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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뷔 Sep 23. 2024

아빠존의 눈물

7. 상실 그리고 불안 (feat. 육아휴직)

왠지 모를 개그 욕심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습니다. 

기깔나고 참신한 표현으로 읽는 이의 입꼬리를 씰룩대게 하고 싶습니다. 

박장대소는 또 안됩니다. 꽤나 까다로운 기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코미디언이 아닙니다.

굳이 부담 가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번에는 아주 재미없고 지루한 글을 써야겠습니다.





건설회사 + 아빠 + 육아휴직.

아직까지 생소한 조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어마어마한 용기를 내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단언컨대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뭘 그리 힘들어하냐?” “나 같으면 육아휴직 평생 하겠다.”

“내 소원이 와이프 일하고 나는 집에 있는 거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진정으로 원하는 바 일지도 모릅니다.

지만 육아휴직을 당한(?)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직장이 죽도록 다니기 싫은 적도 없었으며, 뜻하지 않은 휴직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 기간도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한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휴직이 힘들었나 봅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위해 꿈과 직장을 포기할 때 이런 심정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막막하고 암울한 이미지 같지만 사실은 반딧불 사진이다(예뻤다)


육아휴직 신청할 당시를 생각하면 '정말 힘들었던 감정’이 떠오릅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기억은 희미하고 감정만 남았습니다.

그때의 일기장을 펼쳤더니 불안과 막연함이 하루하루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 마음 기저에도 그런 것들이 있었나 봅니다.     


‘14년 간의 직장생활. 그것을 토대로 기대하는 직장에서의 미래들.’     


이렇게 보니 그저 단순한 문장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추억들을 뒤로한 채 

훌렁 떠나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커다란 마음의 결단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막상 육아휴직을 하면 괜찮겠지 하고 막연한 기대를 했지만, 

오히려 14년 간 잘 다지고 쌓아온 삶이 한순간에 부정당하는 기분과 함께 

격류에 맨몸으로 내던져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하루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직장에서의 시간이 사라지면서 

제 존재도 함께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공허함, 허탈함이 불쑥 찾아와 제 존재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휴직 후, 밖에 나가 바빠 보이는 직장인들 사이에 서면 불안함과 초조함에 멀미가 날 것 같았습니다.

남들이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사지 말짱한 남자가 대낮에 츄리닝 바람으로 우두커니 서 있으면 스스로 무능한 인간 같아 괴롭습니다.


40대인 저희 세대에게 남자는 여전히 가장이라는 사회적 기대가 있습니다.

반대로 아빠육아라는 새로운 기대감은 연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고리타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개념은 계속 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회사에서 잘리면 이런 기분이려나?” 싶었습니다.


평일 아침 버거킹 2층에서 조용히 신문을 보시던 정장 차림의 할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커피 한 잔을 시켜 점원 없는 2층으로 갑니다.

밖으로 보이는 교차로에는 젊은 직장인들이 바쁘게 오갑니다.

천천히 신문을 훑습니다. 이따금씩 창밖도 내다봅니다.

집에 있고 싶지만 할멈 눈치에 오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매일 쓸 3천 원이 있어 다행입니다.

커피 한 잔을 방패 삼아 더위와 추위를 피해 이곳에서 오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것도 없는 친구들은 도서관이나 공원 행입니다.

오전 11시.

할아버지의 매일 아침 3시간 코스가 끝나갑니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슬슬 자리를 정리합니다.

그때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고마운 점주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지,

젊은 사람들에게 행여나 폐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건물주일지도 모르는 할아버지를 짠하게 바라보는 내 시선


현실은 보는 사람에 의해 해석됩니다.

할아버지의 즐거운 루틴일지 모르는 일이 제게는 미련과 후회,

그리고 아내 눈치로 집에서 나와 갈 곳 없는 할아버지로 보였습니다.(설마, 건물주님?)

제 마음이 그래서 그랬나 봅니다.     


KTX처럼 질주하던 저는 과감히 탈선해서 무궁화호로 달려야 했습니다.

탈선이 두려운 것은 당연, 남들처럼 빨리 달릴 수 없는 것도 두렵습니다.

하지만 인정해야 합니다.

대신 다른 가치와 목적을 찾아봅니다. 어쩌면 더 소중할지 모를.

무궁화호는 천천히 역마다 꼼꼼히 들러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느긋히 듣습니다.

꽃들도 구경합니다.

느린 덕에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잎이 나는 것도, 힘겹게 뿌리내려 자라는 것도, 비바람에 흔들리지만 버텨내는 것들도 봅니다. 

우리 딸들을 그렇게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진짜 소중합니다.


엄마.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나를 맞아주던 엄마.

그때는 당연했지만, 지나 보니 소중하고 따뜻한 기억이 된 엄마.

저는 그런 아빠가 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빠. 집에 오면 항상 딸들을 맞아주는 아빠.

아침마다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동료의 승진 소식을 듣습니다. 좋은 직장으로 이직했다는 동료 소식도 들립니다.

그럴 때면 다시 마음이 요동칩니다.

불안하고, 또 떨립니다.

그러면 저는 딸들의 흔적을 봅니다.

늘어놓은 장난감이며 옷가지를 보고 있노라면 흐뭇한 감정이 차오릅니다.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고, 정리를 합니다.      


“얘네들은 누굴 닮아서...”     


투덜대는 하루가 다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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