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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May 23. 2024

영화관의 시련



유난히 잊지 못하는 날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꽤 높은 확률로 우리에게 아주 기쁜 날이었거나 슬픈 날이었을 것이다.

또 운이 좋게도(또는 안 좋게도) 그런 날은 우리의 머릿속에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라던가, 평생의 파트너가 생긴 날이라던가.


많은 희비의 날이 있지만 오늘은 확률상 일어나기 힘든 ‘영화관의 그날’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당시 우리 관리자 팀은 인력이 부족해 주말을 제외하곤 혼자 일을 해야 했다. 그날의 나도 어김없이 혼자 영화관에 출근했다. 2012년 6월 5일, 현충일을 앞둔 평범한 날이었다.


다만 조금 특이했던 건 전야 개봉이 있었다는 거다.

6월 6일 개봉 예정이었던 <프로메테우스>가 한 주 전, 5일 18시 이후 개봉을 확정 지었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가 개봉하다니 퇴근 후 볼 생각에 혼자 근무임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평일 조조시간대 극장은 의외로 관객이 많다.

그에 비해 배치된 스텝은 많지 않기에 관리자는 바쁘게 몸을 움직여야 한다. 매점과 매표를 오가며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어느덧 조조 시간 마지막 영화만 남았다.

이렇게 끝인가 하는 찰나, 옆자리 스텝이 말했다.

"어? 관리자님 PC가 먹통인데요???"




영화관에는 공식 3대 재앙이 있다.

그중 전산 다운처럼 티켓을 팔 수 없는 상태가 오면 현장은 아비규환이 된다. 영화라는 매체가 미리 공지된 시간을 약속으로 콘텐츠를 파는 곳인데, 전산 다운은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대응하는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먼저 스텝과 고객이 있는 곳에서 상황을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판매된 데이터를 출력하여 스텝들에게 나눠 고객들을 안내한다.

영화마다 담당 스텝을 정해 티켓을 판매하도록 한다(좌석 중복 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판매된 좌석을 안내하고(결제는 현금이나 다른 카드기에) 티켓은 수기로 작성하여 판매한다.


그렇게 전산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버틴다.



그런데 이게 사실 두 명이 해야 할 일이다.

한 명이 고객 안내를 하고 다른 사람이 데이터를 정리해 줘야 한다. 다행히 이날은 연차가 있는 스텝 덕에 겨우 데이터를 뽑아 대응할 수 있었다.




폭풍 같은 오전 시간을 보내고 한적한 오후,

쌓아놨던 일을 정리하려는데 무전기가 울렸다.

"관리자님 위생점검 나왔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영화관엔 3대 재앙이 있다.

그중 위생점검은 매점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이벤트인데, 그걸 매점 담당도 아닌 내가(나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에 정신이 혼미해져갔다.

‘왜 하필 오늘일까, 난 이미 전산 다운에 정신이 오염되었는데...’


* 굳이 재앙이라 표현한 것은 철저히 관리자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점검 대응 시 혹시나 할 실수에 대해 스트레스도 심하고, 점검 대응자가 보고서 초안 역시 작성해야 한다



다행히 매점 담당 관리자가 잘 준비해 둔 덕분에 큰 이슈는 없었다, 하지만 응대 관리자로써 해당 내용의 공유, 보고서 초안 작성이라는 일더미 속에 들어가야만 했다. 물론 그러면서 관객이 몰리면 현장 지원도 해야 한다. 아침때만 하더라도 분명 널널한 하루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큰 산 두 개째다.



저녁 시간에 가까워지자 <프로메테우스>를 관람하려는 관객들의 러시도 이어졌다.

나는 티켓을 판매하면서도 나중에 관람할 생각에 들떠있었다. 야간 관리자가 출근하고 업무를 인계하면서(매점 담당이어서 시간이 좀 걸렸다) 힘들었지만 한 편으론 실수 없이 다 해결한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있었다.


인계가 끝나갈 무렵 사무실의 정적과 내 멘탈을 깨버리는 무전이 들렸다.

"영사실입니다. 지금 1관 <프로메테우스> 영화 서버가 에러 나서 곧 꺼질 예정입니다"



아- 3개를 다 모으다니.

이쯤이면 눈치챘겠지만 3대 재앙 중 마지막이 바로 영사 사고다. 나와 야간 관리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현장으로 뛰어갔다.

한 명은 상영관에, 한 명은 매표소에(혹시나 발생할 환불준비).

한달음에 도착한 상영관에서 나는 벅차오르는 숨을 삼키며 관객들에게 안내했다.

“하-읍, 지금 영화 서버가 불안정해서 잠시 멈췄다가 재상영할 예정입니다. 관람에 방해드려 죄송합니다-합”



재앙 3개가 단 하루에 다 일어났다. 그리고 그 중심엔 내가 있었다. 이날은 정말이지,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안 풀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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