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매진 Narratimagine-사도들의 길, 우리의 걸음
그때, 한 기억이 데오빌로를 스쳤습니다. 얼마 전 책장 한쪽 끝에 내던져 둔 첫 편지 끝에 무엇인가 적혀있었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바로 읽지 않아 기억은 흐릿합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이 심란한 순간에 그 내용이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데오빌로님, 이제 첫 번째 편지가 끝납니다. 이야기가 잘 전해졌을지 궁금합니다. 원하신다면, 저는 이제 두 번째 편지를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편지는 제가 바짝 따르며 관찰하고 경험했던 젊은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데오빌로님이 아시는 것처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결말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을 거스르고, 규범을 떠난 이들의 삶의 끝은 어땠을지 꼭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인생의 소중한 것을 발견했을 때,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 보신 적이 있으셨을 겁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들어서 배운 말씀을, 몸으로 실현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데오빌로님도 그러하시기를 바랍니다. 데오빌로님이 헤쳐온 그 역경이 지금의 데오빌로님을 만들어냈을텐데, 우리들도 그랬습니다. 그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비록 첫 번째 이야기를 직접 경험하지 못하셨지만, 그 이야기를 먼저 들은 사람들을 통해 데오빌로님도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들으며, 몸으로 체험할 수 있으실 겁니다. 부디 이 첫 번째 편지가 끝나는 날, 두 번째 편지를 보내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생소했습니다. ‘손, 귀, 몸으로 실현한 사람들’이라는 말에서 뭔가 울컥했습니다. 이상한 느낌입니다. 질투와 동경이 공존하는 것은 힘겨운 일입니다. 자신도 경험이라면 젊은 날 안해 본 것이 없었고, 지금 그 경험이 자기 삶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L이 그 다음에 쓴 말에 감정의 물꼬가 터저버렸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다독인다는 것이 참 이상한 감정을 갖게 했습니다.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평소라면 ‘뭐 안해본 것도 아닌데 뭐 새로운 것이 있을까?’라면 빈정대는 심정이었겠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확 들었습니다. 평소 지론대로 오해는 바로 풀지 않으면 인지 작용에 오류를 일으켜 결국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60 평생 조금씩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리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 젊은이, 아니 그들의 선생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와서 다시 듣는 것이 스스로 의아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만큼 들었고 삶도 살만큼 살았다는 생각이 등을 떠밀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가끔 L과 주고받은 편지 내용이 흥미로왔다는 생각도 주저함을 없애주었습니다. 무엇보다 L이 자기 삶을 인정해주고, 마음을 어루만저 주었다는 것에 용기를 냈습니다. 그의 선생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아주 조심스럽게 삐져나왔습니다.
‘그래, 예수가 사라진 뒤, 그 남은 자들이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내가 알고 싶어 하긴 했지. 현실을 현실로 경험하지 못한 나에게 내 몸으로 경험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것을 내가 무시했군.’
사실, 데오빌로는 평소 L이 보내온 편지의 문체가 역동적이었다는 것에 한편으로는 놀랐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L에 따르면, 선생 예수와 함께 한 모든 시간 역사는 다시 역동하는 것 같았고, 그가 승천한 이후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삶 역시 더 생동감 있게 박동했습니다. 평소 L의 글에서 확신에 찬 어조가 들릴 때마다 데오빌로는 자신과 참 다르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데오빌로는 어떤 일에도 마음이 뛸만한 흥분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릴적부터 감추는 미덕을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 L과 간헐적으로 나눈 이야기에서 그들에게는 선생이지만, 데오빌로 자신에게는 여전히 어떤 젊은이에게 불과한 그 사람에게 마음이 쉽게 기울어지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야기가 반복될수록 기대감이 너무 커지는 것이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데오빌로 자신도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조심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자기 안으로는 남모르는 자신감이 늘 차고 넘쳤던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L의 말은 데오빌로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을 새롭게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었으니 데오빌로의 마음이 기울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웠습니다. 나아가 데오빌로를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가려는 L의 깊은 의도가 절실했고, 심지어 자신을 어떻게든 선생 예수의 이야기에 참여시키려는 전략적 목적이라 해도 괜찮다는 허용이 마음을 조금씩 채우고 있었습니다. 데오빌로는 말없이, L이 있을 것 같은 어느 방향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L, 미안합니다.”
뒤늦게나마 미안함을 느끼며 마음을 연 것은 이례적입니다. 데오빌로는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두 번째 편지 첫 두 구절을 다시 읽었습니다.
첫 번째 편지로 알게 된 선생 L의 문체가 여실히 드러나는 구절이었습니다. 그는 대단히 친절한 역사가답게 역사의 마음을 읽어내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사건을 치밀하게 관찰하여 해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그 역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따듯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여전했씁니다. 의사이거나 상담이라는 소문도 L에게 걸맞았습니다. 처음 두 구절들에서 그런 L의 성품을 다시 읽으니 반가웠습니다.
