텐츠를 누가 듣겠어? 이미 널리고 널린 게 책 낭독 콘텐츠야. 뭘 얼마나 더 잘할 수 있겠어, 안 그래? 뭘 얼마나 더 대단한 걸 만들 수 있겠어. 괜히 헛된 꿈 꾸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욕심 버려. 마이크? 한 번도 안 쓴 새 건데 중고로 팔면 되지. 별걱정을 다 하네. 

 


몇 날 며칠을 싸웠는지 모른다. ‘하고 싶다는 나’, ‘할 수 없다는 나’가 얼마나 격렬하게 묻고 답하고, 또 묻고 답했는지…. 나중에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치열한 싸움은 ‘할 수 없다는 나’가 승기를 잡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처음부터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유튜브에서 ‘낭독’을 검색했다가 기가 죽었으니까. 정말 어설프게 시작했다가는 흑역사로 남을 가능성도 있겠다 싶었다. 쉽게 생각했는데, 막상 문을 열었더니 발을 뗄 수조차 없었다.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세상. 유튜브에는 능력자가 가득 차다 못해 흘러넘쳤다. 이미 책 낭독 분야에서 자리 잡은 유명 유튜버부터 성우에 스피치 전문가, 비즈니스 용도로 운영되는 채널까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수년간 오디오북 크리에이터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던 한 유튜버의 작심 영상에 나는 또 한 번 좌절했다. (아니, 시작도 하기 전에 도대체 몇 번이나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인가) 비전이 보이지 않아 이제 더는 북튜버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다른 분야보다 책에 관심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고,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다가 기존 콘텐츠와 차별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오디오북으로 돈 벌겠다는 생각이라면 꿈 깨!’. 영상에 달린 댓글은 더 비관적이었다. 오디오북 채널을 운영하면서 경험한 어려움에 공감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세상사 쉬운 건 하나도 없다지만, 이쪽도 다르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은 늪과 같아서 닿는 순간 모든 것을 끌고 들어간다. 판단과 감정, 기분 같은 것들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한다. 마음이 온통 질퍽한 진흙투성이로 변해 나중에는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픈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의 상실. 마주한 현실 앞에서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휘적휘적 댔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선 어떤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 사람처럼 굴었다. 북튜버들의 콘텐츠를 재생시켜 놓고, 팔짱을 꼈다. 도대체 뭐가 특별한 거지? 그냥 뻔한 책 낭독 콘텐츠인데, 조회 수가 이렇게나 많다고? 이거 저작권을 침해한 콘텐츠 아냐? 출판사에 허락은 받고 이런 걸 만드는 거야? 내가 해도 이것보다는 잘하겠다. 



높이 매달려 있는 탐스러운 포도가 먹고 싶어서 안달 났는데 도저히 방법은 모르겠고, 어떻게 해도 못 먹을 것 같아서 ‘저건 시어 빠져서 못 먹는 포도야’ 단정 짓고 자기합리화하던 여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 정말 못났다. 

 


다시 질문의 시간. 정말 하고 싶어? 그냥 하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이렇게까지 바닥을 쳐야겠어? 도대체 왜 하고 싶은 건데? 꼭 유튜브라야만 해? 그래서 이걸로 돈을 벌겠다고? 꿈이라며. 그냥 하고 싶은 거라며. 근데 왜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거야. 다시 차분하게 생각해 봐. 간절하다면서 왜 엉뚱한 데 정신을 팔고 있는 건데? 뭐가 두려운 거야? 뭐가 무서워서 망설이는 거야? 예전에 너는 이러지 않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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