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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Feb 28. 2024

영화관도 결국 회사인걸요.




지방에 있는 극장이지만 매년 1백만 이상의 관객이 드는 곳이라 관리자로서 쉽지는 않았다.

특히나 내가 입사하면서부터 기존 관리자 퇴사가 많았고 영사기 역시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도기라

시즌 2의 기분으로 일했다. 업무를 하나하나 재구성하고 분리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극장 수입이 안정적이니 기존의 상급 관리자(점장 등)들은 추가 사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요식업은 물론 커피 사업까지 진행하면서 무척이나 바빠졌고 그럼으로써 극장 관리는 점점 소홀해져갔다.

그러다 회사에서 새로운 사람을 영화관 점장에  앉히면서 미세한 균열이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극장 업계는 전혀 모르는 낙하산 인사에 기존 상급 관리자들은 반발했고, 결국 그 일이 확대되어 상급 관리자 3명이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중간 관리자의 최고 선배였던 나는, 회사로부터 점장직을 제안받게 되었다.



-


낙하산 인사 이후 상급 관리자 3명은 극장에서 최소한의 역할만 했다.

점장은 요식업 쪽으로 배치되었고(사실상 좌천이었다) 부점장과 매니저는 해외여행으로 자주 자리를 비웠다.

특히나 매니저는 중간 관리자 중 1명을 항상 해외로 데려가려 해, 스케줄 조정이 빈번히 이뤄졌다.


무슨 마음인지 아는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한테도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인가 하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한 달, 두 달... 나는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모든 말에 가시를 달아 상대방을 깊게 찔렀다.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이 먼저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는 점장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들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이건 이렇게 해서 이런 식으로 하면 돼"


인계는 이런 식이었다, 몇 줄의 글과 마우스 휠을 굴리며 말하는 정도. 정작 중요한 상영관 운영과 프로젝트 진행도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관련된 업체, 임대된 상가, 단 하나의 내용도 전달받지 못했다. 그들이 전달해 준 건 인트라넷을 이용한 회계 처리 뿐.


나도 마음 떠난 사람들에게 더 묻고 싶지 않았다.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그동안 고생했다며 박수받으며 퇴사했다.


나도 웃으며 박수를 쳤다.

속으론 진절머리가 났지만.


그리고 나는 업무와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



낙하산 인사로 온 A 차장은 타 부서에서도 받길 꺼려 한 골칫덩이였다.

본인 생각이 강하고 타인 이야기는 듣지 않으며, 일하기 싫으면 자리를 비우는 한량 중의 한량이 현현한 정도랄까.


한 번은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하도 한량인 A 차장 때문에 화가 난 상사가 앞으로 퇴근할 땐 오늘 뭐 했는지 시간마다 적어서 보고하라고 했다. 그는 그때의 사건이 꽤 인상 깊었는지, 이곳으로 배치되어 부점장에게 똑같은 지시를 내렸다.


부점장은 얼굴이 상기되며 "저 미X놈" 이라고 매일 욕했지만, 나는 속으로 꼬시다(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배치된 후 영화관 상영 스케줄을 작성했는데, 정말 본인이 하고 싶은 데로 해서 관리자들의 빈축을 샀다. 대형관 2개를 동시에 마치게 하질 않나*, 아직 좌석 점유율**이 좋은 영화를 소형관으로 옮기질 않나,

무엇보다도 스크린쿼터***라고는 전혀 지키질 않았다(이후 이것은 그가 떠난 후 기존 점장의 필사의 노력으로 맞췄다).



* 대형관 2개가 동시에 마치면 생기는 일

동시에 마치는 일이 왜?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많은 사람이 홀에 몰리면

1. 안전 사고 위험이 있고

2. 상영관 청소를 위해 근무자 수가 집중적으로 많아야 하고

3. 다음 회차 입장이 겹치며

4. 매점 줄이 길어지고 길면 구매를 포기하는 고객이 생기는 등등의 상황이 이어서 오기에 손실이 크다.



** 좌석 점유율(= 배정 좌석 수 / 총 좌석 수 *100)

상영관 내 총 좌석에서 판매된 좌석의 수 비율을 말한다.


*** 스크린쿼터

자국 영화를 일정 기준 이상 상영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하며, 우리나라는 (상영관마다)73일이 기준이다.




아무래도 이분이 인상 깊었긴 했나 보다, 이렇게 주저리 적어대는 걸 보니. 지금에야 생각해 보면 A 차장은 몰랐던 거지 악의는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믿고 의지하고 따른 상급 관리자 3명이 참 몹쓸 짓을 했다. 그들은 몇 년 뒤 내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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