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병원'을 찾습니다

압구정 사는 이야기-병원

by 크림동동

지난달 야유회에 갔다가 갑자기 어깨에 담이 왔다. 수목원 구경 잘하고 식당에서 맛있는 밥까지 잘 먹은 후 화장실에 갔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화장실에서 나가기 전 문에 걸어둔 가방을 내리려고 왼팔을 뻗는데 갑자기 찢어질 듯한 통증이 등과 뒷목, 어깻죽지를 강타하는 거였다. 절로 ‘악!’ 소리가 나면서 한동안 어깨를 움켜쥐고 움직이질 못했다. 간신히 몸을 끌고 비척비척 자리로 돌아가니 사람들이 놀라 왜 그러냐고 물었다. 담이 온 것 같다 하니까 다들 걱정스러운 얼굴로 얼른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물론 나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한 가지 걱정이 앞섰다.


‘어디로 가지?’


이 동네에서 병원 가는 건 큰일이다. 사방팔방 눈 닿는 곳마다 병원 간판이지만, 막상 몸이 아파 가려면 갈 곳이 없다. 죄다 미용 시술하는 곳이라, 치료하는 병원은 뒤지고 다녀야 하는 판이다. 오죽하면 당근의 동네 생활 게시판에 이 동네 ‘질환 치료하는 곳’에 대한 문의가 늘 올라오는 지경이다.


간신히 귀한 ‘질환 치료 병원’을 찾았다 해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엔 진료비가 너무 비싸지는 않은지, 과잉 진료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동네가 동네인지라 임대료가 높으니 어쩐지 진료비도 비싸게 받는 것 같고, 쓸데없이 보험 적용 안 되는 약이나 치료를 권할 것도 같다. 그러니 이래저래 병원 가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이번엔 어쩔 수가 없다. 다행히 찌르는 듯한 통증은 하루 자고 나니 사라졌지만 둔중한 통증의 여운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러다 말겠지 싶다가도 그러지 않으면 어쩌나 내심 찜찜했다. 주민센터 도서관에서 자원 봉사하는 날, 같이 봉사하는 선생님께 이러저러해서 어깨가 아프다 했더니 ‘우리 나이에 이렇게 어깨 다친 걸 놔두면 오십견 온다’ 며 펄쩍 뛰었다. 그 말에 내가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당장 한의원을 한 군데를 소개해 주었다. 주민센터 옆 오래된 쇼핑센터 상인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고 했다. ‘오래된 쇼핑센터 상인들이 많이 가는 곳’이란 말에 어쩐지 믿음이 갔다.


이 한의원은 특이했다. 진료 시간은 7시부터 오후 3시 30분. 다른 병원에 비해 진료 시간이 굉장히 일렀고 문을 빨리 닫았다. 첫 번째에는 미처 못 봤는데, 두 번째 갔더니 그나마도 6시 45분부터 진료를 본다는 공지까지 있었다. 정말 놀라워서 그 시간에도 환자가 오느냐고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이 예약이 꽉 차서 자리가 없다는 거였다. 이 동네에 그만큼 출근 전에 병원을 들렀다 가려는 사람이 많은 건지, 아니면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서 아침에 일찍 올 수 있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친절했다. 딱히 한약이나 비싼 침을 권하지도 않았고 통증의 원인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 주셨다. 내가 평소 자세가 틀어져 있어 몸 한쪽으로 오랜 시간 힘이 실리는 바라에 반대쪽 근육에 무리가 갔다고 했다. 아픈 부위에 수십 방의 침을 맞고 20분간 찜질받았다. 그걸로 그날의 진료는 끝이었다. 진료비는 만원 남짓, 그것도 초진이라 그 정도 가격이었고 두 번째부터는 9천 원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


병원을 나오는데 횡재를 한 느낌이었다. 압구정에도 이런 병원이 있다니! 과잉 진료도 없고 의사도 친절하고, 그야말로 ‘착한 병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곳이 유일하지 않았다. 몇 달 전 발뒤꿈치가 아파 찾은 정형외과 역시 그랬다. 지인의 소개로 갔는데 역시 의사 선생님도 친절했고 체외 충격파나 도수 치료 같은 비싼 치료를 권하지 않았다. 발을 많이 쓰지 말고 푹신한 슬리퍼를 신으라고 하고 물리치료와 통증을 완화해 주는 소염진통제를 처방해 준 것이 다였다. 그때도 이런 병원이 압구정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서 혼자 감격하며 집에 왔었다.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일이다. 병원이 이렇게 많은데 정작 몸을 고치는 병원은 별로 없고, 치료를 많이 하는 것보다 적게 하는 병원을 ‘착한 병원’이라고 한다. 현대의 물질적 풍요가 가져온 ‘과잉의 결과’를 여기서 또 보는 느낌이다. 각종 첨단 의료 기술에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건강 정보가 들어오지만, 어쩌면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건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충분하다. 오히려 수많은 건강 정보의 홍수 속에 사람들은 길을 잃고 지친다. 그래서 치료를 적게 하는 병원을 찾고 결과적으로 그런 병원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돈과 자본, 풍요의 상징과 같은 압구정에서 마주한 것이 최소한의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교훈이라니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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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의원을 3번 간 다음 가지 않았다. 치료가 끝난 건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평소 습관과 자세가 문제라면 매일 내가 조심하며 사는 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통증이 일단 사라지고 나니 병원 가는 게 귀찮아진 탓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몸이 괜찮아졌냐고 물으면 그렇진 않다. 예전과는 큰 차이가 없다. 늘 뒷목과 어깻죽지가 뻐근하다 말다 한다. 그래도 최소한 이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안다. 그래서 어깨가 아플 때마다 자세를 바로 잡으려고 몸을 세우고 팔을 움직인다. 어쩔 때는 그래도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걱정하지 않는다. 아프면 달려갈 수 있는 동네 병원을 최소 두 곳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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