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매진 Narratimagine-사도들의 길, 우리의 걸음
"그가 고난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1:3-5)"
새로운 '말'을 사건으로 대면할 데오빌로
미안함과 기대가 뒤엉킨 데오빌로는 숨을 한 번 깊이 내쉰 뒤, 3절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단락이었지만,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단어는 알았지만, 그 너머에 감춰진 뜻을 찾으려는 탐독 때문이었습니다. 한 단어를 읽고, 생각하고, 다시 다음 단어를 찾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간단히 메모했습니다. '증거, 사십일, 하나님 나라의 일'. 다시 보니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들입니다. 첫 편지보다 개념이 훨씬 깊어진 듯한 느낌이 머리를 때렸습니다.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 더 알고 싶은 욕망이 강해질수록,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듯한 부조화를 자주 느꼈습니다.
창밖을 한번 내다보고 편지를 다시 보는 과정에서 데오빌로는 질문투성이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평소 질문하기를 즐겨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습니다. '40일은 또 뭔가? 말씀하셨다는 걸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제자들에게 단단히 말해두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기다리라, 성령? 세례? 그들이 세례를 받는다고?' 모든 문장이 궁금했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전 편지와 그에 관한 이야기에서 경험했듯, 선생 L은 치밀한 사람이기에 주제를 먼저 압축하고, 그 이야기에 얽힌 사건들을 역사가의 기법으로 써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하기는 잘 모르겠지만, 글쓰기만큼은 믿을 만했습니다. 그의 글은 재밌으면서도 치밀한 역사서 같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목격한 이야기에 인물들의 심정까지 생생하게 곁들이는 재능이 탁월했습니다. 역사의 마음을 읽어주는 역사가. 데오빌로에게는 첫 편지가 바로 그 증거였습니다.
'사실 예수라는 사람이 훌쩍 어디론가 올라가 버렸다는 마지막 이야기는 당황스러웠지. 씁쓸한 결말이었어. 하지만 L의 의도는 이 두 번째 편지를 보내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군. 굳이 첫 편지를 다시 언급하며 요약해 주는 것을 보니 말이야.'
바로 그때, 데오빌로는 사방이 어두워지는 듯하면서 동시에 머릿속에서 섬광이 스치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소리, 심지어 빛마저 사라진 듯한 적막감이 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쨍그랑”
멀리 주방 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든 고요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에잇’ 하며 짜증 섞인 얼굴로 문을 열고 나가 “신중하지 못하게”라며 핀잔을 주었을 겁니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마음이 몸을 이겼습니다. 돌아보니 새벽부터 평소보다 많은 소리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새벽에 탁탁탁 내리던 빗소리, 창가에서 예쁘게 “삐 삐리 삐리릭” 울리던 새의 노랫소리, 시종들이 ‘크크크’ 웃던 소리,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한숨 소리, 그리고 지금 이 불쾌한 소리마저 모두 신의 계시로 들렸습니다. 언젠가 히브리인들의 신은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소리로 자기 존재를 알린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 나에게도 신의 계시가?’
그때, 몸의 모든 긴장이 풀어져 버렸습니다. 몸이 비워지고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말씀하셨다는 것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이 놀랍군. 40일간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했다는 것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것 같네. 아예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도 했어. 그렇다면 분명하네. 그 약속이 실현되면, 이어서… 그래, 하나님 나라의 일이 주제야. L이 말해주려는 것이 바로 이거야. 기다리라는 말은 그 일을 하기 위한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는 건데, 그것이 아마 성령으로 받는 세례라는 말이겠군. 그나저나 예수는 참 놀라운 사람이네. 사도들에게 트라우마였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다니, 무슨 이유일까?’
질문에 질문이 이어지는 내내 데오빌로는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 어떤 질문도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질문을 던지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철학 수업에서 ‘호모 인퀴리투스(Homo Inquititus), 호모 콰렌스(Homo quaerens)’를 슬로건으로 ‘질문하는 인간이 진정한 인간이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습니다. 그래도 질문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잠언도 귓등으로 들었습니다. 오늘따라 그 모습이 크게 떠올라 헛웃음이 나올 뻔했습니다. ‘그렇지, 진정한 인간은 질문하는 인간이다. 이제야 그 말을 실감하다니.’
무엇보다 데오빌로의 어깨가 쭈뼛한 것은 단어 뜻은 차치하고서라도 L의 문장이 아주 많이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주제제시를 명확하게 발견했다는 것에 자신을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었습니다. 평소와 다른 자신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친김에 혼잣말과 함께 펜을 들어 메모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이야기는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저 사도들의 기다림이 나올 것이고, 그다음에 성령 세례, 끝으로 40일간 배웠다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어지겠군.’ 이야기가 생각보다 극적일 것 같은 기대에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얼른 질문 편지를 써서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그리 급하게 서두를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순간, 희미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바닥을 위로하며 뭔가 잘해보라는 격려의 손짓도 함께 보이는 듯했습니다. ‘편지를 다 읽고 나면 분명 뭔가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라는 잔향과 함께.
그 찰나의 순간, 어떤 묵직한 힘이 자신의 마음을 이끌었다는 확신이 오랜만이었습니다. 당연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평소 이런 상태라면 좋은 버릇이 나오곤 했습니다. 집안 시종들의 지난 잘못을 바로 탕감해 줄 수도 있었습니다. 시종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좋으면 시종에게도 좋은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 데오빌로의 신념이었기 때문입니다. 시종들이 행복한 어투로 서로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자, 데오빌로는 마치 이심전심처럼 느껴졌습니다.
“Ευχαριστώ το Θεό”(즉, 육카리스토 도 테오! 신이여,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라는 말을 들으니 데오빌로는 첫 편지 끝에서 괜히 투정을 부렸던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이제야 선생 L이 첫 번째 ‘말’에 예수 사건을 중심으로 소개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번째 ‘말’은 예수의 사건이 아니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이뤄낸 ‘하나님 나라의 일’일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처음부터 L은 자신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내려 했고, 어쩌면 지금, 이 편지가 더 의미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L의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데오빌로같이 이제 막 예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 자신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실감 날 수 있으니 말입니다. L의 깊은 의도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야 첫 번째 편지의 끝에서 느꼈던 허무함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마음속에는 이미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했습니다. 여전히 편지를 든 손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경쾌했습니다. 겨우 세 줄을 읽는데 해가 뜬 후부터 정오까지 흘러갔지만, 데오빌로는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빠르게 휘감는 듯한 신비한 경험을 늘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흘러가 버린 것이 아니라 맴돌다 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때, 편지에서 L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낯설지도 않은 신비한 체험이었습니다. 놀라움을 어찌할 수 없었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고 들고 있던 편지를 가까이 끌어당겨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유난히 밝게 빛나는 ‘성령의 세례’라는 그 구절, 즉 성령이라는 단어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난 가벼운 진동이 몸속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번지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