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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나 Jan 31. 2024

벌레

책장과 책장 사이에서 구겨지고 싶다

나의 바깥은 너무 크고 거칠고 그러니까

기괴하고 웅장해서

간담이 서늘해져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사람들은 내가 작다는 사실을 종용한다

그게 억울하지도 않고

그냥 얇은 종잇장 사이에 끼어

끽소리도 못 내고 스러지고 싶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면 미안해

이 말은 입에 붙어서

유언을 말할 때조차 튀어나올 것 같다


그래도 시대가 시대인 만큼 코로나 검사를 해보시길 바랍니다


병가를 생각하다 병이 더 깊어진다

사람들과 절차와 서류…


기침 때문에 입을 닫을 수 없다

작은 내가 너무 시끄러워

말을, 쿨록, 제, 대로, 쿠울럭, 시작하, 콜록, 지, 도


끝내지도 못하게 됐다

숙주의 삶


어쩌면 수녀가 되는 고행이 나랑 더 잘 맞았을지도 몰라

소녀? 내가 소녀 불러줄까?

나는 숙주라는 사실을 잊고 웃는다

이제 가자 집에 날 기다리는 시계가 있어


나는 하드커버로 된 철학책보다 무거운데

작다


옛날 노래가 리메이크되는 시대네

낯선 노래들을 재생목록에 담다가

잠 속으로 떨어진다

굳은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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