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단꿈을 깨면

by 레드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승환은 비명에 화들짝 잠이 깼다.


“안돼애애애!!! 안돼! 안돼!! 제발!!!!! 으흑흑 ...제발 ...킥킥킥...큭큭큭....아하하하하!!! ......끄으흑...흑흑... 안돼, 안된다고..으흑흑...”


머지않은 곳에서 성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킥킥킥... 으흑흑... 제발... 제발... 이제 나는 어떻게 살라고... 차라리 날 죽여라.... 죽이라고!!! 제발 다시 돌아가게 해줘... 큭큭큭... 킥킥킥... 내가 미쳤어?! 절대 안 돌아가!! 절대로!! 근데... 이 씨발... 으흑흑흑......아니야... 미안해... 다시 돌아갈래...제발 다시 돌아가게 해달라고!!!! ...끄흑 제발...”


성 부장 미친 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그의 섬뜩한 혼잣말, 기괴한 웃음과 울음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승환은 무서웠다. 고요한 강당이 그의 공포를 더 부추겼다. 김 과장은 잠들어 있었다. 강당 안의 모든 사람이 다시 잠들어 있었다. 성 부장의 소름 끼치는 절규에도 아랑곳 않고 자는 사람들을 보며 승환은 집에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접었다.


발소리, 그리고 곧 무전 소리가 들렸다.


“띠리릭, 통신보안, 중대장님! 중대장님! 여기 좀 이상한데 말입니다.”

“왜, 뭔데?”

“여기 213번 천막인데 말입니다, 환자 한 명이 깨어났지 말입니다.”

“뭐? 깨어나?”

“네, 그렇습니다. 지금 깨서 미친 것처럼 소리 지르고 난리 피우고 있지 말입니다.”

“아, 재수 더럽게 없네. 하필 내 담당구역에서.”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알았어! 애들 데리고 갈 테니까, 그 새끼 어디 못 가게 잘 감시하고 있어!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말고. 그냥 떨어져서 지켜보기만 해!”

“알겠습니다.”


삼 분이 못 되어 발자국 여럿이 성 부장 천막으로 달려갔다. 승환은 상황이 궁금해 천막 밖을 보고 싶었지만, 혹 들킬세라 천막에서 귀만 쫑긋하고 있었다.


“헉헉, 환자가 어떻다고요?”


부드럽고 침착한 목소리와 어조, 그리고 대화 속 의학용어들로 승환은 그가 의사임을 짐작했다.


“아 그게 말입니다, 제가 여기 천막들 순찰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갑자기 누가 소리를 지르길래 와서 보니까 저 사람이 깨서 저러고 있었지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 아저씨만 저랬는데 말입니다.”

“그래요, 알았어요. 전 간호사, 전 간호사는 지금부터 환자 상태 하나도 빼놓지 말고 동영상으로 찍고, 박 간호사는 나랑 같이 환자 상태 확인합시다. 대위님은 환자가 어떤 행동을 보일지 모르니까 병사들이랑 옆에서 대기해주세요.”

“안돼...제발...흑흑...”

“저기요, 환자분. 저기요.....”

“돌아갈래...돌아가고 싶어...끄으흑흑... 안돼! 미쳤어! 절대 안 가! 씨발, 절대 안 간다고!! ... 킥킥킥킥...크하하하하!!......으...으흑흑...”

“저기요 환자분, 환자분! 제 말 들리세요? 환자분?”

“킥킥킥킥... 괴로워요... 힘들어요...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다시... 돌아가게 해주세요... 흑흑... 큭크큭... 이히히히... 안 갈건데, 안 돌아갈건데? 킥킥킥.”

“안 되겠다, 박 간호사, 이분 좀 잡아봐요.”

“......네”

“씨발!! 이거 놔! 놓으라고!! 안 간다고! 절대로!! 으흑흑... 제발요... 날 내버려 두세요... 그리고 돌아 가게 해주세요...내버려 두라고요... 내버려 둬...!! 내버려 둬!!!”


성 부장 몸부림에 맞고 떨어진 기기들 소리가 와장창하며 고요한 강당을 울렸다.


“대위님!!! 이분 좀 같이 잡아주세요!”

“놔, 놔 이 새끼들아!!! 놔!!!!!! 가야 한다고! 나, 돌아가야 한다고!!!!”


성 부장은 안정제를 맞고서야 얌전해졌다.


“여기서는 안 되겠네요. 이분, 병동으로 옮깁시다. 중간에 깨어난 건 이분이 처음입니다. 나는 바로 상황 보고할 테니까, 박 간호사랑 전 간호사는 지금 바로 연락해서 음압 병실 하나 준비하라고 하고, 이분 이송시키세요. 다른 사람이랑 접촉 못 하도록 통로랑 엘리베이터도 잘 비우라고 하고요.”


성 부장이 의료진과 떠나고, 남은 군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 진짜 무서운데 말입니다. 저 미친 사람 처음 봅니다.”

