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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Mar 20. 2024

기억에 남는 업체 사람들

극장과 관련된 업체 사람들




점장이 되자 소식이 어떻게 돌​았는지 곳곳에서 연락이 왔다. 배급사는 물론 여러 업체와 상가 사장님들, 극장과 잦은 인연이 있던 여러 단체들.

한동안은 전화받느라 바빴다.


배급사들은 본인들 영화를 잘 봐달라며, 상가 사장님들과 기타 업체들은 시간 나실 때 한번 들러달라며 전화가 왔다.  그중 몇 곳은 사무실에 들러 인사했다.

(대부분 각자의 급한 이유로 방문하는 경우였지만).

예를 들어 매점 업체들은 주로 계약 파기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멀티플렉스 y의 경쟁사 z는 다음 제휴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방문했다.


그들 대부분은 깍듯하고 또 깍듯했다.


나는 100만 관객이 드는 극장 점장은 이렇구나 싶었다.

업계에 인지도 없는 나에게 이런 전화와 방문이라니,

내 나이 29세, 부담이었고 생각보다 큰 왕관을 썼다는 기분이 들었다.




#1. 지역 배급사 이사와의 만남.

통화만으로 상대방의 인성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대충 파악하기에 부족함은 없다. 그리고 실제로 만났을 때 그 사실이 맞는다고 깨닫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우리 지역 내 영화를 배급하는 회사 이사다.


그는 한 번씩 지역 내 극장을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과거의 경험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며, 잘 보여야 좋은 영화를 받을 수 있다 떳떳하게 말하는 아주 교만한 사람. 기피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꼭 만나야 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점심을 사주고 카페에 앉아있을 때쯤(커피도 내가 샀다) 본인들이 수입, 배급하는 작품의 팸플릿을 펼쳤다.

그러면서 이번 00 영화 시사회에 다녀왔는데 여배우 노출이 많이 나와 관객이 많이 들 것이라 말하며 몸매를 평가하는데... 아 정말 저질스러웠다.

오랜 기간 동안 군림(갑질)을 하다 보니 내뱉는 말에 옳고 그름을 모른다고 생각해 더 이상 상종하기 싫었다.

그 후론 그의 만남에 응하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퇴사한 지금도 생각난다.

잘 보여야 좋은 영화를 준다던 그와, 다른 극장에 필름 못 가게 막아라던 우리 회사 상무.


둘 다 변화하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 속에 사는 불쌍한 사람들. 물론 그 피해를 압도적으로 입고 퇴사한 내가 더 불쌍하지만.

이후 소식을 들어보니 저 배급사는 폐업했고 회사 상무는 사장이 되지 못하고 장렬히 퇴사 엔딩했다고 한다.

 


 


#2. 인형뽑기 사장님

어느 날 남자 한 명이 사무실로 들어와 나를 찾았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보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는 예전에 인형 뽑기 등의 부속 기기를 운영하던 사장님이었다. 반가움에 악수를 하고 생각해 보니, 갑자기 사라진 인형 뽑기 기계와 그 자리에 새로 생긴 4D 라이더가 생각났다.


사장님의 말은 이랬다. 갑자기 디스크가 터졌단다.

때문에 부속 기기 관리를 못하고 있었는데 예전 점장이 바로 계약 해지를 했고 어쩔 수 없이 따로 인력을 고용해 기기들을 빼고 재활에만 전념했다는 이야기.

그렇게 한동안 보이지 않던 사장님은 '마침' 라이더 사업이 철수한 이 때 내게 찾아온 거다.

새로 시작하고 싶다 했다. 계약을 하고 싶단 말이 길게 돌아왔지만 이해관계가 맞아 진행하기 좋았다.

마침 인형 뽑기가 유행이 되고 있던 터라 기기 입점 후 장사가 잘되었고 사장님은 돈을 많이 벌었다.


이렇게 해피 엔딩이면 좋으련만, 사장님은 돈을 많이 벌기 시작하자 조금씩 매너가 없어졌다. 극장 직원들을 밑에 사람 부리듯 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경고를 주고 거리를 두었다. 그 후론 조용히 다녔는데...

내가 퇴사한 후 사업을 크게 하려고 상가를 얻어서 시작했지만 그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고 전해 들었다.





# 3. 상가 입점 희망 사장님

며칠째 전화가 와서 나를 찾던 어떤 남자. 그는 우리 건물 1층 상가에 입점하고 싶다는 분이셨다.

하지만 그분의 업종은 기존 입점 업체와 일부 겹쳐서 거절의 의사를 완곡히 표현했는데, 나를 꼭 한번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 하였다.

당일이 되어 만나니 그분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젊은 나이에 점장이라니 부럽네요”


‘부럽다고....?’에서 시작한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지금도 가끔씩 생각이 난다.

200 겨우 넘는 월급에, 내가 점장인지 회계사인지 모를 직업적 혼란에 빠져 있고, 회사는 투자도 안 해주면서 돈을 벌어오라고 하는 이런 상황에 있는 내가 부럽다니. 정말 사회 위치 상 좋아 보이는 겉모습의 힘은 크구나 싶었다.


하긴 당시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돈은 더 벌어도 어디서 직업을 말하라 하면 망설여지니까,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 말해도 사회의 인식은 그렇지 않으니까 겉모습의 힘을 인정한다.


사장님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 만난 덕분에 더 자세한 사유와 단호한 표정으로 거절할 수 있었다.




-


이런 연락도 지역 내 여러 극장이 생기면서 많이 줄어갔다. 명절 때 밀려 들어왔던 선물, 안부 연락 등등... 극장의 위상이 바뀌니 모든게 현저히 줄어갔다.

아쉽기도 했지만 결국 이게 자본주의가 아닌가 하며 사회의 씁쓸함을 맛봤다.


잘 될 때 곁에 있고 아닐 때 떠나가는 사람들. 역시 옛날 말 틀린 거 없었다. 이때 이후로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거 같다. 나는 결국 사람은 떠날 것이라는 생각을 기본 값으로 두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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