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에 사는데요, 부자는 아니에요

압구정 사는 이야기-맛집

by 크림동동

(압구정 주민이 된 지도 어느덧 두 해를 넘겼다. 그동안 병원이니 미용실이니 어버버 하며 동네 분위기 익히느라 헤매고 다녔는데 이제 겨우 이 동네 사정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이즈음 해서 동네 정착기를 한번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시작은 식당 이야기부터 시작할까 한다.)


압구정에 이사 오고 나니 주변에서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은 집값. 갑자기 집들이(얼마 만에 들어보는 용어인지)를 하라는 둥, 집에 한번 놀러 가겠다는 사람이 늘었다. 그다음으로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거기 맛있는 곳 많지? 그 근처에서 보자.’ 일단 집값은 너무 민감한 문제이니 제외하고, 식당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할 말이 좀 있다. 일반적으로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외식을 잘하지 않는 법이다. 아니, 그건 나만 그런가? 어쨌든 적어도 내 경우엔 좀 멀리 나가야 외식하는 기분이 난다. 그러니 이 동네 ‘맛집’엔 갈 일이 없다. 둘째, 더 직접적인 이유이긴 한데, 이 동네 식당은 전반적으로 가격대가 높다. 아들도 멀리 떠나 부부 둘이 사는 처지에 주말마다 데이트할 것도 아닌데 인스타 사진에나 어울릴 듯한 예쁘장한 식당들은 눈요기로는 좋지만 별로 들어갈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사소할 수도 있지만 덧붙이자면 나는 배달도 시키지 않는다. 앱조차 없다. 그러니까 집에서 시켜서라도 이 동네 음식을 먹어본 일은 없다는 거다. 즉, 간단히 말해서 나한테 이 동네 맛집을 묻는다는 건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셈이다.


그럼에도 ‘자기 편하게 거기서 보자. 내가 그쪽으로 갈게.’라는 말을 들으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소위 이 동네 맛집이라는 곳들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지나가면서 식당들도 한번 쳐다보게 되고 유튜브 채널에 ‘압구정 맛집’이라고 검색도 해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구미에 맞을 것 같으면 어쩌다 가 보는 일도 생겼다.


그렇게 이 동네 맛집을 찾다 보니 알게 된 건, 압구정이라고 다 비싼 식당만 있는 건 아니더라는 것. 인스타용으로 겉으로만 예쁘장하고 인테리어만 멋진 집이나 미슐랭 별 하나쯤은 달고 다니는 넘사벽 고급 식당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오래된 맛집들도 있었다. 물론 그 맛집이 내 입맛과 맞았느냐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쯤 해서 초보 압구정 주민인 내가 가 본 식당과 카페 몇 군데를 한번 정리해 본다. 기준은 두 번 이상 방문했던 곳, 가격이 너무 부담스럽지 않았던 곳, 그럼에도 만족스러웠던 곳이다.



딸랏

-모 가수의 맛집 소개 유튜브를 보고 가게 되었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맛도 좋다. 가장 유명한 태국식 뼈찜(랭쌥, 30,000원) 이외에 쌀국수 종류도 다 맛있다. 개인적으로 중화식 야끼소바(랏나 15,000원))를 가장 좋아한다.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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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2.jpg 랭쌥(태국식 뼈찜)
dd3.jpg 랏나(중화식 야끼소바)
dd4.jpg 쏨땀


송옥

-광화문이 본점인 유명한 메밀국수 가게. 대표 메뉴인 판메밀(12,000원), 메밀국수 종류 이외에도 우동도 맛있다. 냄비 우동(12,000원)은 특히 훌륭하다. 지인들과 몇 번 이곳에서 먹었는데 다들 만족했다. 점심시간에는 붐비니 여유 있게 식사를 즐기고 싶다면 11시 30분 오픈 시간에 맞추어 갈 것.

KakaoTalk_20251111_150631934_10.jpg 송옥. 매장이 널찍하다.
KakaoTalk_20251111_150631934_11.jpg 메뉴가 다양한 편이다. 판메밀이 대표 메뉴.


압구정면옥

-맛집을 찾기 위해 가끔 ‘당근’ 앱이나 ‘쓰레드’도 살피는데 압구정에서 맛집을 찾는 질문도 간혹 올라온다. 그러면 압구정에는 맛집이 없다는 글들이 대부분인데 누군가 압구정면옥은 예외라는 거였다. 그리고 거기에 압구정면옥은 맛있다는 댓글들이 줄줄 달렸다. 그 글을 본 이후 압구정면옥이 궁금했는데 지난여름, 마침내 가 보게 되었다. 평양냉면이 대표메뉴였고 메밀 함량이 높은 면은 맛을 메밀향이 진했고 육수도 맛있다. 두 번 갔는데 두 번 다 만족스러웠다. 가격은 메밀 냉면 한 그릇이 14,000원이지만 이 동네 물가를 생각하면 평균 수준. 압구정역에 인접하고 있고 깔끔한 식당 외관도 장점이다. 누구를 데리고 가도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곳.

