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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만의 Nov 09. 2021

국경을 넘으며 국격을 체험하다

아우토반은 예술이다.



프라하에서 독일 방향으로 쭈욱 운전해서 가다 보면 터널이 하나 나온다. 그리 길지 않은 터널을 쓰윽 넘으면 읏차, 독일 시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로 국경을 넘을 일이 있을 수가 없지만, 외국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국경을 넘게 된다. (체코는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폴란드 이렇게 무려 4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체코 고속도로를 생각 없이 달리다가 나도 모르게 어느덧 독일 아우토반을 타고 있거나 오스트리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식이다.

독일은 고속도로가 무료라 국경을 넘을 때의 내 무신경함이 그리 큰 문제가 안된다.(역시 부자 나라답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을 때는 내 무신경함이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


벌금을 낸다. ㅋ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기 전 체코 휴게소에서 비넷(vignettes)이라는 오스트리아 고속도로 이용 티켓을 사야 한다.

비넷의 모양은 우리나라 아파트 주차권처럼 생겨서 차 창문에 붙이게 되어있다. 오스트리아 검문소에서 쌍안경을 들고 있는 경찰들이 수동으로 비넷 부착 여부를 체크하게 되고, 이 비넷을 안 붙인 차는 삐뽀삐뽀 하고 경찰차가 따라붙어 '십만 원 내라~!' 하고 돈을 삥 뜯어간다.

여하튼,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고.


프라하에서 독일로 국경을 넘어가며, 또는 오스트리아로 국경을 넘으며 느낀 느낌을 얘기하려 했는데 옆길로 샜다.




체코는 독일, 오스트리아에 비하면 경제적 형편이 그리 좋지 않다.

독일이야 뭐, 말할 것도 없지만 오스트리아도 '어라, 생각보다 이 나라 괜찮잖아?'라는 생각이 들 만큼 경제적, 문화적으로 부유한 나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체코라는 나라가 여행책자 중 동유럽 편으로 분류되어, 체코는 동유럽에 속하는 걸로 인식하는데.

이 말을 프라하 영어학원에서 얘기했다가 체코 사람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받았다.


'우리는 동유럽 아니라고, 동유럽은 가난한 나라들만 있다고. 우리는 그만큼 가난하지 않아!'

'그렇다고 너희가 서쪽에 있는 건 아니잖아, 그럼 내가 너희 나라를 어떻게 분류해야 맞니?' 하니


'우리는 중부 유럽이야.'라고 대답하더라.

 

아이고.. 알았다. 그래 중부 유럽이라 치고.


어쨌든, 체코는 잘 사는 나라들에 끼어서 부에 대해 상당한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굳이 발끈하며 중부 유럽이라고 내 세계지리 지식을 수정해주는 걸로 봐서는.(오스트리아는 너희랑 같은 급으로 묶이기 싫어할.... 그만하자.)


여하튼, 경제적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뒤지지만 그들과 같은 부류에 속하고 싶어 한다.

유럽여행 중 유럽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들 보고 

'중국에서 왔어요? 중국사람이에요?' 

그러면 

'사람을 뭘로 보고!' 하며 쌍욕이 튀어나가는 것처럼


체코 사람들은 '너 폴란드 사람이야?' 그러면

너 죽고 나죽자고 덤빈다.


역시나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 


워낙 여행을 많이 다녀서 체코에서 독일로, 체코에서 오스트리아로 적어도 오육십 번은 왔다 갔다 한 것 같은데, 그때 느낀 바가 있다.


고속도로의 때깔이 달라진다.


표지판을 보고 '오, 여기부터 독일 시작인가?' 하고 아는 것이 아니라,

아스팔트 색깔을 보고 

'오호 때깔이 달라졌는데? 운전이 잘되잖아!! 이런~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듯 운전이 스무스해졌는데?' 하는 느낌이 오면 그곳이 독일이다.(체코야.. 미안해.)


그런 느낌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어김없이 EU의 별 마크와 함께 '도이치랜드(Deutschland)'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야박하게도 딱 국경이 시작되는 곳부터 아스팔트의 질이 달라진다. 그리고 고속도로 양 옆의 가로수의 때깔도 달라진다.

체코는 비쩍 말라 그냥 오늘 죽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늙은이 나무들이 그렇지 않아도 칙칙한 논밭을 배경으로 미관을 망치며 


'아이고, 나 죽네~ 콜록콜록' 

하는 느낌으로 서있는 반면.

 

독일의 가로수는 아주 그냥 이십 대 핸섬한 그루밍족이 따악 가르마를 샤프하게 면도해 이대팔로 넘기고 웨이브를 살짝 준 머리에 왁스를 발라 멋들어지게 넘긴 싱그러운 이십 대 핸섬한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츄스~(독일의 인사다. 진짜 뽀뽀할 때 쪼옥하는 소리를 인사로 만든 거란다. 츄스~)"

하면서.


아스팔트와 가로수뿐이랴.

체코에서는 민둥민둥해 보이던 언덕이 독일로 넘어오자마자 빌레로이 보흐 접시의 잔디 깔린 들판의 모습 그대로 그린 그린 하게 펼쳐진다.

초록색 잔디 들판에 황토색 곡선길, 그 끝에는 무조건 빨간 지붕의 집. 

'이래도 안 이뻐? 이래도?'하고 전적으로 이쁘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 같은 풍경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예술이다.

독일 시골풍경은 저 접시의 디자인 그대로다.



오스트리아를 넘어갈 때는 또 어떤가.


양옆 사방에 풍력발전소다.

정말 많다. 수수깡에 색종이를 달아서 만든 바람개비도 아니고 하얀색 거대한 풍력발전소를 들판에 백개씩 설치해놨다.

장관이다.

물론, 들판은 그린그린~ 그린듯한 잔디밭이다.

봄에 지나가면 유채꽃이 바다처럼 펼쳐져 또 그 나름대로의 장관을 이룬다.


눈부시게 하얀 풍력발전기의 팬 부분이 

'Welcome to Austria'

라고 손 흔들어 환영해 주는 것처럼, 오스트리아를 넘어갈 때는 너무나 기분이 좋다.


휴게소의 규모, 화장실의 청결함, 사람들의 매너, 옷차림 모두가 다 다르다. 물론, 가격도 다르다. 정말 비싸다.


국경을 지나갈 때마다 느끼는 건,

아무리 사람의 내면이 중요하고 외면은 중요치 안 다해도 그래도 '외관도 어느 정도는 중요치 않을까?' 하는 거다.

내면 70에 외면 30 정도?


너무 '아이고, 힘들어요. 먹고 죽을래도 돈이 없어요. 콜록콜록'하는 체코의 가로수보다는 '츄스~' 'welcome~!'이라고 매너 있게 인사하는 독일의 핸섬 가로수, 오스트리아의 대형 바람개비가 나는 마음에 든다.


외국에서 '중국사람이에요? 중국에서 왔어요?'라는 말에 기분 나빠하지 말고,


국격을 생각하자. 잘 입고 다니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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