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계약서가 허파에 바람을 넣었다
확신: '20년 전에는 나도 꽤 잘나갔지'
20년 가까이 자물쇠로 꼭꼭 잠가두고 외면했던 어릴 적 꿈은 거스를 수 없는 어떤 법칙처럼, 언제고 터져 나올 것이었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래도 끝까지 외면할 테냐.’ 으름장을 놓는 오랜 꿈 앞에서 이제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평생 한 번은 해봐야 죽을 때 눈을 감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 솔직해지자.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는 게 더 정확하다. 마치 못 이기는 척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니다. 스스로 ‘이제 포기했잖아’ 되뇌며 나를 속였지만, 나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몸집을 작게 만들어 마음 한구석에 숨겨놓았다.
아나운서와 책 내레이터. 한참을 생각했다. 동떨어진 둘인데,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아나운서의 꿈이 책 내레이터로 터져 나온 것인지를. 직장에 다니면서 출판 계약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나니, 욕심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아니, 출판 계약서가 내 허파에 바람을 넣었다. 꼭 아나운서가 되지 않고도 내 안의 욕구를 달랠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달까. 나의 첫 책이 그 길로 안내한 셈이다. 유명한 작가도, 전문 성우도 아닌 내가 오디오북을 녹음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제야 작디작아진, 어쩌면 다시는 펼쳐 보일 일이 없다고 여겼던 꿈이 고개를 들었다. 마이크 앞에 서는 것, 여러 사람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 이야기를 전하는 것. 나는 이것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니, 지금도 좋아하는 것 같다.
생애 처음 마이크 앞에 섰던 건 다섯 살 무렵이었을 거다. 웅변학원 원장인 아빠 덕에 말하기 조기교육을 받았다. 사실, 조기교육이랄 것도 없었다. 학원을 뛰어다니면서 놀다가 ‘심심하면 너도 언니, 오빠랑 연습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연습한 게 아까워서 내친김에 대회까지 나갔던 게 아닌가 싶다. (기억에 오류가 있을지 모르니, 부모님께 확인이 필요하다.)
연단에 설치된 ‘나의 마이크’는 높았다. 무대 뒤에서 지켜보던 어른들은 나무로 만든 디딤판을 놓아 주었고, 나는 올라갔다. 드르륵드르륵, 하던 대로 마이크 스탠드를 움직여 마이크를 입 가까이에 가져왔다. 정수리가 뜨거울 만큼 밝았던 무대 위에서 바라본 청중석은 사람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온통 까맸고 수백 개의 눈동자만 반짝였다.
3분 남짓.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청중에게 전해지던 그 순간. 말하는 호흡에 맞춰 좌, 우, 가운데를 번갈아 응시하면서 청중과 눈을 맞췄던 그때. (고급 기술이다) 아랫배에 힘을 모았다가 강당이 떠나가라 외칠 때 쏟아지던 박수 소리. 준비했던 말들을 남김없이, 실수 없이 마치고 연단을 내려왔을 때의 으쓱함. 그날의 기억은 강렬했다.
그렇게 줄곧, 마이크 앞에 서는 행위는 설레게 했다. 상도 받고, 칭찬도 받고,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좋아서 하는 일에 온전히 몰두하고, 마침내 해냈다는 자기만족과 성취감은 반복되는 연습 과정의 괴로움 따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중독성이 있었다. 이 기세를 몰아 학창 시절 내내 방송반의 문을 두드렸다. 비록 10여 년간의 활동 이력이 진로와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좋아서 하는 일이 경제활동과 연관되지 않은 덕분에 마흔을 앞둔 지금까지도 그때의 아름다운 기억에(어쩌면 왜곡된 기억에) 취해 있는 걸지도 모른다. 글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해본 결과 그랬다.
그래도 하고 싶다. 밥벌이는 하고 있으니까,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다. 좋아서 하는 일을 저질러 보고 싶다. 다시 마이크 앞에 서는 날을 상상해봤다. 떨리겠지? 생각보다 너무 떨려서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올지도 몰라. 누군가는 어렸을 때 잘 나갔었다는 기억만 믿고 주제도 모르고 까분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지. 그럼 뭐 어때. 나는 20년이라는 긴 공백이 무색할 만큼 그 순간을 즐길 텐데. 너무나도 기다려왔던 순간인데. 아무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