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교 Oct 01. 2022

나를 사랑하려고 꿈을 꾼다

긍정: '다시 꿈을 꿔도 되겠지?'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쓰고 싶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도 사람 냄새를 담아내고 싶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호흡을 맞추면서 결국 서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떤 결론에 이르는 과정. 그 과정을 복기하면서 글로 엮는 일은 어렵지만, 재미있다. 누구에게나 스토리는 있다. 만남, 소통, 공감, 이해, 반추, 깨달음. 기자로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마다 나는 감동했다. 어쩜 그렇게 매번 감동하고 또 긍정했는지, 이러다 사심 가득한 기사를 쓰게 되지는 않을까, 자기검열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인터뷰 기사를 쓸 때 기자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를 꿈꾸길 잘했다 싶다. 

 


밥벌이하려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다.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잦다. 나를 죽이고 하던 대로 마감 시간에 맞춰 기사를 생산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밥벌이로 삼은 업보랄까.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쓰는 기자를 꿈꿨지만, 현실은 직업으로서 기자, 회사에 고용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꿈이 밥벌이와 이어지는 순간,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때로는 좌절하고 후회하고 허무함에 빠지곤 한다. 세상사, 내 마음 같지 않다. 

 


꿈꾸지 않고 지내던 날이 있었다. 내가 선택한 역할의 무게가 가볍지 않아서 현실이 아닌 이상을 좇는, 꿈이라는 단어는 입에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하루하루, 지금을 사는 것도 벅찼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꿈을 꾼다? 사치스러웠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며 스스로 다독였다. 배우자의 역할, 엄마의 역할, 직장인의 역할을 완수한 밤, 아이를 재우다 잠드는 날의 연속이었다. 꿈은 잠을 잘 때나 꿨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이면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런 꿈. 

 


나의 하루는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시간을 촘촘하게 쓰고 있는데 하루를 곱씹어보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듯한 느낌. 그렇게 지나간 날들이 무수히 쌓여서 계속 제자리걸음 하는 기분. 활기가 없었다. 왜 이러지, 도대체 왜 이럴까. 도무지 알 수 없어 답답한 날이 이어졌다. 생기도 잃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어서 제대로 응시하기 어려웠고, 보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가 타령 비슷한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다. ‘애애애 애애 야 아아아 아아~.’ 얼마나 구성지게 음을 꺾어가면서 부르던지, 표정은 또 얼마나 진지하던지, 웃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었다. 동요인지, 가요인지 도대체 알 수 없던 노래. 차를 타고 오가는 길, 무료한 주말 오후, 아이의 선곡으로 이 노래를 가만히 듣다가 가사를 곱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가수 안예은의 ‘문어의 꿈’. 주인공 문어는 매일 꿈을 꾼다. 꿈속에서는 무엇이든 원하는 모습대로 될 수 있으니까. 언뜻 듣기에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듯하지만, 결국 문어는 깊은 바닷속에 있다. 깊은 바닷속이 외롭고 춥고 차갑고 무서워서 꿈을 꾼다. 안예은은 해가 진 후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작업실로 향하면서 취기로 달뜬, 행복한 얼굴들을 마주쳤고, 자신의 목적지만 작업실이라는 사실에 우울해하던 그때의 감정으로 문어의 꿈을 만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만든 노래 중 제일 슬픈 노래라고. 나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꿈조차 꾸지 못했다면 문어는 어떻게 됐을까. 문어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 그리고 도망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이지만, 문어를 살아가게 하는 건 결국 꿈이었다는 결론에 가닿았다. 

 


어쩌면 꿈을 꾸는 건, 어떤 대가 없이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꿈을 꿀 때 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나온다. 아이가 흥얼거리던 ‘문어의 꿈’을 듣다가 20대의 나를 만났던 것 같기도 하다.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그때의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투자. 당장 가닿지 못하더라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불어넣는 응원. 뭔가 대단한 걸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던 자기 신뢰. 가능성에 대한 기대, 그리고 인정, 확신. 결국은, 나를 무한히 사랑하는 일. 

 


꿈꿀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간절하게 바라던 꿈이, 더는 꿈이 아닌 현실임을 직시하고 공허함을 경험했지만, 이룰 수 있음에 감사했다. 재고 따지지 않고 마음껏 꿈꿨던 시간, 온 마음을 다해 바랐던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다. 

 


그래서 다시 꿈을 꾼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다시 꿈꾼다.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쓰고 낭독까지 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