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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나 Apr 20. 2023

가루도시에서

'내 모든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어지는 곳이다.'

   이곳은 백 년 내내 밀가루처럼 하얀 가루가 떠다녀 가루도시라는 이름을 가졌다. 외지 사람들은 이곳 사람들을 '가루사람'이라고 불렀다. 가루사람들은 외지인들에게도 이곳에 오면 자신들의 문화를 따르기를 요구했다. 가루사람들의 문화는 독특했다. 그들은 떠다니는 가루가 몸이나 얼굴에 붙는 것을 싫어했다. 몸도 얼굴도 까맣게 칠하고 다녔다. 물론 옷과 신발도 검정색으로 착용했다. 가루가 신체에 붙으면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검정 칠을 하면 그들은 가루를 깨끗이 닦아낼 수 있었다. 이들은 음식 또한 검정색이기를 선호했다. 가루가 붙은 음식은 입에 넣기 꺼려했다.

   외지인들은 가루의 절경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지만 가루사람들의 독특한 문화가 흥미로워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룬이라는 사내 또한 이곳에 온 지 하루도 되지 않았지만 절경보다는 사람들의 모습에 더 관심을 가졌다. 혼자 여행을 떠나온 그는 숙소 주인에게 연락해 이곳을 소개해줄 사람을 알아봐줄 수 있냐고 요청했다. 주인은 흔쾌히 그러겠다며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내일 아침 9시에 당신과 아침을 먹으러 갈 겁니다.'

   메세지를 보자 룬은 낯선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 기대되었다.


   룬이 눈을 떴을 때 한 아이가 침대 맡에 서 있었다. 노크소리도 없이 들어온 아이는 누워 있는 룬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마르헨이라고 해요. 준비가 되시면 같이 아침 먹으러 갈까요?"

   룬은 무뚝뚝한 아이의 모습에 당황해 하며 이불 밖으로 몸을 꺼냈다. 게다가 이 아이는 가루사람답지 않게 피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이 흰 피부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외지인인 것 같은 아이를 자신에게 소개시켜주다니 룬은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방문 근처로 갔다. 룬이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밖에 나가있겠다고 말했다. 옷을 갈아입은 룬은 차를 마시며 시작되었을 평소의 아침과 달라 조금 긴장되었다.

   아이는 앞장서 걸었다. 단조로운 어두운 색 거리였다. 특징 없는 건물과 집 때문에 혼자였다면 룬은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마르헨이라는 아이와 함께 걸어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골목으로 꺾어들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긴장이 풀리자 룬은 마르헨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마르헨? 오늘은 평일인데 학교에 안 가나요?"

물어봐놓고 너무 사적인 질문인가, 걱정하는 사이 두 사람은 식당에 도착했다. 외지인일까 싶어 물어본 것인데 식당에 도착한 마르헨은 종업원과 많이 친해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는 자신의 추측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르헨의 다정한 눈빛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종업원은 룬과 마르헨을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

   "자리 괜찮으신가요? 외지 사람들은 창가 자리를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룬은 일부러 마음 써준 마르헨이 고마웠다. 이 도시의 건물은 대체로 창이 작고 낮은데 이 식당은 그보다 크고 넓은 창을 가지고 있었다.

   "고마워요. 멋진 자리예요. 외지인에 대해 잘 알고 있군요."

   "이곳은 거의 외지인만 드나드는 식당이에요. 관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어요. 아까 왜 학교에 안 가냐고 물으셨죠? 아직 제가 어려보이나 보네요. 학교를 다녔다면 얼마 전에 졸업했을 거예요. 전 학교를 그만두고 이곳에서 일해야 했어요. 지금은 보다시피 관광객을 상대하며 돈을 벌어요.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도시니까요."

   룬은 종업원과 마르헨의 사이를 가늠해보며 물을 마셨다. 마르헨은 살가운 편은 아니지만 말을 잘 했다. 무뚝뚝한 말씨에도 배려심이 묻어났다. 종업원이 음식을 담은 쟁반을 들고 오자 마르헨은 식탁 위에 걸쳐 두었던 팔을 내렸다.

   "이 식당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들이에요."

   마르헨이 말을 마치자 종업원이 음식을 소개했다.

   "슐리스카라는 전통 음식과 크림오무콘 나왔습니다. 슐리스카는 깔끔한 맛이 일품이고 크림오무콘은 누구나 좋아할만한 달콤한 퓨전요리입니다."

