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사는 이야기-헬스장
압구정에서 운동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한강 변으로 나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헬스장 같은 운동 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압구정에 있는 헬스장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구립 헬스장, 다른 하나는 사설 피트니스 센터다. 나는 구립 헬스장은 두 달 이용해 봤고 지금은 사설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하고 있다. 두 시설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다.
구립 헬스장의 장점은 비용이 저렴하고 깨끗하다는 거였다. 오전 혹은 오후, 이렇게 반나절씩만 이용할 수 있는데 일주일에 세 번이면 한 달 30,000원,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 갈 경우에는 45,000원이었다. 사설 피트니스 센터와 비교하면 반도 안 되는 가격인 셈이었다. 비용이 싼 것도 싼 거지만 깨끗하기도 했다. 매일 청소 여사님이 아침 일찍, 그리고 오후, 이렇게 하루 두 번 청소했다. 헬스장을 관리하는 트레이너도 출근하자마자 창문부터 열고 걸레를 들고서는 창틀부터 운동 기구까지 먼지를 샅샅이 훑었다. 그래서 운동 기구 위에는 먼지 한 톨 없었다. 샤워실과 탈의실도 비록 시설은 낡았지만 깨끗했다. 수건이나 샴푸 같은 건 없어도 기본적인 건 있었다. 이를테면 샤워기마다 비누가 있었고, 탈의실에는 바람이 무척 약했지만 어쨌든 헤어 드라이어기도 있었다. 물론 운동 기구 수도 적고 종류도 딱 기본만 있는 정도였다. 그래도 운동하는 데에는 문제없었다. 결국 운동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구립 헬스장을 꽤 만족하면서 다녔다. 가격도 저렴하고 PT에 대한 압박도 없어서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일이 생겼다.
구립 헬스장에서 운동한 지 한 달이 좀 지난 어느 날이었다. 매트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머리가 하얗고 몸이 건장한 한 할아버지 회원이 나한테 “안녕하세요?”하고 우렁차게 인사를 했다. 나 역시 “안녕하세요” 했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 그분에게 제대로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대뜸 “인사 좀 하고 다닙시다!”하고 나에게 호통하듯 말했다. 나는 “저도 인사를 드렸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모양이에요”라고 대답했지만 할아버지는 내 대답은 못 들었다는 듯이 “그런데 몇 살이에요? 젊어 보이는데. 40대? 50대?”하고 느닷없이 묻는 거였다. 그 기세에 눌려 얼떨결에 ‘50대’라고 했더니 그럴 줄 알았다고 하면서 득의양양하게 웃는 거였다. 알고 보니 이 할아버지와 매일 오는 다른 회원들끼리 내가 몇 살인지 한참을 수군거린 모양이었다.
구립 헬스장은 일종의 ‘노인정’이다. 이용자들은 대부분은 나이가 많다. 70대도 나이 들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머리가 허연 분들도 적지 않다. 이런 분들은 여기 오래 다니신 데다 다들 서로 아는 사이인 듯했다. 그래서 아침에 오면 서로 인사를 나누곤 했다. 그런 분위기에 내가 새로 들어왔으니 나는 순식간에 관심을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나 역시 나이가 적진 않지만 이곳에선 ‘젊은이’에 속했다. 새 젊은이, 그것도 젊은 여자에 대해 궁금한 심정은 이해가지만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민감한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다. 당시에는 웃으며 넘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테는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당연히 그 일 이후 헬스장에 가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아무리 운동에만 집중하려 해도 다른 회원들의 눈길이 신경 쓰였다. 공간이 크기라도 하면 어디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숨기라도 하겠는데, 워낙 손바닥만 한 곳이라 그럴만한 자리가 없었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나한테 호통쳤던 할아버지와는 서로 운동하러 오는 시간까지 겹쳤다. 운동하러 갔다가 그 할아버지가 보이면 멀찌감치서 재빨리 운동하고 돌아오거나, 아니면 그 할아버지가 떠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오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운 나쁘게 마주치면 으레 그 할아버지는 인사 안 하느냐고 나한테 큰 소리로 말을 걸곤 했다. 그 할아버지로서는 나에 대한 친밀감을 표현하려는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로서는 날 가만 놔두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결국 두 번째 달 이후 후 나는 그곳에 재등록하지 않았다.
한두 달 후 나는 사설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했다. 사설 피트니스 센터는 모든 것이 구립과 반대였다. 공간이 크고 온갖 운동 기구가 다 있었다. 운동은 못하지만 최신 운동 기구를 한 번씩 건드려보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회원의 연령층은 다양해서 나이 든 사람도 있고 젊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구립 헬스장보다 젊은 분위기인 건 확실했다. 심지어 외국인도 보였다. 이제 길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 정도야 너무 흔한 일이었지만 피트니스 센터에서까지 외국인을 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꽤나 신기했다.
단점도 있었다. 아무래도 구립 헬스장에 비해 청소 상태가 좋지 않았다. 구립 헬스장이 하루 두 번 쓸고 닦아 반짝반짝 윤이 났던 데에 비해 이곳은 청소 타임이 하루 한 번, 그것도 오후에 있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운동하러 가면 운동 기구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는 게 보일 정도였다. 가격도 비쌌다. PT 없이 시설만 이용할 경우 한 달 이용료가 부가세 포함, 99,000원이었는데, 이 정도 가격은 타 지역 피트니스 센터에 비해 비싼 편이었다. 이 동네 임대료가 전체적으로 높아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사설 업체라 PT 영업이 계속 들어오는 것도 귀찮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홍보 문자가 날아왔는데 이걸 지우는 게 상당히 성가셨다.
그래도 여기서는 운동에만 신경 쓸 수 있어 좋았다. 내 돈 내고 운동하러 가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 좋다는 말이 우습게 들리긴 하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여기서는 인사나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스스로 헬스장 매너만 잘 지키면 그만이었다.
가끔 생각해 본다. 그때 그 구립 헬스장의 할아버지 회원은 내가 왜 그곳에 더 이상 오지 않는지 짐작이나 한 적이 있을까? 그분은 단지 친해지고자 한 자신의 행동이 나를 질겁하게 만들어 결국 쫓아버렸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 일을 떠올릴 때면 다시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와 관계 맺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전해질 수 없는 법이다. 그리고 배려는 항상 내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고려해야 하는 거다. 그 할아버지가 그날 나에게 인사 안 하느냐고 면박을 주고 나이를 묻는 대신, 활기차게 인사하는 정도로 끝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나는 아직 그곳에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운동하는 데 가장 힘든 건 남의 시선도, 비싼 피트니스 센터 이용료도 아니다. 바로 날씨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운동하러 나가기가 점점 더 귀찮아진다. 피트니스 측에서도 말하길 원래 겨울이 가장 비수기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센터의 홍보 문자도 더 자주 오는 것 같다. 이럴 때는 헬스장이 갖추어진 커뮤니티 시설이 있는 신축 아파트 단지가 부럽다. 옆 동네 반포만 해도 신축 단지가 많아서 길에 피트니스 센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재건축이 아직 한참 남은 압구정에는 피트니스 센터와 각종 운동 시설들이 넘친다. 언젠가 압구정이 정말 재건축에 들어가면 이 피트니스 센터들은 어떻게 될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걱정할 때가 아니다.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몰려오기 전에 기운 내서 운동이나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