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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오빌로의 소식, 선생 L의 낙담

내러티매진 Narratimagine-사도들의 길, 우리의 걸음

by 푸른킴

마침내 첫 번째 편지를 받아든 데오빌로의 응답이 전해졌습니다. 데오빌로는 답답한 마음이었고, 심지어 끝부분에서 절망까지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L은 데오빌로의 반응이 의외로 냉담했다는 사실을 듣고 자신도 가볍게 낙담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아쉽긴했습니다. 이야기가 명쾌하지 않았는지, 결말이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았던 탓이었을까 괜한 고민이 상상의 나래를 펴며 L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반응에 L도 질문과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L은 자신을 선생이라 부르겠다던 데오빌로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선생이기에는 부족하지만, 나름 경험한 이야기를 최대한 생생하게 들려주었고, 데오빌로는 그 이야기를 신중하게 읽어주던 자였습니다. 제자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L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든 모르든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름이 달라지면 삶도 뒤바뀐다고 하는 것을 믿고 싶었습니다(어쨌든 우리는 선생과 제자라는 새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부디 데오빌로의 남은 생애에서 이런 변화가 꼭 실현되길 마음 다해 빌었습니다.


갑자기 요란하게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L은 움찔했습니다. ‘이런, 맑았는데 비라니.’ L은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느닷없는 비는 어떤 은총 같았습니다. 데오빌로의 반응에 마음이 가라앉아 침울했지만, 빗방울이 기분 좋은 자극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가 다음이야기부터는 새롭게 읽어낼 수 있을거야.’


L이 마음을 다잡고 구상한 전체 이야기의 맥락은 이렇습니다. 젊은이가 사라진 날 이후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마침내 바람이 급하게 불어오는 날, 교회로 태어났습니다. 공동체의 탄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라는 독보적인 존재의 등장으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역동했습니다. L은 이 구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데오빌로가 이 일을 잘 듣게 된다면 그도 어떤 희망을 품게 되겠지’라는 기대에 눈가에 웃음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L은 자신이 본 대로, 들은 대로, 경험한 대로 써 보내는 데 온 힘을 썼습니다. L은 ‘역사적 서사’가 사실만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도 전달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야만 그 글을 읽는 이가 절망 중에도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자신과 타인의 존재가치를 다독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L은 마음을 다잡고 두 번째 편지를 시작했고 첫 두 문장을 완성했습니다. 첫 문장에서는 앞서 보낸 편지가 '로고스'였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사람들은 첫 번째 편지를 ‘먼저 쓴 ’이라고 달리 풀이했지만, L은 분명 ‘글(letter)’이 아니라 ‘말’, 즉 ‘로고스(Logos, word)’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의도적입니다. 지금, 이 두 번째 편지엔 ‘글’이 아니라 ‘말’이 담겼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이나 그들과 친하다면 이 단어의 의도를 금방 알아챌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과 ‘사건’을 같은 단어로 쓰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말한 것은 곧 사건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신의 말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니 지난번 첫 편지에 담긴 예수의 이야기도 그저 단순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사건이었습니다. 데오빌로에게 ‘말하듯.’ 옆에서 ‘이야기하듯’ 했지만, 분명 사건을 들려주려 했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편지는 선생 예수에 관한 글이 아니라 그를 따르던 우리 제자들이 일으킨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글을 남긴 것이 아니라 ‘말’, 즉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도를 담고나니 L의 몸에서 출항의 뱃고동 같은 웅장한 소리가 뿜어져 나와 몸과 방을 가득 채웁니다.


데오빌로의 미미한 변화

같은 시각 데오빌로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첫 번째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두 번째 편지의 인사말을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갔습니다. 어느덧 비가 그치고 구름 잔뜩 낀 흐린 날씨.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막혔던 문장이 술술 풀리면서 예상 밖으로 데오빌로는 맑고 경쾌한 기분이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질문은 여전했지만 마음의 구름은 걷혀가고 화창해지는 듯했습니다. 이 순식간에 일어난 심정의 변화는 마치 변덕스런 날씨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변덕은 인간에게서 오히려 더 자주 일어나기에 데오빌로는 이 마음을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맑은 햇살이 창밖 나뭇잎 사이로 드리우고 있었고, 나른했던 몸에도 기운이 솟구치는 듯했습니다. 선생 L의 말투가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때 바람이 훅하고 몸을 감싼 뒤 흘러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창이 열렸나?’ 굳게 닫힌 창은 서재의 안과 밖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약한 소용돌이 같은 것이 방안을 휘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데오빌로는 혼잣말을 삼켰습니다.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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