   설명이 빈약했지만 슐리스카는 누가 봐도 전통음식이라 할 만큼 검은색을 띄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묽고 검은 소스가 음식을 까맣게 물들이고 있었다. 크림오무콘은 익히 알던 리조또와 비슷한 모양이었고 옥수수 토핑이 그 맛을 더 고소하게 만들어줄 것 같았다. 마르헨은 먼저 먹어보라는 턱짓으로 슐리스카를 가르켰다. 룬은 자신의 접시로 떠 온 슐리스카를 숟가락으로 힘껏 퍼 올렸지만 입으로 가져가는 데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낯선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호불호도 분명하기에, 자신의 표정을 읽고 마르헨이 실망하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가루도시의 전통 음식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 마르헨에게 고마웠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가루 몇 점이 토핑이 되어 슐리스카 위에 얹혀 있었다. 룬이 음식을 입에 넣고 씹어 삼키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맛있어, 부드럽네요! 마르헨, 같이 먹어요."

   즐거운 기색이 룬의 표정에 숨김없이 드러났다. 슐리스카의 맛은 신기했다. 두부 같은 느낌의 부드러운 식감은 얼마 씹지도 않고 금방 목구멍으로 넘어가게 했고 촉촉하고 따뜻한 소스가 어우려져 뱃속이 푸근했다. 소스에서 나는 살짝 새콤한 뒷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했다.

   "저는 그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제 걱정 말고 편히 드세요."

   마르헨은 슐리스카도 크림오무콘도 몇 숟가락 먹다가 물러나 앉았다. 다 먹었다고 했다.

   "마르헨, 배 안 고프겠어요? 나 구경시켜줘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괜찮아요. 저는 검정색을 싫어하거든요."

   룬은 이제야 마르헨이 피부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다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르헨이 검정색을 싫어해서 가루사람들처럼 검정색으로 칠하고 다니지 않는 거군요."

   "아뇨."

   마르헨이 말하려는 찰나 종업원이 다가와 그릇을 정리했다. 그릇을 치우고 난 종업원은 커피를 내오겠다고 했다. 종업원이 떠나자 마르헨은 식탁 위로 팔을 들어 올렸다. 소매를 걷어 올린 팔에는 붉은 자국과 하얀 자국이 번갈아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마르헨은 조금 화가 나 보였다.

   "피부병 때문이에요."

   음료를 올린 쟁반을 들고 종업원이 나타나자 또다시 대화가 끊겼다. 종업원은 룬의 앞에 커피를, 마르헨의 앞에는 오렌지주스를 내려놓았다. 룬과 마르헨이 감사인사를 하자 종업원은 자리를 떠났다.

   "물감을 바르면 병이 악화돼요. 그나마 약을 꾸준히 발라줘서 얼굴은 괜찮아졌지만 살을 가리고 다니는 한, 팔과 다리는 여기서 더 호전되지 않더라고요. 엄마는 모자도 쓰고 다니라고 하는데 그러면 얼굴에도 이런 무늬가 생겨서 그럴 수 없어요."

   룬은 표정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프진 않아요?"

   "네.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그래서 더 힘들어요. 전염된다는 소문이 돌아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거든요. 차라리 아파서 학교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저를 받아주는 일자리가 있어 다행이었어요. 그땐 병원비가 급했거든요. 그래봤자 검게 칠할 수는 없지만 이제 얼굴은 건강해보이잖아요."

   룬은 마르헨이 안타깝기도 하고 자신이 여행 온 이 도시에 대한 옅은 분노가 일었다.

   "갑자기 다른 말 해서 미안한데요, 이곳 사람들은 가루를 왜 이렇게 싫어하게 된 거죠?"

   "더러워서요. 사람들은 가루가 몸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가루가 붙었을지도 모를 제 몸을 피하는 거겠죠."

   "연구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도요?"

   가루도시에 오기 전에 룬은 도시에 관한 몇 가지를 알아보고 왔다. 자신도 가루를 위험하게 여겨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도시를 드나들며 현지인 체험을 하지 않는 관광객들에게, 그러니까 가루를 잘 씻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를 외지인들에게 이상한 증상은 없었다. 가루에 관한 논문을 제대로 살펴본 것은 아니기에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 도시를 방문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증거로 설명해주고 있었다. 간단했다. 가루는 더러운 것이 아니다.

