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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나 Feb 01. 2024

비사교모임

일자로 된 좁은 주방이 있다

그 안에 사람 한 명 있고

사람 있는 풍경은 기시감이 든다


우리는 별개의 존재라는 가정이

주방을 더 춥게 만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겁에 질린다

내게 들리는 그의 삶이

아무렇지 않을까 봐


태연하게 행동한다

누가 웃으면 따라 웃고

맛있어요 하며 부지런히 먹는다

그 사람도 그런다

얼른 와서 드세요 말하고

누가 웃으면 따라 웃고


재료를 다듬고 국을 끓이고 그릇과 수저를 닦는

주방이 식당에 비해 좁지 않나 생각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은 적 없다

주방이 더 커야 맞는 게 아닌가

관철시키지 않는다


친구들에겐 나의 무엇을 팔고 있는 걸까 생각하다가


나는 어떤 것도 사랑한 적 없나?


무례하기보다 두려워서

다른 방향으로 걷는다

어디를 가도 기시감이 든다


'주방에 계신 어머니'

그 대사 짜치지 않아?

침묵

: 지금 난 모든 삶이 짜친단 사실을 깨달았어


너도 식당에 갈 때마다 이 영화를 떠올리고

이 주방은 식당에 비해 좁지 않나

주방의 모양과 거기서 일하는 사람을

신경 쓸지도 모르지


우리는 태연하게

신빙성 없는 테스트를 자주 하고

같은 영화를 같이 보거나 혼자 보고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서로를 궁금해하거나 궁금해하지 않는 것에

소란 떨지 않았다


너는 너의 삶을 특별하지 않게 말했고

내가 말하는 나의 삶도 특별할 게 없었다


… NO → 밀당을 잘한다 NO → 대체로 짝사랑을 한다 YES →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YES …

결과와 무관하게

응 아니

라 말할 수 있는 단순한 과정을 즐겼다

겁에 질릴 필요 없이

아무것도 안 팔아도 괜찮았다


그러다 문득 두려움을 떨치려

영속을 바라는 마음에서 도망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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