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삼 Mar 13. 2024

결국 상사도 뽑기를 잘해야 한다

근데 내가 뽑을 수 없음 주의



우리 극장은 1년에 1백만 명이 오는 소위 잘나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낙후된 시설과 위탁점의 한계*가 보이면서 위기가 조금씩 찾아왔다. 그래도 그전에는 고객들이 마땅한 대체제가 없어 버틸 수 있었지만 주변에 신규 극장이 들어서면서 우리 극장은 본격적으로 휘청이기 시작했다.


이게 내가 점장이 된 그 해에 일어난 일이다.


* 위탁점은 멀티플렉스社가 직접 운영하지 않아 굿즈라던가 기타 이벤트에 제약이 있다.




나는 극장 리노베이션(건축물 개보수)을 주장했다.

올해 편성된 예산은 적지만 전용이나 신규 편성을 통해 금년 중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장과 상무는 달랐다. 큰돈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본인의 실적과도 관계있으니까.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사장은 내부가 아닌 외부부터 바꾸자고 했다. 

아는 업체가 있다며 나에게 명함을 주었고, 꼭 연락하여 진행하라 했다.


"네, 사장님 통해서 들었습니다. 저희 쪽 시안과 견적 준비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며칠 후 도착한 시안을 보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냥 크기만 한 극장 로고와 외벽을 둘러싸고 있는 LED, 그리고 견적은 1~2억 대. 그냥 모텔 외관이었다. 이 돈이면 내부 인테리어 메인 홀을 바꿀 수 있을 텐데...

사장은 단호했다.


"진행해!"




상무는 다른 사업을 진행해야 할 때라고 했다.

요즘 트렌드는 베이커리라며 그쪽 방면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빌고 빌어 극장 리노베이션 예산을 한 꼭지 얻었다. 하지만 이 예산으론 매점 정도 바꿀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식으로 2년 전엔 대기홀 한 구석을 바꿨다. 나는 조금 조금씩 바꿔 나가는 재미가 있을 거라고 말하는 상무의 저 주둥아리를 찢고 싶었다.


결국 외부 간판과 매점 인테리어 공사는 진행했지만

그마저도 시안이 마음에 안 든다며 3번을 고쳐나갔다.

그 사이 다른 극장들은 개관을 했고 우리 극장의 관객 수는 쭉쭉 빠져나갔다(돌이켜보면 미리 했다 한들, 이 시안과 일부 인테리어 변경으론 어림도 없다).




지역 내 관객 점유율을 2/3 차지하던 우리는, 개인의 욕심에 가득 찬 수뇌부에 의해 1/2 이하로 내려갔다.

그리고 관객과 매출 감소의 책임은 오롯이 내 것이었다

인정하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이 상황 속에서 나의 발버둥은 호수에 나뭇잎 하나 떨어진 정도의 파장만 일었을 뿐이다.


그러다 상무가 바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게다가 새로 오는 상무는 극장 사업에 우호적인 사람이었기에 나는 희망을 품었다.



"상무님이 잠시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출근하자마자 전해진 호출에 대충 수첩을 챙겨 부리나케 달렸다. 계신 곳 6층, 비서가 문을 열자마자 상무가 내게 말했다.


"너 대체 뭐 하는 애냐"


상무는 지금껏 감소한 관객, 매출에 대한 문제를 내게 말했다. 여러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그의 표현에 의하면 나는 '아무것도 안한' 점장이었다. 그는 리노베이션 말고 다른 대책을 갖고 오라 했다. 그러면서 이전 점장에 대한 이야길 꺼냈다.


"걔는 여기저기 힘 좀 써서 다른 극장 영화 개봉도 못하게 하고 그랬는데, 너는 왜 못하냐"


그리고 본격적으로 비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그 모든 것은 다 필름 시대의 이야기였다. 바뀌어 가는 현실에 반응하지 못하고 말하는 모습이 조금은 우습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회사는 지옥이었다.

나는 일만 잘하면 충분한 리더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눈엔 한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리더는 일보다 다른 것을 더 잘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깨달았다고 해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직을 하고 나서도 나는 또 똑같은 실패를 맛봤으니까.




이전 14화 영화관 점장요? 일개 회사인이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