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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Mar 06. 2024

영화관 점장요? 일개 회사인이에요.




나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중에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했다. 그리고 빠듯한 일정을 싫어해 해야 하는 일을 취소시키곤 했다.

그런 나에게 영화관이라는 회사는 해야 하는 일만 부지런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었다.


영화관 점장이 된 후 나의 바쁨은 우상향 그래프처럼 쭉쭉 뻗어나갔다. 성의 없는 인수인계로 업무를 파악하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했고, 2명 분의 일을 하느라 12시간 업무는 한동안 기본이었다.

정해진 업무만 해결하는 데 일주일, 아니 한 달이 훌쩍 가는 와중에 꼬인 업무도 풀어야 해서 적응이 쉽지 않았다.




꼬인 실타래 일지 1.

멀티플렉스 Y에서 온 매니저의 업무 수준과 태도에 대한 불만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동안 낙하산 A 차장과 환장의 호흡을 보이며 기행을 일삼았지만 이제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게 현장 관리자들의 말이었다. 그 매니저의 기행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영사실 빈 공간에 테이블을 설치하여 A 차장과 둘만의 회의 후 결정하고 공지하였다

둘째,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 올라온 불만 글 대상인 스텝을 따로 불러 인격적으로 비난하였다

셋째, 용모 복장을 강조하면서 정작 본인은 젖은 머리로 출근하거나 유니폼이 불청결하였다.


등등의 사례를 근거 서류로 만들어 멀티플렉스 Y에 공문을 띄웠다. 그리고 매니저는 몇 개월 뒤 교체되었다.




꼬인 실타래 일지 2.

낙하산 A 차장이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재계약한 매점 업체들을 정리해야 했다.

A 차장은 어쨌든 본인의 실적을 만들고 싶어 했다.

한 날은 매점 업체들을 하나 둘 불러, 영화관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소위 얼마까지 내놓을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성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은 차근차근 신규 업체로 바꿔나갔다.

시작은 중소 업체부터였다.


나는 오랜 기간 동안 관계를 유지한 업체들과의 신의도 있었지만, 배송과 A/S가 불 만족이었던 신규 업체의 행동을 바로잡고자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계약의 정당성, 혹시 리베이트는 없는지 등등 조사한 결과, 회사 간에 정식 계약을 맺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호재였다. 나는 곧바로 여러 업체에 연락을 돌려 공개 입찰을 진행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매 시장에 도매 업체를 불러들였다.

A 차장이 데려온 업체에 신뢰가 없었고(GMO 관련 서류 제출에만 몇 주가 걸리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도매 업체 쪽이 훨씬 효율적이고 이득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더 좋은 지원을 받으면서 훨씬 저렴한 단가로 계약하는 성과를 이뤘다.




꼬인 실타래 일지 3.

극장 업계가 호황을 맞이하면서 전 점장은 몇몇 상영관을 특화관으로 만들기에 이른다(좌석, 스크린, 사운드를 강조한 상영관을 말함, 예를 들어 아이맥스, 4D관 등). 물론 위와 같이 아이맥스나 4D였다면 경쟁력이 있었겠지만, 좌석이 진동하는 정도의 효과로는 관객들의 유입을 늘릴 순 없었다.


결과는 대실패. 문제는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특화관 수익으로 돈을 갚아나가겠다며 업체와 후 정산으로 계약했지만, 금액은 매우 미미했고(보고서 작성하기 민망했다. 2년여간 1/10도 벌어들이지 못했다)

그 결과 일괄 정산 금액이 2억 원이 넘어 사장이 노발대발하였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은 현재 점장인 나에게 있었고 이듬해 나는 회사로부터 감사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기실 영화관 점장이라는 자리에 앉았지만 온전히 영화관만 신경 쓸 수 없었다.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나는 좀 더 내가 좋아하는 마케팅이나 기획을 원 없이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관 뿐만 아니라 상가, 공익사업, 그저 정형화된 페이퍼 작업 등 해야 할 부가 업무가 너무나 많았다.


업무를 분배했더라면 달라졌을까


당시의 나는 내가 부수적인 업무를 다 가지고 있어야 동료들이 극장 일에 더 집중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참고 견디며 해나갔지만, 이것이 틀린 결정이었다는 것을 퇴사 후 깨달았다.




이전 13화 영화관도 결국 회사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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