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교 Jul 16. 2022

이 순간이 기꺼워서

아뿔싸. 잊고 있었다. 남편 대신 아이를 등원시켜야 하는 날인 걸 잊고 새벽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쳤다.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 생활을 한 지 한 달쯤 됐으려나. ‘아이 등원은 남편이, 하원은 내가’ 패턴으로 일상을 조정한 지 한 달 가까이 됐을 무렵이었다. 저녁형 인간이 아침잠을 줄이고 한 시간이나(!) 일찍 출근하다니. 불가능하다고 여긴 일을 가능하게 만든 저력은 엄마라는 역할의 무게에 있었다.

 


5분만 더 자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누르고 일어나 씻은 후에야 기억이 났다. 다시 누웠지만, 잠이 올 리 없다. 뒤척이는 아이를 안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지난 금요일 일이 떠올랐다. 남편 대신 아이를 등원시키던 날이었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수축하는 근육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목과 어깨가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금요일, 폭발했다. 참을 수 없는 뭔가가 솟구쳐서 감정이 터져 나오는 걸 막고 있던 이성의 둑이 무너져 내렸다. ‘도대체, 왜, 언제까지, 이럴 거야!’ 마스크 너머로 뚝뚝, 눈물만 흘리는 아이를 붙잡고 같이 엉엉 소리 내 울고 싶었다. 어린이집에 들여보내려고 애타는 손길과 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손길이 수십 분간 뒤엉킨 후에야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멀어졌다. 그제야 나는 눈물을 흘렸다.

 


코로나19 이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고단했다. 아침마다 등원을 거부하는 아이, 그런 모습이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출근해야 하는 현실. 그런 날이면 어깨를 들썩이던 아이의 뒷모습이 떠올라 이따금 모니터 속 글자들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지곤 했다. 퇴근 후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면서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곤히 잠든 모습을 내내 바라보다 아이의 등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해 한 시간이라도 일찍 집으로 데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차출근을 신청하고, 남편과 아이가 단잠에 빠져있는 이른 아침, 나는 회사로 향했다.

 


지난 금요일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나를 붙들고 있는 아이의 간절한 손길을 뿌리치고 뒤돌아서 버릴까 봐 무서웠다. 전략이 필요했다. 친구들과 보고 싶은 책을 가져갈 수 있게 허락했다. 친구들과 함께 볼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아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차에 오르자마자, 자기 전에 듣는 동화를 틀어줬다. 등원하는 길, 잔뜩 긴장한 아이의 마음을 동화로 달래주고 싶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 현상을 파헤치는 내용인데, 잠자리에서 듣는 동화로는 영 마뜩잖았지만, 아이는 매일 밤, 주인공들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이의 불편한 마음에 공감해야지, 이해해야지, 되뇌었을 뿐. 이날, 무척 오랜만에 아이는 손을 흔들면서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 이 하루의 시작이 나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참 별거 아닌, 당연하다고 여긴 이 순간,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순간인지 사무치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은 그동안 나의 하루를 웃음과 안정감으로 시작하게 했고,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미소 짓게 했으며, 우리 가족의 일상이 평온하게 흘러가게 했다. 무엇보다 내가 있는 힘껏 꿈꾸고 나아갈 수 있게 했다. 이 순간을 위해서 지난 한 달 이상 글을 쓰는 것도, 책을 읽는 일도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온통 이 순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이 순간의 부재로 나의 하루도, 나의 계획도, 나의 에너지도 사라져 버렸다. 너무 힘들면 혼자 호텔에 가서 잠시 쉬고 오라던 남편의 제안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며칠 전부터 들떠서 혼자 보낼 시간을 계획했을 텐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요한 곳에서 잡생각이 더욱 요동칠 게 뻔했기 때문에. 아이가 힘들어하는 게 내 탓도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외면하고 도망간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 순간이 기껍다. 오늘 하루 내게 있을 예상치 못한 행운을 그 값으로 대신 내야 한다고 해도 기쁜 마음으로 내어줄 것이다. 내 몫이 아닌 것을 욕심내기보다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이 순간에 공을 들이는 게 현명한 선택일 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