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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Mar 27. 2024

영화관이라는 회사




남보다도 못한 사이.

내 인생엔 그런 사람이 없을 줄 알았다.

아니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특히 당신들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영화관 일도 좋았지만 나는 사무실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가 좋았다. 나름 젊은 사람들만 모여있어서 어떤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잘 통했고, 대화함에 있어서 세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 상위 관리자 3명은 내가 참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믿고 따르니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도전 정신이 도파민처럼 뿜어져 나왔다.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해지고 몸은 그에 맞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나는 많은 성과를 내고 빠르게 승진에 승진을 해왔다.


뭐, 시간이 흐르니 그들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한 수순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단점이 보인다는데.


한 명은 사업 성공에 미쳐있었고, 한 명은 피드백이 없고, 한 명은 여행 다니기 바빴다. 점점 내가 할 줄 아는 게 많아서인지 그들의 업무력에 의심이 들었다.


그러다 그들은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그리고 나는 점장이 되었다. 인수인계라곤 종이 한 장뿐인 사람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기실 이때까지만 해도 큰 갈등은 없었다. 그저 조금 불만일 뿐. 하지만 내가 점장이 된 후부터 그들과의 악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T 점장은 퇴사 후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 

배운 게 뭐라고 사업이 답이다 싶었는지, 그동안 접촉 했던 업체들 도움을 받아 인테리어도 하고 현수막도 만들었다. 그는 내게 밖에 나오니 이렇게 좋다며 매월 전화를 해댔다.


나는 그들이 정리하지 못한(이라 적고 싸질러놓은이라고 읽겠다) 업무를 처리하느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해내는 중인데 그는 그저 지금이 행복하다 말했다.


그러면서 말미엔 관람권 좀 구매하면 안 되냐며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직원가로 사면 저렴하다).


회사 일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내가 점장으로 일하고 1년 반이 넘었을 무렵, 대뜸 사무실로 찾아와선 요즘의 고충에 대해서 물으며 본인의 사업 또한 잘 되어 가고 있음을 말하다 떠났다. 그때는 그저 이 지역에 놀러 온 김에 걱정 차 물어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 후, 부장이 나를 방으로 불러 말했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전에 나간 3명이 다시 돌아온다고.

부장은 내게 그동안의 매출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점장직에서 강등된다고 했다. 미안한 기색이 보였다. 알고 보니 그의 결정이 아니라 상무가 계획하고 추진한 일이었다. 미리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한 다음 회사를 빠져나왔다.



우리 지역은 강변을 중심으로 걷기 좋게 나무 데크를 설치했다. 나는 가끔 주말에 그곳을 찾곤 했는데 오늘은 업무 중간에 빠져나와 그곳에 있었다. 약간은 흐린 날씨, 강물은 칙칙하고 이따금 물방울이 뻐끔뻐끔 올라왔다.


담배가 무척 당겼다.

호주머니에 있는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빼물고 다른 한 손으론 셔츠 주머니에 있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싶었지만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담배 생각이 계속 났다.

오늘따라 운동하는 사람들이 없다.

그저 고요히 나 혼자 속을 달랬다.



몇 명은 퇴직한 3명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몇 명은 나를 참 싫어했던 사람들이다.

나도 처음엔 그들을 품어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들은 내가 숙여들어오길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매우 이기적이었으며 업무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으니까.



T 점장과 나머지 두 명이 돌아왔다. 나는 매니저로 강등됐다. 역시 인수인계는 없었다.

이번엔 내가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본인들이 필요 없다고 했다. 몇 십 년을 해온 업무라는 자신감. 

나에게는 오만함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이 본인들의 프라이드라면 그래, 그렇다고 치자.


복귀한 그들에게 있어 나는 아주 '큰' 눈엣가시였다.

처음엔 많이 도와달라며 입에 바른 소리라도 했지만 이후엔,


- 편 가르지 마라

- 차별하지 마라

- 업체에서 말하던데, 혹시 리베이트 받았냐


등등의 모욕적인 말도 서슴없이 뱉었다. 치욕적이었다.

그들은 내가 자리에 없을 때 나에 대한 험담을 했고, 

(뒤에서 해도 결국 돌고 돌아 당사자에게로 간다. 그걸 노렸을지도) 업무 중에는 단 한 명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이듬해 나는 8년을 넘게 다녔던 극장 생활을 정리했다. 나에겐 사람도, 돈도, 명예도 남지 않았다.


조금 늦게 깨달았다.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결국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정치력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 조금 늦게 깨달았다.




덧.

그들이 온다고 뭐 크게 달라졌을까? 아니, 리노베이션 아니면 답은 없었다.

그. 나. 마. 선점된 시장에서 점유율을 챙기려면 이게 답이었다.

T 점장과 나머지 둘은 항상 그러했듯이 일을 진행했고 실제로 리노베이션을 했다. 상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말이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이윽고 코로나가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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