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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교 Oct 23. 2022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변명

인정: '그만 인정해, 쉬운 일은 하나도 없어'

이루고 싶은 마음과 잘하고 싶은 마음.

잘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마음.

내가 누군데, 잘할 수 있고 말고 자신감 넘치는 마음.

나보다 먼저 그 분야를 장악한 이들을 보면서 비교하는 마음.

이왕이면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앞서 나간 마음.

비교하고 비교하다 결국 나는 하지 못할 거 같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마음.

이렇게까지 미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미루고 미루다가 한계선(또는 욕구불만)이라는 벼랑 끝에 까치발로 딛고서야 두 손, 두 발을 들고 일을 시작하는 마음.      

 


맞다,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완벽해지려다가 다리가 찢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초조함에 시달리다 못해 결국 게으름을 택하고 마는, 불완전한 완벽주의자다. 언제부터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길을 걸었던 걸까. 아니었다.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일단 저질렀다. 당장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아 발을 동동거렸다. 성미가 얼마나 고약했냐면,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가족들의 놀림을 받는 일화가 있다.

 


때는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배달이 일상인 지금이야 언제든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음식을 주문하면 집 앞까지 가져다주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고기가 먹고 싶었다. 고깃집에 가서 숯불을 피운 불판 위에서 고기를 굽고 시원한 냉면을 곁들여 먹으면 더 바랄 게 없었다. 맞벌이하느라 바빴던 엄마, 아빠는 주말에 사주마, 약속했다. 자식이 먹고 싶다는 걸 일 때문에 사줄 수 없었던 엄마, 아빠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거다. 이제야 그 마음을 헤아리지만, 철이 없었던 그때의 나는, 단 며칠을 못 기다리고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다가 갑작스러운 고열로 침대행이라니. 정말이지,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초능력자였다. 아프고 싶다고 해서 때를 맞춰 아플 수 있다면 초능력을 가진 자가 아닌가.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었다고 해서 갑자기 열이 오르고 바로 드러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 또한 입이 떡 벌어질 초능력이 아니겠는가. 그날 이후로도 여러 번, 쉽게 볼 수 없다는 초능력을 발휘(?)했고 엄마, 아빠는 ‘먹고 싶다’ 입 떼기 무섭게 나를 식당으로 데려갔다.

 


“또 아플라.”

하고 싶은 건 결국 하고야 마는(이라고 쓰고, 먹고야 마는 이라고 읽는다) 나를 놀리면서.

 


초능력자는 이제 없다. 앞뒤 재지 않고 시작하고 저지르는 나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야 겨우 만날 수 있다. 현재의 나는 머뭇거린다. 그냥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렵다.

 


하고 싶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행동하면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의미가 된다. 작은 실천이 차곡차곡 쌓여 기회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머리로 알고 경험도 했지만, ‘그냥’이 안 된다. 이왕 하는 거 그럴듯하게, 제대로, 잘하고 싶어서 힘을 준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탓일까. 철이 들어 그런 걸까. 남들과 경쟁해서 잘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사회에서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학습했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덜 간절해서일까. 당장 먹고살 만하니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었던 걸까.

 


임상 심리 전문가인 헤이든 핀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처방을 제시한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어놓고 하지 못하는 건, 불안과 불확실성, 무기력 같은 감정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때 드는 불편한 감정을 외면하려고 회피, 미루기의 굴레를 무한반복 한다는 것. 미루는 습관의 원인도 사람마다 달라서, 무작정 ‘그냥 해!’라는 말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한다고 말한다. 시작하기가 어려워서 미루는 스타일을 위한 조언을 참고해 나와 대화하는 법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힘을 잔뜩 준 나머지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제풀에 지칠 때는 사흘마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으로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어. 이것부터 인정하자.

 

뭘 하든 쉬운 적 있었어? 처음부터 내 생각대로 착착 맞아떨어져서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은 적이 없잖아. 처음 시도하는 일인데, 왜 쉬울 거라고 착각하는 거야? 생각해 봐. 뭐든 처음은 어렵고 낯설잖아. 아이가 걸음을 떼기까지 얼마나 많이 넘어졌는지 알잖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 네가 쓴 기사를 얼마나 많이 고쳐 쓴지 기억하지? 이제 인정하자. 쉬울 거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는 걸.      

 


너무 피곤해, 내일부터 하지 뭐.’ ‘지금 할 시간이 없잖아.’ ‘지금 이걸 할 기분이 아니야.’ 이런 생각이 진짜일까?

 

솔직하게, 진짜 속마음은 아니었잖아. 하지 않을 이유나 핑계 따위가 필요했던 거잖아. 피곤하다고? 피곤하다면서 넷플릭스를 켜고 한두 시간 멍하게 볼 여유는 있고? 정말 피곤해서 손가락도 까딱할 수 없다면 그냥 침대로 가서 잠을 청해야지. 안 그래? 그렇다면 지금 할 시간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잖아.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고? 기분이 좋을 때를 기다려서 시작할 바에야 애초에 포기하는 게 빠르지 않겠어? 기분이 내킬 때마다 할 거라면 늘 제자리일 텐데.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어렸을 때 어른들이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해. 크고 거창한 목표를 세워야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그 언저리 즈음에는 다다를 수 있다던 조언. 그런데 크고 거창한 목표가 오히려 망설이게 만든 건 아닐까? 지레 겁먹고 뒷걸음질 치게 하지 않았을까? 우리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적어보자. 스스로 부담 없이 꾸준히 손쉽게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해보자. 지금 필요한 건, 습관의 근육인 것 같아. 망설이지 않고 시작하는 습관. 그 작은 시작이 쌓이고 쌓여 크고 거창한 목표 앞으로 너를 데려다줄 거야.      

 


지금 미루면 앞으로도 언제든 할 수 있는 때란 없어. 완벽한 타이밍? 그런 건 이 세상에 없어.

 

이쯤 되면, 미루는 게 습관이 된 거 아냐? 뭐 좋은 거라고 그걸 습관으로 만들었대? 타이밍이 중요할 때도 있지. 세상의 좋은 기운이 모두 나를 위해 움직여줘야 하는 절묘한 타이밍 말이야.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고 결혼을 결정할 때 같은? 그게 아니라면 미루기는 늘 후회만 남기더라. 그때 할 걸, 그때 왜 망설였을까, 왜 그때 과감하게 도전하지 못했을까. 후회는 미련을 남기고, 미련은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기도 해. 시작할지, 말지 망설일 때는 시작하는 게 답이야. 너의 욕구가, 너의 마음이 하고 싶다는 쪽으로 향하고 있잖아. 외면하지 말자. 기억해. 완벽한 타이밍은 없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난 지금이 바로 완벽한 타이밍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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