이제 데오빌로는 L이 마음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 두 번째 편지를 보내 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아직 첫 편지 끝에서 느꼈던 실망감이 완전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런 기분이 자신을 휘감지는 않았습니다.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있다는 것과 마음을 연다는 것은 다른 문제지만 이제 그런 어린 감상은 뒤로 물렸습니다. 이렇게 두 번째 편지를 읽기 시작할 때 데오빌로 안의 어둑한 것이 밀려났습니다. 첫 편지에서 죽음과 허무한 승천으로 끝난 것에(아직 부활은 받아들이지 못하니) 데오빌로 마음은 허무했지만, 두 번째 편지를 읽을 용기를 내자 삶이 새로 시작하는 듯한 신선한 기운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빗소리가 리듬을 타고 몸에 흐르는 사이, 선생 L의 안부가 궁금해졌습니다. 처음입니다. ‘거기도 비가 올까?’ 마음이 들키면 말을 바꾸는 버릇이 있는 데오빌로. 이제 막 펼친 그 두 번째 ‘말’, 그 첫 문장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난관에 빠졌습니다. 이 구절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분명 들었던 기억이 나긴 하는데, ‘성령’이라는 단어가 낯섭니다. 더는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이 표현에서 막혀버렸습니다. 선생 L이 보냈던 첫 번째 편지는 그런대로 잘 읽혔습니다. 그때는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오늘은 무슨 이유인지 이 구문이 매직아이처럼 도드라져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선 편지에서 L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이 알고 있던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은, 하늘의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 말도 아직 정확히 이해가 안되는고 생각이 복잡해져 있는데 ‘성령’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면서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분명 들었던 단어인데 생각나지 않는 답답함, 문득 ‘사건의 성령인가?’ 싶다가도, 아니 ‘성령의 사건인가?’를 혼잣말처럼 되물었습니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는 있지만, 억지로 끼워맞춰보니 사건의 주체가 성령이고, 성령이 그 사건의 목적이자 대상이 되는 것 같이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괜한 고민같기도해서 이쯤에서 오늘 읽기를 마칠까 생각하고 창밖을 가만히 내다봤습니다.
그런데 그때, 자신도 언젠가 그 젊은이, 그들의 선생 예수의 일을 우연히 목격했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몸을 더럽혀 율법을 어겼다고 사람들에게 끌려온 한 여인, 그 여인을 처벌하라며 분노하던 사람들, 그 군중 속에 데오빌로 자신이 있었습니다. 관찰하는 태도로 숨죽이며 그 광경을 보고 있었는데 그날 결국 잡혀온 그 여인은 자유로운 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는 하지 않기를’이라는 말이 공명하여 그 여인의 몸 어딘가에 닿은 듯한데, 묘하게 데오빌로의 몸에도 새겨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데오빌로는 또 별 생각 없이 자기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리 그날 그 현장 이야기가 생생하고 또 인정할 수밖에 없는 권위를 눈으로 봤지만 데오빌로 자신이 그걸 바로 인정하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무관심이 필요할 땐 철저히 모른 척하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데오빌로에게는 자연스러웠습니다.
솔직히, 얼마 전 만 해도 선생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 또 교회라는 이상한 공동체, 그리고 유대교에서 변절했다는 바울이라는 이해불가한 존재가 우리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다른 세계마저 정신없이 휘젓고 다녔다는 것을 들으면, 그 옛날 한 여인을 자유롭게 했다는 이야기는 그냥 전설로 치부하는 것이 좋을 듯했습니다. 그런데 선생 L의 이야기는 소문이 사실을 삼키는 일은 없다는 어떤 확신이 느껴졌습니다. ‘성령으로 명하시고’
말에서 단호한 감정을 받기는 오랜만입니다. 조금 더 새로운 궁금증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소문이 낭설일 수 많은 없을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직접 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지만, 예수가 무심히 사라진 뒤, 아마 제자들은 굳건한 결심보다도 오히려 갈팡질팡했을 것 같았습니다. 선생이 승천했는데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뭐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도대체 예수를 따르던 그들은 어떤 존재들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 대목에서 데오빌로는 다시 질문 하나를 꺼냈습니다. 질문은 해결해야 맛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질문도 또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일단, 첫 번째 ‘편지에 적힌 말’에 따르면 예수도 놀라운 사람이지만, 그를 따르던 사람들, 아마 도데카라 불리던 그들도 보통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오합지졸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또 선생예수가 승천하고 난 뒤 얼마 후 그들이 다시 모여 어딘가에 '교회'라는 조직체를 만들었다는 소문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데오빌로는 생각했었습니다. 그 일도 사회적으로는 자기 운명을 담보할 수 없는 무모한 짓이었다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교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더 웃긴 것은 사도들이 그 이후 교회의 생성과 유지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난리를 치고 만들었다는 그것에 그들이 무신경하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조직을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만들었다니 아이러니였습니다. 오히려 '자신들', 바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리는 일이 더욱 시급해 보였다는 말도 나돌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도 데오빌로는 지금 선생 L의 말을 귀담아 들어보려는 자신을 조금 독려했습니다.
‘L의 치밀한 성격에 미루어 본다면 그는 나에게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득하려 하는 것 같네. 이 두 번째 글은 아마도 그런 이야기일지 몰라. 교회, 그리스도인 말이야.’
그런데 데오빌로는 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교회'라는 그 말이 스멀스멀 마음에 축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쨌든 이제 마음은 어느새 L처럼 자신도 그 새로운 편지를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문득 자신에게 굳이 두 번이나 편지를 쓰려고 했을 때, 선생 L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궁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