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L, 말, 곧 사건이 되다

내러티매진 Narratimagine-사도들의 길, 우리의 걸음

by 푸른킴

데오빌로가 첫 번째 편지 앞에서 갈등하던 그 시각, L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안했습니다. 습관대로 차를 마시고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빈 파피루스를 펼쳤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그러나 뒷말을 바로 이을 수 없었습니다. 펜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데오빌로가 이 편지를 기분 좋게 받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L은 데오빌로를 처음 소개받았을 때, 몇 마디 말을 통해 그의 ‘정서적 상태’와 ‘사물을 인식하는 태도’가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이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사실, L은 데오빌로를 직접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와 L 사이에 이런 일이 있긴 했습니다. 어느 날 L의 친구가 율법 재판 광장에 나갔는데, 몸을 더럽혔다며 율법을 어겼다고 끌려온 한 여인에게 돌을 들고 분노하는 군중 뒤편에서, 그 여인을 기웃거리는 한 남자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 L은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사람이었을까? 얼마 뒤 수소문 끝에 그 낯선 사람이 데오빌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L은 데오빌로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상세히 설명해주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몇 번 더 질문이 오갔습니다. 얼마 후 데오빌로에서 아주 정중한 문체의 편지가 왔습니다. ‘아무래도 선생으로 모셔야겠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데 딱히 답을 들을 때가 없습니다. 이방인이지만 저를 제자로 받아주시고, 앞으로도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소상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그날 이후, 서로는 일면식도 없으면서 그저 글과 기록으로만 '선생과 제자'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L은 역사가다운 선생으로 사건을 보냈고, 데오빌로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역사의 말을 뒤따라가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L이 데오빌로에 대해 계속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그는 예상대로 조금 예민한 성격이고, 날씨에 기분이 좌우되며, 아침 식사를 자주 거르고, 글 읽기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데오빌로가 최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여러 행적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아주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내가 쓰는 소식이 즐거운 소식이기도 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행복한 소식을 들을 수 있다니.’


이야기는 분량이 좀 많았습니다. 사실 첫 번째 편지는 너무 잘 알려진 선생 예수의 이야기라 그리 흥미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편지에 담을 내용은 데오빌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편지는 L 자신이나 여러 사람이 직접 지켜본 '한 사람의 이야기'라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두 번째 편지는 선생 예수가 사라진 뒤의 이야기여서 그 자체로 새로운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선생 예수가 없는 상태에서도 그의 말과 부탁을 실천하기 위해 거친 길로 나갔던 사람들, 이후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L은 일단, 첫 번째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데오빌로님! 아시겠지만, 첫 번째 편지는 가난한 자와 친밀했고, 기도하기를 즐겼으며,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좋아했던 젊은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슬프게도 끝내 십자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 젊은이는 평소 그와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매력에 빠져버릴 만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당신에게 소개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 젊은이는 길을 가다 야생화 앞에서도 한참 동안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다른 이들이 꺼리는 사람들을 친구라 하며 집에 들어가 밥 먹기를 즐깁니다. 질문을 쏟아내고, 스스로 답하기도 꺼리지 않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며, 어떤 날은 밤새워 땀이 피가 되도록 간절히 탄원하기도 합니다. 사람을 긍휼히 여겨 그 아픔을 지나치지 못하고, 기적 같은 일도 거침없이 해냅니다.”


첫 편지를 보낸 후 L은 데오빌로의 반응이 궁금했지만,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를 만날 수는 없어서 어떤 말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답장을 기다리면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마음마저 읽어내려는 것, 괜한 오지랖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그의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두 번째 편지를 쓰다가 머뭇머뭇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L의 찻잔이 식었습니다. 일단 두 번째 편지를 써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처음 두 구절을 겨우 완성하고 나자, 심호흡이 올라옵니다. 머리가 띵한 기분이 들어 책장 앞으로 가 메모철 하나를 꺼냈습니다.


'데오빌로. 하나님을(테오) 사랑하는 사람(필레), 하나님의 친구'라는 뜻. 이름 외에는 알려진 바 없음. 소문에 따르면, 누구를 후원할 만큼 재력이 있고, 사회적 위상이 높았던 사람으로 추정. 예수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큰 관심도 없음. 그리고 붉은 글씨로 엊그제 덧붙인 메모가 눈에 띄었습니다. 첫 번째 편지를 보낸 뒤 얼마 후 예수에 관해 관심이 생겼다고 함. 그러나 편지 끝에서는 소식이 없음.'


데오빌로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읽으면서도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식어버린 차를 마시자 마음마저 차갑게 식는 듯했습니다.


‘분명 첫 번째 편지로 예수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를 가르쳤고, 어떤 일들을 행했는지 읽고 알게 되었을 텐데, 성실히 읽었다면 말이야.’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끝내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한숨이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의 마음의 소리를 읽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습니다. 그도 나도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 뭔가 새로운 변화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의 반응은 L은 물론 누구도 전해 들은 바가 없었습니다. 아침부터 데오빌로의 창가에서 지저귀던 그 새 소리가 선생 L의 서재에서도 심란하게 그러나 질서있는 리듬으로 들립니다. ‘그래도 쓰려고 했으니 써서 보내야지. 그에게 필요한 이야기니.’ 마음을 다잡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습관처럼 혼잣말이 튀어나옵니다.


‘바람이 차네.’


L이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마음을 다잡고 펜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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