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매진 Narratimagine-사도들의 길, 우리의 걸음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1:1-2)
데오빌로, 낯선 편지를 마주하다
조금 흐린 날, 아침부터 후덥지근합니다. 나이 탓인지 이런 날씨엔 몸이 찌뿌둥합니다. 꿈도 꾸지 못한 채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데오빌로는 곧바로 서재로 들어섰습니다. ‘꿉꿉하네, 비가 오려나?’ 평소 혼잣말하는 버릇이 있는 그는 날씨에 유독 예민했기에 바로 창밖 구름의 흐름부터 살폈습니다. 비가 올지 모른다고 짐작했습니다. 서재 건너편에는 몇 년 전 이스라엘의 어느 목수가 공들여 깎아준 백향목 책상, 볼 때마다 뿌듯했습니다. 흐린 날에 특유의 상쾌함을 주는 애장품입니다. 특히 왼쪽 면에 ‘위엄, 힘, 영화, 영원함을 위하여, to Majesty!’라고 쓰인 문구는 볼 때마다 흐뭇했습니다. 시선이 잠시 움직이던 그때, 문 쪽에서 고요함에 파동이 일 듯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똑똑
“30분 뒤에 아침 식사를 준비해도 되겠습니까?”하고 묻고는 집사가 물러갔습니다.
데오빌로는 사실 아까부터 책상 모퉁이에 놓인 한 통의 편지에 눈이 멈춰 시종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그 편지는 어제저녁 놓아둔 그대로였습니다. 밤늦게 전달받은 이유도 있지만, 바로 펴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더 컸습니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했다면 이제야 정말로 제자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불쑥하늘로 가버리면 남은 사람들은 어쩌라고, 참.’ 선생 예수의 승천 이야기로 끝난 첫 번째 편지(누가복음을 말함)에 데오빌로는 마음이 상해버렸습니다.
툭, 투둑 툭! '비가 오려나?'
그 틈에 한두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비꽃처럼 내립니다. 그는 이렇게 내리는 비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면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편지내용이 궁금하긴 했습니다. 첫 번째 편지를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것이어서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앞선 편지의 끝 단락의 당황스러운 결말을 읽은 뒤에는 이 새로운 편지에 선뜻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오래 전, 예루살렘에서는 선생 예수와 그 이후 제자들의 행보에 대해 좋지못한 소문이 난무했었습니다. 이상한 소문은 발이 빠른 법이었습니다. ‘어느 다락방에 남녀가 모여 괴상한 소리를 낸다’, ‘보이지 않는 바람 같은 것이 사람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심지어 유대인들이 예법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소문은 다시진화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소문이고, 남의 일 같긴 하지만 데오빌로는 불편했습니다.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자세를 조금 편하게 고쳐 앉았다가 이내 그 손마저 거두었습니다. 비는 어느새 자드락 비가 되었고, 빗방울은 굵어져 흩뿌리듯 내렸습니다.
비를 보고 나니 생각이 조금 맑아집니다. 몸은 아직 구름 위를 떠도는 듯 헛헛했습니다. 마른기침을 한두 번 하며 ‘이렇게까지 굼뜰 일인가?’ 툭 내뱉은 말에 놀랐는지. 나뭇가지에 날아들던 새가 움찔하며 되돌아 나갑니다. ‘편지를 바로 대면하지 못하는 이 모습은 회피일까? 익숙한 것에 대한 괜한 고집일까? 아니라면 새로운 지식이나 가치에 대한 인간 본연의 저항감일까?’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제 비가 가늘어져 아침 바람에 살랑이는 듯합니다. 창문을 열자, 사람과 달리 물기 머금은 숲은 진득한 향기로 가득합니다. 훅 들어온 숲 향기가 몸을 뒤덮습니다. 연녹색 나뭇잎이 가벼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꼭 자신 같습니다. 마음에 고요한 물결이 일어납니다.