a1.jpg 붉은 벽돌이 깔끔한 외관
a2.jpg 평양냉면


던킨 원더스 청담

-아침 7시부터 문을 여는 도넛 가게. 통창으로 도산대로를 바라보며 도넛과 커피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정동향이라 아침 햇살이 정통으로 눈을 찌르니 더운 여름에 창가에 앉는 건 피저녁 시간으로 미루자.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에서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와서 자리를 잡을 것을 추천한다. 의외로 편안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다. 강남역 옆에도 지점이 있지만 그곳은 1층이라 개인적으로 청담점을 선호한다. 도넛 모양의 의자와 전등, 인테리어 장식도 재미있다.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은 4,300원이고 할인은 타매장과 동일하다.

KakaoTalk_20251111_150631934_15.jpg 던킨 원더스 청담. 도넛집답게 아침 7부터 문을 연다.


Liam's Cakery(초콜릿 컵케이크와 조각케이크)

-케이크, 그것도 진한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한다면 꼭 가 볼 것. 초콜릿 러버로서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강남 신세계 팝업으로도 들어갔던 매장으로 초콜릿 컵케이크와 조각 케이크 전문이다. 매장은 노티드 옆 2층인데 전체적으로 하얗고 고급스럽다. 고급스러운 후식을 추천이다.

KakaoTalk_20251111_150631934_12.jpg 겉에서부터 고급스러워 보이는 Liam's Cakery
KakaoTalk_20251111_151813969.jpg 내가 정말 정말 사랑하는 초콜릿 홀 케이크. 칼로리 폭탄.



아래의 두 집은 한 번씩밖에 가 보지 못했지만 특별히 소개해 본다.


만두집(만두)

-이 동네 오래된 맛집. 골목 안에 숨어 있어 눈에 잘 띄지 않고 상호도 별다른 것 없이 그냥 ‘만두집’이지만, 무려 블루리본을 달고 있다! 발효시킨 만두피를 써서 식감은 쫀득거리거 이북식 만두라 맛은 담백하다. 만둣국 전문이지만 개인적으로 찐만두로 먹는 편이 더 맛있는 듯하다. 포장은 찌지 않은 만두 20알에 30,000원이다.

KakaoTalk_20251111_150631934_02.jpg 골목 안에 숨어 있는 만두집. 그래도 무려 블루리본을 달고 있는 이 동네 식당 중 강자다.
KakaoTalk_20251111_150631934_04.jpg 이른 시간이라 만두피를 만들기 위해 반죽을 계량하고 있는 모습.


뱃고동

-마지막으로 뱃고동. 내 입맛에는 맛집은 아니었지만 이 동네에서 몇십 년이나 그 자리를 지켜 온 데다 압구정 토박이들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 한 식당이라 특별히 넣어봤다. 오징어불고기 백반(9,000원)과 낚지 불고기 백반(9,500원)이 대표 메뉴다. 이 동네로서는 생각하기도 힘든 가격대의 점심 정식을 제공한다. 그래서 특히 점심시간엔 직장인들로 자리가 꽉 찬다. 식사를 할 생각이라면 오픈 시간인 11시 30분에 맞추어 가는 게 좋다. 조금만 늦게 가면 길게 줄을 서야 한다. 맛에 대해서는 솔직히 의견이 갈리는 편이다. 내 입맛에는 딱 그 정도 가격의 가성비 식당. 하지만 압구정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문화 충격과 함께 과거 압구정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참고로 뱃고동 옆 돈가스와 판메밀을 파는 '하루' 역시 압구정 찐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 온 압구정 노포다.

KakaoTalk_20251111_150631934_07.jpg 어딘지 올드한 옛 모습 그대로인 뱃고동. 입구를 잘 찾아가야 한다.
KakaoTalk_20251111_150631934_08.jpg 뱃고동의 메뉴
KakaoTalk_20251111_150631934_09.jpg 뱃고동 옆에 있는 압구정의 또 하나의 노포, 하루


위의 식당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맛집이라기보다는 가성비 식당들이다. 물론 압구정에 사니까 미슐랭 원스타, 투스타, 쓰리스타 식당 같은 곳을 척척 소개하길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로또라도 맞으면 모를까, 현실의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지금의 나는 주소지만 압구정일 뿐 매일 아등바등하며 사는 50대 아줌마일 뿐. 그러니까 그런 맛집 리뷰는 미래의 나한테 미루고 일단은 이 정도에서 만족하자. 그리고 어차피 음식은 똑같다. 비싸든 싸든 뱃속에 들어가면 배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게 음식의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식당들은 실망스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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