   "피부병 때문에 물감을 칠할 수 없는 건데 사람들은 뒤집어서 말해요. 물감을 칠하지 않아서 피부병이 생긴 거라고요. 미처 씻어내지 못한 가루가 내 피부를 이렇게 만들었대요."

   마르헨은 말을 마치고 남은 오렌지주스를 들이켰다. 룬의 반쯤 남은 커피는 따뜻한 기운이 거의 날아가 있었다. 현지인들은 가루가 둥둥 떠 있는 이 커피를 마시는 룬의 모습 또한 더럽다고 여길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룬은 하루빨리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이제 나갈까요?"

   "그러죠. 하지만 걱정은 마세요. 이곳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불쾌감을 가지고 있진 않으니까요. 오히려 떼돈을 벌게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로 여기고 있죠."

   마르헨은 룬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그를 안심시키고자 했다. 종업원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눈 마르헨은 식당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장소는 검은 언덕이에요."

   가루도시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관광지라 익히 들어본 곳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은 싫지만 당신이 마음에 들어서 가는 거예요. 오늘은 기운이 많이 나네요. 룬은 내게 처음으로 존댓말을 써준 손님이거든요."

   마르헨의 흰 얼굴에 잠시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고마워요, 덕분에 검은 언덕에 가보네요."

   마르헨은 이제 룬과 거의 나란히 걸었다. 마르헨이 룬에게 걸음을 맞춰주고 있었다. 룬은 마르헨을 돕고 싶었다. 지금이야말로 선한 일을 할 때라고 생각했으며 그런 게 아니더라도 마르헨과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검은 언덕은 사진보다 더 척박했다. 아무것도 없이 맨 땅에 거센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보는 가루의 절경이 장관이라고 했다. 땅은 볼품없지만 과연 영화촬영지로 많이 쓰인 만큼 떠다니는 가루들이 땅과 대비감을 이뤄 신비로웠다. 바람을 따라 휘몰아치는 가루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꽃잎처럼 보였다. 이 장관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어느 지점부터 마르헨과 룬은 한 걸음 한 걸음 떼기 어려웠다. 현지체험 복장을 한 외지인들과 가루사람들이 뒤섞였다. 그리고 사람들 무리 중 한 명이 험한 목소리로 외쳤다.

   "병 옮기지 말고 저리 비켜!"

   마르헨은 룬과 함께 걷기를 그만두고 꽉 막힌 인파를 밀치며 사라졌다. 룬이 마르헨을 부르며 뒤쫓았지만 가는 팔다리를 가진 마르헨에 비해, 둔한 몸집의 룬은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데 무리가 있었다. 룬 또한 시야에서 마르헨이 사라지자 그를 찾으러 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저 인파에 휩쓸려 언덕 끝으로 다다르고 있을 뿐이었다. 돌아 내려오는 사람들 속에 어쩌면 마르헨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 올라가려는 사람, 줄지어 다니는 관광객 무리에 지쳐 앞으로만 나아갔다. 여기저기서 병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긴 했으나 룬은 귀를 닫았다. 그는 어서 이 도시를 떠날 내일이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니, 숙소 침대에 누워 휴식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이곳만 둘러보고 서둘러 내려가야지 생각했다.

   언덕 끝에 다다르니 여기저기 돗자리를 펴고 앉은 무리들이 보였다. 노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검은 언덕은 노을이 지기 전부터 어둡고 스산한 기운을 풍기는데, 붉은 빛이 들면 그 모습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노을 구경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해가 지고 있는데도 검은 땅에 생기를 불어넣는 듯한 기이한 풍경은 룬 또한 이상한 기분에 젖어들게 했다.

   '어떤 사람들은 회개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지 않을까. 내 모든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어지는 곳이다.'

   룬은 여기 어딘가 마르헨이 있지 않을까 기웃거렸다. 그러나 그 자그마한 뒤통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룬은 갑자기 여기 모인 사람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노을이 지자마자 급격하게 추워지는 것을 느껴 배낭에서 주섬주섬 겉옷을 꺼내 입고 있었다. 룬은 추위에 떨고 싶지 않았다. 그는 따로 챙겨온 외투가 없었기에 이상하게 야속한 사람들을 뒤로하고 언덕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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