“아침 드실 시간이라구요”
평소보다 딱딱한 어조로 시종이 말을 던집니다. 짜증이 묻어나는 듯 닫힌 문틈으로 물컹한 소리가 새어 들어옵니다.
사실, 데오빌로는 누군가로부터 ‘강요되는 시간’과 그때마다 겪는 내면의 ‘주체적 갈등’을 늘 불편해했습니다. 하지만 그 낯섦이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오늘 아침의 편지가 그랬습니다. 단순한 일상을 담은 문서가 아닌, 그의 안온한 일상을 뒤흔드는 외부의 목소리이자 미지의 모험에 대한 잠재적 두려움이었던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 데오빌로도 그 이방인의 편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에 쉽사리 몸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바로 나갈까 하는 그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돌아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만지작거렸습니다. 묶인 끈을 풀고 편지를 열었습니다. 짧았지만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습니다. 데오빌로가 그 편지를 앞에 두고 망설이는 동안, 편지를 보낸 L의 아침도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새벽 비가 흩뿌리고 지나간 아침의 얼굴에 흑회색 구름이 가볍게 걸쳐있습니다. 그 틈에 새소리가 새어들고 곧 요란해졌습니다. 하지만 데오빌로의 마음은 아직 첫 번째 편지를 읽은 뒤 텁텁한 기분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자기가 목격한 이야기를 보내려는 사람의 열정과 달리, 받는 사람의 태도는 영 시원치 않았습니다. 앞선 이야기가 어땠는지 일언반구 반응도 하지 않았으니 상대의 감정이 어떨지 조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책장 앞에 덩그러니 남겨진 오래된 명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름은 늘 낯섭니다. 이름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붙여진 기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신이 사랑하는 자인지, 아니면 신의 사랑을 받는 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아무런 표식도 없는 신의 은총이란 허상이라는 생각은 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면식도 없는 L이라는 사람이 지금 자신에게 이렇게 정갈한 편지를 보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아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는 자신에게 너무 묵직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젊은 날 L이 사이사이 말해준 그 ‘젊은이’에 대해서는 아무리 들어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들과 거의 만날 일도 없으니 그들의 선생과 거리감은 더욱 멀어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아마도 나같이 이런 정체불명의 수신인을 내세워 편지를 보내는 것은 다른 전략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늘그막의 데오빌로는 옛날 생각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지금 L의 첫 번째 편지 마지막 부분에서 데오빌로는 여전히 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해되지 않은 것인데, 오히려 절망감을 주는 이야기가 마음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젊은 날 그들의 선생을 따르지 않은 것은 잘한 선택같군. 이렇게 허망한 결론으로 끝났다니’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데오빌로는 한편으로 자신이 L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춰졌는지 궁금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편지를 두 번이나 보내는 것일까?’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첫 번째 편지는 그렇다치고 두 번째 편지는 목적이 뭘까? 선생도 사라졌다는데 말이야’
듣기로는 그의 제자들은 3년이나 그 젊은이를 따라다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느닷없이 그 젊은이가 죽었고, 그 후 주검마저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데오빌로도 그 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절망의 순간에도 그 제자들은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했습니다. 소문은 점점 강해져서 마침내 그들이 온갖 위협을 뚫고 마침내 '그리스도인'이라는 독특한 표상을 갖게 되었다했습니다. 데오빌로도 그 사실은 조금씩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데오빌로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잠깐 호기심이 있었을 뿐 거의 잔잔한 강처럼 아무런 요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데오빌로의 무덤덤함은 그의 삶을 통해 배워온 처세술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모르고 낯선 세계에 대해서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이해될 때’까지.
“아침부터 뭔 새가 저렇게 요란하지?”
어쨌든 L의 편지를 앞에 두고 데오빌로는 괜한 투정을 부리는 자신이 못마땅했습니다. 새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자신의 심란한 마음을 알아주고 다독여주는가 싶어 멋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