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에서 운동해요 그런데...

압구정 사는 이야기- 운동

by 크림동동

우리 아파트는 한강변에 있다. 이 ‘한강변’이란 단어는 우리나라, 아니, 최소한 서울 사람들에게는 어떤 마법의 힘을 지니는 것 같다. 20살, 대학을 가기 위해 서울에 처음 왔을 때는 ‘한강변’이라는 말이 그렇게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 그때는 또 지금만큼 그 말의 영향력이 크지도 않았다. 2017년, 해외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오니 한국은 부동산 열풍으로 온통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한강변’이 있었다. ‘한강변 아파트’, ‘한강 조망’, ‘한강 뷰’. ‘한강변’은 글자 상으로는 단순히 ‘한강 옆’이라는 지리적 위치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내포하는 의미는 사실상 사회적 계급, 그 자체였다. 그것은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집 매매 계약서에 막 도장을 찍고 나서 아직 얼떨떨한 나에게 남편은 들뜬 얼굴로 말했다.


“생각해 봐. 이제 매일 한강변을 산책하는 거야.”


그때는 그 말이 근사하게 들렸다. 나도 ‘한강변’을 산책하는구나. 어쩐지 사회적 지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 같았다.


글쎄, 세상 모든 게 그렇지만 항상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직접 살아보니 ‘한강변’이라는 게 좋기도 했지만, 안 좋은 점도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남편이 말한 ‘한강변을 산책’하는 이야기만 해 볼까 한다. 한강변은 워낙 넓으니 여기서 말하는 ‘한강변’은 ‘압구정 나들목’을 중심으로 청담 대교에서 한남 대교까지를 말함을 미리 밝혀둔다.


‘한강변을 산책’한다, 조금 넓게 이야기해서 ‘한강변에서 운동한다’는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한강변이 과연 운동하기 좋을까? 역시 같은 대답이지만, 좋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일단 좋은 점으로는 한강변, 그러니까 한강 바로 옆으로 조성되어 있는 수변 길은 평지다. 언뜻 생각하기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건 큰 장점이다. 심한 오르막, 내리막이 없기 때문에 걷기, 러닝, 자전거 등의 운동에 이상적이다. 그래서 실제 한겨울을 제외한 아침저녁 한강변은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이들의 운동 패션과 아이템을 보는 재미는 덤이다.


두 번째 장점이라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강변은 한강을 따라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팔당에서 서울을 거쳐 일산까지도 걸을 수 있다. 물론 실제 이 정도로 걷는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한 유튜브 영상에서 어떤 연예인이 반포에서 당산까지 걸어갔다고 하는 걸 본 적은 있다. 그러니까 정말 잠실에서 일산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강 다리 두어 개쯤은 예사로 걷는 사람들은 많은 것 같다. 자전거는 말할 것도 없다. 남편만 해도 가뭄에 콩 나듯이긴 하지만 한 번씩 자전거를 가지고 나가면 잠실 정도는 우습게 다녀온다. 나가 있던 시간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도 그러는 거다. 그러니 아침 일찍부터 자전거를 가지고 나가는 자전거 족들에게 이 정도 거리는 정말 별 것 아닌 모양이다. 한마디로 한강 변에서는 가고 싶은 만큼 앞으로 갈 수 있다. 한강 변에서는 앞이 막혀서 더 이상 못 간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세 번째 장점으로, 한강 변을 산책하다 보면 한강을 볼 수 있다. 이 무슨 당연한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의외로 한강을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한강을 본다’고 하면 일단 한강 주변 경치를 본다는 의미다. 한때 런던의 템즈 강, 파리의 센 강에 비해 한강변에는 콘크리트 덩어리밖에 없다는 말도 있었지만 요즘 한강변은 볼거리가 넘친다. 쭉 뻗은 건물과 아파트들, 그리고 점점이 이어지는 다리가 풍기는 도시의 매력이 있다. 걸으면서 건너편 성수대교 쪽의 초고층 아파트, 그리고 저 멀리 잠실 롯데 타워가 어슴푸레한 공기 속에 우뚝 솟은 걸 볼 때면 어쩐지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마치 SF 영화에서 봤던 미래 사회를 보는 것 같다. 밤의 한강변 산책길도 좋다. 도시의 화려한 야경 덕에 낮보다 더 눈이 호강한다. 강 주변 경치뿐만 아니라 강 자체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압구정 쪽 한강은 물이 크게 돌아가는 형상이라 강폭이 넓고 강 밑 지형도 야트막하다. 비록 강둑은 콘크리트로 덮인 상태지만 강변에 풀밭과 갯벌이 남아 있는 걸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게 제법 자연 같은 느낌을 풍긴다. 아침저녁 산책하노라면 이곳에서 새들도 꽤 많이 보게 된다. 다리가 긴 흰 새가 먹이를 찾는 것도 보았고 검은 물새가 갑자기 물속으로 머리를 박고 들어가는 것도 봤다. 압구정(압구정의 ‘구’ 자는 갈매기 ‘구’ 자이다.)이라는 이름답게 갈매기도 종종 나타난다. 물새들이 떼 지어 하늘을 날아가는 광경은 흔한 일이다. 심지어 이른 아침, 걷다가 물고기가 강 위로 튀어 오르는 걸 본 적도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예상치 않은 자연의 모습을 보는 건 의외의 즐거움이다.

