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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리안 Aug 28. 2022

오늘도 하염없이 천장을 보고 있을 당신에게 2

두 달간 머물게 될 집을 아이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우리 이사간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잠시 여행을 왔다고 해야할까.  

 


친정집에 정확히 일주일 머물고 에어비앤비에서 구한 방으로 옮겼다.

친정집에 있을 때 부모님과 나는 모두가 안괜찮았지만, 괜찮은 척했다.


부모님은 도대체 지금 왜 나가냐고, 당장 아이와 나가서 둘이 어떻게 살 작정이냐며 말렸지만

이제 나는 더이상 괜찮은 척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아프면 내가 더 아프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괜찮은 척을 하지 않고 제발 이불 속에서 아무 생각도 안하고 싶었다.

 

갑자기 살던 집을 나오게 되어 당장 아이와 내가 입을 마땅한 옷가지도 하나 없었기에 짐이라고 해봐야 단촐했다. 급하게 근처 옷가게에서 산 아이옷 몇가지와 애착인형, 당장 엄마가 싸준 반찬들, 햇반, 세면도구 등이 다였다. 아빠가 같이 가준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그 집에 딸과 손자를 두고 돌아갈 아빠의 한없이 무너지는 마음과 뒷모습을 바라 볼 자신이 없었다. 카시트에 아이를 태우고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 씩씩하게 잘 지내겠노라 걱정하지 마시라, 거듭 말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차안에서 눈만 끔뻑이고 있는 아이가 낮잠에 들길 바라며 평소 불러주던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아이는 자장가가 슬프다고 했다.

이제껏 카시트에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던 네살 아이는 한 시간을 달리는 동안 한번도 칭얼대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놓인 이러한 일련의 상황 하나하나들이 모여 떼쓸 때와 떼쓰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는 눈치를 만든다는 것을.



호스트가 숨겨둔 열쇠를 찾아 대문을 열었다. 2월이라 화분 밑에 숨겨 둔 열쇠를 찾는 동안에도 꽁꽁 언 손 여기저기가 긇혔다. 그래도 한 손엔 캐리어를 한 손엔 아이 손을 꽉 잡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마당 인조잔디위에 야외용 철제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대낮이었지만 마당 위로 둘러쳐진 주광색 전구의 불을 켰다. 그리고 차디찬 철제 의자 위에 앉아 아이를 내 무릎에 올리고 꼭 부둥켜 안았다.


"이제 여기서 우리 잠시 우리 지내야해."

아이가 여기가 우리집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우리는 60밤만 여기서 잘꺼야라고 말했다.


방은 에어비앤비에서 보았던 대로 작고, 예쁘고, 가득 찬 느낌이었다. 호스트가 이런 소품들을 좋아하는 구나 싶었다. 들어가 보일러를 키고, 작은 침대 위에 놓인 전기장판을 켰다. 아이를 침대 위에 올리고 얼굴만 빼꼼히 빼놓고 이불로 감싸주었다. 호스트가 식탁 위에 놓아 둔 웰컴 쿠키를 손에 쥐어주었다.

집을 오래 비워 둔 탓인지 방은 금방 따뜻해지지 않았다.

아기자기한 소품 들로 한껏 예쁘게 꾸며진 방에서, 예쁜 그릇에 엄마가 싸준 반찬을 담아 아이와 나누어 먹었다. 아이가 마치 여행왔다고, 잠시 놀러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거실에 나와 앉았다. 냉장고에 호스트가 마시라고 넣어 둔 맥주를 찾아 두 캔쯤 마셨다.

애써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단박에 몰려왔다.

나도 안다.

아무리 예쁜 그릇에 밥을 먹어도, 조명이 켜진 마당에서 핫초코를 나누어 마셔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푹신한 쿠션을 끌어안고 아이와 만화를 봐도,

나는 그냥 술주사가 심한 남편이 무서워  야밤에 허겁지겁 도망쳐 나온 30대 중반에 들어선 아무 경력도 없는 아이엄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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