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론
제목에 있는 ‘이야기’라는 말이 맘에 들어,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커피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가판대에 전시된 이 책을 보았을 때, 집어 들어 몇 장을 넘겨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 다른 곳으로 갔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서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 행동을 통해 나는 ‘커피, 너의 이야기라면 무슨 이야기든 들어주겠어. 나는 너에게 무척 관심이 많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미국에 있었던 동안, 학위는 받지 못했지만, 잠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수강했던 과목 시간에 교수님은 우리가 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사회조사 방법으로 주변 사회문화를 조사해서 보고서를 쓰는 것이었다. 가치 평가를 하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보고서였다.
나는 그때 대학교 캠퍼스의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그 기숙사에는 이슬람 히잡을 착용하고 다니는 여학생이 있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그 여학생과 면접을 하여 히잡 문화를 조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용기를 내어 인사를 하고 과제에 필요한 면접에 응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 여학생은 다행히도 흔쾌히 나의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날짜를 잡고, 미숙한 영어이지만, 손동작과 표정을 섞어가며 여러 질문을 했고, 노트에 그 학생의 얘기를 써 내려갔다.
그 여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히잡 문화에 대하여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 구체적인 면접 내용 하나하나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기숙사 건물 1층 공동 공간 소파에 앉아서 서로 웃고 얘기했던 모습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다. 그때 나는 히잡을 쓴 이슬람인을 만난 게 아니라 히잡 뒤에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
보통 나는 좋아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무척 듣고 싶어 한다. 그 사람의 성공담뿐만 아니라 어두운 상처도 깊이 공감해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편견을 가지고 섣부른 판단을 하며 마음의 문을 닫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를 깊이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내 껍데기가 아닌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사람도· 사물도· 때론 여행 장소도 그들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이번 여름 가족 여행은, 그동안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못했던 지역으로 가야겠다. 그곳에서 그곳의 지나온 이야기를 마음을 열고 들어야겠다. 가치 판단을 하지 말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보고 그대로 써 내려가야겠다. 그 땅과 그 땅 위의 사람들 이야기를. 내 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