KakaoTalk_20251123_114759951_02.jpg 여름 장마 때 풍경(출처: 내가 찍은 사진)
KakaoTalk_20251123_114759951_04.jpg 멀리 보이는 잠실 롯데타워(출처: 내가 찍은 사진)
KakaoTalk_20251123_114759951_03.jpg 야경(출처: 내가 찍은 사진)

이제 안 좋은 점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제일 안 좋은 점은 그늘이 없다는 거다. 알다시피 숲이 아니고 강이니까 나무가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나무가 없으면 대신 차양이라도 있으면 안 되는 될까? 길에 그늘이 없으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침이면 동쪽 햇살에, 저녁이면 지는 햇빛에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찌르는 해가 어찌나 강한지 거의 눈을 태워버릴 기세다. 그런 까닭에 꼭 여름이 아니더라도 모자와 선글라스는 필수다. 모자도 그냥 모자로는 어림도 없고 얼굴 전체를 가릴 만한 챙이 넓은 모자여야 한다. 어쩌다 이 두 가지를 잊기라도 한 날이면 내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걸어야 한다. 이러면 여간 팔이 아픈 게 아니다. 물론 시간이 좀 지나면 해는 완전히 떠올라 더 이상 눈을 정면으로 찌르진 않는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시간이 좀 되어 이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물론 주말은 하루 종일 사람들이 있으니 예외긴 하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그늘이 없으니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낮에는 더워서 걸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한강변에는 이른 아침과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건 이것대로 또 불편한 점이 있다. 압구정 구역의 한강변은 보행로가 너무 좁고 옆의 자전거 도로와의 경계도 경계선을 따라 빔을 박은 게 전부다. 그래서 언제나 조마조마하다. 두 명, 혹은 세 명만 나란히 가도 길이 꽉 차는데 옆에 자전거는 씽씽 달린다. 앞사람을 추월해서 걸으려고 하면 앞뒤 잘 살펴야 한다. 자칫 사고가 날까 무섭다. 물론 대다수의 자전거 타는 분들은 매너가 좋아 경적을 울린다던가 소리를 쳐서 미리 알린다. 하지만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들도 워낙 많고, 그렇지 않아도 걷는 사람도 많았는데 여기에 요즘은 러닝 동호회까지 더해져 길이 정말 붐비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운동하기에는 압구정 구역보다는 반포가 더 나은 것 같다. 반포 구역에는 널찍한 잔디 공터가 있고 운동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압구정 쪽과는 너무 비교되는 모습이라 샘이 나긴 하지만 애초 자연 지형이 반포 쪽은 우묵하게 들어가 공터를 만들기 좋고 압구정 쪽은 튀어나온 데다 바로 그 밑에까지 아파트가 들어차 있는 형국이라 어쩔 수 없다. 압구정 구역에 반포처럼 큰 공원을 조성하는 건 재건축 이전에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한강변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 사이에 구분이라도 확실히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냥 하는 불평이 아니라 이러다가 정말 사고가 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부부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한다. 한강을 보며 걷는 것도 좋지만 나갈 때마다 이것저것 한 짐 챙기는 것도 번거롭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걷는 것도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강 변에 아예 안 나가는 건 아니지만 주로 새로 생긴 선상 카페 밑 편의점에서 물멍 때리러 간다. 걷기 위해 한강에 나간 지는 꽤 되었다. 겨울도 다가오고 하니 한강변에 나갈 일은 더욱 줄어들 듯하다. 아마 한강이 얼면 한 번쯤 나가 볼 것 같긴 하다. 한강 얼음 위로 보는 도시 풍경이 멋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한강변을 산책한다’는 건 여러모로 불편해도 매력적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산책길보다 특별히 더 낫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한강’이라는 단어 때문에 좀 특별하게 들리긴 하지만 어차피 한강변을 산책한다는 건 운동을 하러 나간다는 거고, 운동은 결국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51123_114759951.jpg 겨울 한강 얼음 위의 도시 풍경(출처: 내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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