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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암 Oct 19. 2020

자라는 것은 언제나 고통이 따르는 걸까?

L군의 성장통과 엄마가 되려는 아내의 성장통

회사의 같은 팀 상사이자 좋은 이웃 중 하나인 L 과장은 세 살 배기 아들이 하나 있다. 최근 맞벌이를 다시 시작하면서 올해 3살이 된 L주니어는 어린이 집을 다니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L과장은 매번 퇴근길에 어린이집을 들러 아들을 하원 시킨다. 나는 종종 L과장의 배려로 퇴근길에 차를 얻어 타는데 그때마다 L주니어의 하원길을 함께한다. 

입사 첫해에는 L주니어가 잘 걷지도 못하는 더 어린 아기였는데, 지금은 방실방실 웃으며 귀여운 목소리로 아빠인 L과장과 짧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아기가 이렇게 빨리 크나 싶어 신기하기도 하고, 내년에 태어날 우리 아이는 언제 저만큼 커서 날 아빠라 불러줄까 하는 기대와 부러움이 밀려든다. 정작 L과장은 너무 귀여워 죽겠는데 하루하루 너무 빨리 자라서 아까워 죽겠다고도 하니, 이것이 좋은 건지 저것이 좋은 건지 아직까지 아리송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말도 통하고, 좀 컸으니 밤에 잘 깨지도 않겠네요?"


 하고 문득 부러운 마음에 겪어보지 못한 나의 미래를 상상하며 물었더니, L과장은 여전히 쉽지 않다며 하소연했다. 팔다리가 아프다며 여전히 밤에 잘 깨고 울며 보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인 만큼 한밤 중 성장통이 원인이 아니겠나 퇴근길 차 안에서 성장통이 뭔지 모르는 당사자를 뒷자리에 두고 추측해보았다.


언제 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어릴 때의 나도 밤잠을 종종 설쳤다. 194cm의 장신으로 자라기 위해서 어릴 적부터 키가 남다르게 자랐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무당벌레나 풍뎅이 같은 것들이 내 팔과 다리를 파먹는 악몽을 꾸었는데, 잠에서 깨어나 울부짖으면서 어설픈 단어와 발음으로 설명을 해본들 엄마 아빠가 알아들었을 리 없었겠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동화며 과학이며 전집이 집에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 곤충과 관련된 책을 보고 실제보다 훨씬 크고 상세히 묘사된 무당벌레와 풍뎅이에 충격을 먹었는지 그 책의 삽화 중 통나무를 파먹고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던 풍뎅이와 무당벌레 따위가 팔을 파먹는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아기도 성장통을 한다는 생각을 해보니, 나도 그 당시에 밤마다 자라나는 내 팔과 다리에서 밀려오는 고통이 당시 무서워하던 벌레와 연관되어 꿈으로 나타났던 것이리라.


어느덧 임신 9주 차, 아내의 입덧도 절정에 달했다.(사실 현 상황이 정점이라 단언할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활력이라면 지구 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아내지만, 입덧을 시작하고는 먹는 족족 화장실 변기를 부여잡게 되니, 입맛이며 기운이며 예전 같을 리가 없었다. 물론 직접 겪는 당사자가 제일 힘들지만, 옆에서 보는 나나 멀리서 소식을 전해 듣는 가족들이나 입덧은 모두에게 참 힘든 일이기 때문에 얼른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내는 입덧을 시작하고 잘 먹지 못한 탓에 체중이 조금 줄었다. 최근엔 보건소에서 입덧 약을 처방받아 어느 정도 도움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토는 나오니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뱃속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아내는 입덧이라는 새로운 고통을 묵묵히 견뎌 내고 있다. 성장은 언제나 늘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 너무 가혹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엄마로 성장하는 아내가 고통을 견디는 것이겠지. 하루하루 밀려오는 고통을 몸으로 같이 느낄 수 없더라도 아빠가 되어야 할 나도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인 도움을 주며 함께 나눠야 할 우리 가족의 새로운 성장통을 함께 견뎌 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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