“그러게. 아까 봤냐? 눈깔 뒤집힌 거?”

“봤지 말입니다. 어후 꿈에 나올까 무섭습니다.”

“그나저나 깜짝 놀랐네. 저 아저씨는 왜 갑자기 깨어나서 저 난리냐? 저게 낫는 과정인가? 설마, 얘네들 나중에 다 저 아저씨처럼 되는 거 아냐?”

“다 저렇게 미치광이로 변한다고 말입니까? 너무 끔찍한데 말입니다.”

“야, 우리는 진짜 조심하자. 방독면 절대 벗지 말고. 손도 잘 씻고.”


보초병들이 떠나자 강당 안에 다시 적막이 흘렀다.


‘내 탓이다. 내가 성 부장을 깨우지만 않았어도...’


성 부장의 미치광이 소리가 승환의 귀에 맴돌았다. 끔찍한 죄책감이 승환을 짓이길 듯 달려들었다. 뇌는 곧장 정신붕괴를 막기 위해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작동시켰다.


‘쉬바, 근데... 난들 이렇게 될 줄 알았나? 그리고 꿈이었잖아. 꿈에서 하는 짓도 죄야? 그럼 나쁜 상상들도 다 죄겠네? 어휴 됐어! 다 괜찮을 거야. 저 바퀴벌레 같은 양반한테 뭐 별일이야 있겠어?’


그는 어설픈 논리로 넘어가려 했지만, 죄책감을 완전히 덮을 수는 없었다. 마음에서 뭔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의 이마에 어느새 땀이 맺혀있었다. 죄책감 탓인지, 더위 탓인지 승환의 몸은 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손목시계를 봤다.

오전 10시. 더위가 고조되는 시간이었다. 옆에 잠든 김 과장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지만,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수진 모녀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남자도 모두 조용했다.


‘결국 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승환은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두려웠다. 탈출을 떠올렸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이다 들켰다간 성 부장처럼 끌려갈 게 뻔했다. 성 부장에 대한 미안함이 다시 고개를 불쑥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뇌는 성 부장의 악행을 떠올렸고 승환의 분노는 그 죄책감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았다.


“펑!!... 퍼벙!!....”


커다란 폭발음이 여러 번 메아리 쳤다.


‘쉬바, 밖도 심각한가 보네! 그나저나 원인이 뭐지? 그냥 같이 잠들어서 같은 꿈 꾼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증상도 없고. 아까 의사도 잘 모르는 눈치고.’


“펑!!!!!.....” 아까보다 훨씬 더 커다란 폭발음이었다. 승환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과 딸과 아내 걱정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도대체 뭐지? 다 같이 있었는데 왜 나만 괜찮지? 왜 나만?’


승환은 안간힘을 써 감정을 눌렀다. 그리고 최근 있었던 일들을 다시 되짚었다.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어제 소나기 오기 직전에 다들 갑자기 잠들었어. 분명 점심 전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었고. 혹시 점심때 뭔 일이 있었나? 누가 점심때 4층 전체에 먹을 거라도 돌렸나? 맞아, 그럴지도. 난 어제 친구랑 따로 나가서 먹었으니까. 근데 그때 출장이라 없었던 김 과장이랑 수진이네도 지금은 잠들었는데? 그 말은 여기서 옮았다는 건데. 왜 나는... 아, 그 전날 세경 씨가 좀 이상하긴 했었지. 그것 때문인가?’


승환은 모든 가능성을 떠올렸지만, 지금 이 상황의 원인으로 지목할만한 것은 없었다.


‘감염경로는 뭐지? 공기? 물? 근데 김 과장이랑 계속 같이 있었는데 왜 나만 말짱하냐고?! 아, 설마... 내가 처음 꿈꾸고 나서 이 사달이 벌어진 것 같은데... 그래, 그리고 사람들이 같은 꿈을 꿨다고 했어. 쉬바 뭐지? 다 나 때문인가? 그래. 어이없지만 이제 뭔가 설명이 된다. 진짜 말도 안 되지만, 내 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아, 근데 나 때문 맞아? 이게 말이 돼? 아 쉬바, 모르겠다. 미치겠네.’


승환은 패닉에 빠졌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또 그럴싸한 이 상황에서 그는 판단력을 빠르게 잃어갔다. 근거 없는 자괴감이 그를 괴롭혔다.


‘아 쉬바, 근데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내가 꿈꾼 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남들 다 꾸는 꿈 꾼 게 잘못이냐고.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내가 미안해야 하지?’


승환은 억울한 마음에 눈물까지 나오려 했다. 그는 몇 차례 심호흡 후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아닐 거야. 말도 안 되지. 세상에...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그는 불안했다. 때문에 부정했다. 상황과 가능성을 모두 부정했다. 하지만 불안은 끈질겼다. 아무리 잘라내도 어느새 자라 그의 목덜미를 쥐려 했다. 서늘한 뒷목을 감싸 쥐며 그는 꿈과 현실에서 있었던 일을 끊임없이 복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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