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에 손님이 왔다. 각자 똑같은 짤막한 영어 드라마를 보고 최대한 대화 내용을 받아 적어 보는 것이다. 만남의 날은 될 수 있는 대로 완벽한 문장으로 복습하는 시간이다.
이 모임은 지난해부터 아이들 방학을 빼고 한 달에 2번쯤 해왔다. 편안한 관계이고 서로영어 수준을 알기에 부담 없이 예습한 내용을 나누고 있다. 물론 공부만 하는 모임이면 당연히 지루할 것이다. 공부가 끝나면 우린 점심을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장소는 아주 가끔씩만 각자의 집을 돌아가면서 하고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갖기도 한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도대체 영어실력이 늘지를 않는다. 공부를 해도 머릿속이 멍하다. 고등학교 때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에서 취업을 위한 자격증만 열심히 따느라 영어공부를 제대로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이 또한 핑곗거리 일 것이다. 아무튼 한 단어라도, 한 문장이라도, 아니 내용 파악이라도 머릿속에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
현지인들을 만나면 어설픈 스왈리어로 말하면 다들 좋아해서 나 스스로 만족을 하다 보니 영어도 스왈리어도 모국어도 다 어중간하다.
미국 조지아에 사시는 지인이랑 페이스톡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월급을 받지 않는 목사이자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차로 물류를 이동하는 일을 하는 것 같다. 그가 월급을 주고 일하는 일꾼은 아마도 남미 쪽에서 온 사람들인 듯싶다. 그에게 이런저런 안부를 묻다가 미국에서 사니 영어를 잘하시겠다고 물었다.목사님은 허허 웃으시면서 영어를 한마디도 안 해도 살 수 있다고 하셨다. 조지아에는 워낙 한인이 많이 살고 보니 그 안에서 영어를 사용 안 해도 비즈니스가 돌아간다고 한다. 점심은 어떻게 드시냐고 물으니 주로 한식당에서 식사를 한다고까지했다.그들 부부가 16년 동안 미국에서 고생을 엄청했지만 자유롭고 여유롭고 베풀며 살아가고 있음이 다행이고 감사했다.
영어공부가 끝나고 식사를 하면서 조지아에 사시는 지인의 이야기를 꺼내니 한분이 케냐에서도 영어를 사용 안 해도살 수 있다고 한다. 집이나 교회나 한인들 모임에서는 한국어로 소통이 다되고 마트에 가면 가격만 확인하고 물건을 사 오면 되니 그렇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를 참으로 소심하게 만드는 것은 아이들의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의 자리에서는 영락없이 위축이 되곤 한다.그래도 중년이 되니 아주 뻔뻔해져서 영어 못하면 어때, 당신들은 한국말을 아예 못하잖아라는 배짱이 생겨서 부끄러움을덜어내고 있다.
나는 1주일에 적어도 이틀이나 삼일은 케냐 대학생들과 교제를 한다. 어찌나 그네들은 인내심이 많고 겸손한지 나의 못하는 영어를 잘도 들어주고 눈치가 빨라서 눈대중으로 잘도 알아챈다. 그래서 언어가 안 느나 싶은 것이 늘 못다 한 과제처럼 맘이 편하지 않다.그래도 맘이 통하고 소통할 수 있으므로 못하는 영어와 스왈리어를 넘나 들며 애써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