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역사의 시동

내러티매진 Narratimagine-사도들의 길, 우리의 걸음

by 푸른킴

L은 언제나 상대에게 깍듯이 예를 갖춰 불렀습니다.


“데오빌로님! 첫 번째 편지를 잘 읽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낯설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랬다면,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기대할 만하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드리겠습니다. 곧 알아채셨겠지만, 이 두 번째 편지를 위한 사전 작업이었으니 양해해 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데오빌로는 이 말에 마지막 남았던 허망함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정결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상대의 어려움이 예측되면 먼저 용서를 구하고 해법을 구하려는 태도, 자신이 높아도 상관없는 상대에게도 더욱 몸을 낮춰 친절하게 대하는 선생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잠깐 스치듯 만난 게 전부인데, 그의 글에서 그런 인간의 미학이 드러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따라다녔기 때문일까?’ 문득, 시종들을 향한 자기 태도가 겹쳐졌습니다. 약간 갈증이 느껴졌습니다. 시종을 부르려다 말을 거뒀습니다. 지금만큼은 자신이 직접 물을 가지러 나가는 것도 좋겠다는 작은 소리가 마음을 간질였습니다. 문을 나서자 시종들이 흠칫하며 ‘무슨 일인가?’ 놀라는 표정으로 굳어버린 듯 서 있습니다. 아무 말 없이 물 한 컵을 들고 다시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온유하다는 건가? 겉은 부드럽고, 안은 강한?’ 가벼운 미소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첫 몇 구절에서 쓴 것은 앞서 첫 편지와 이어집니다. 나의 선생이신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부활은 좀 어려운 말이지만 일단 그냥 쓰겠습니다) 자신이 직접 선택했던 사도들, 베드로를 기억하시죠? 네, 그 열두 제자에게 나타났습니다. 그 친구들을 ‘도데카(12라는 뜻, 한 묶음)’라고 부르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 예수께서는 성령을 힘입어 말씀하셨고, 곧 승천했습니다. 아마도 이 대목이 가장 허망한 이야기였을 것 같았습니다. ‘승천이라뇨? 무슨 고릿적 이야기인가?’ 하셨을 겁니다. ‘시대가 얼마나 달라졌는데 신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현실처럼 말하다니.’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사실이었으니 말입니다.


어쨌든 나의 예수께서는 십자가 처형 후 무덤에 갇혔다가 부활했고, 그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남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살아나셨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이라 해도 믿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40일을 보낸 목적이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신다면, 두 가지를 꼭 주목해 주십시오.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부탁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통 이해하듯, 지도상의 어떤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예수를 통해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던 삶의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modus vivendi’라고 하면 금방 이해되실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로,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성령 세례’ 때문입니다. 제가 편지의 앞부분 5구절, 특히 3~5구절에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아두었습니다. 차분하고 영민하신 분이니 금방 알아채셨을 것입니다. 꼭 기억해 주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일과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 결국, 제가 쓴 편지의 다음 이야기는 이 둘 사이의 관계입니다.


노파심에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제가 첫 편지에서 공들여 썼지만, 제가 경험한 선생 예수의 이야기는 곧 길 위의 사건 그 자체였습니다. 또한, 열매를 먼저 꿈꿨다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은 무모합니다. 그 자리는 사도들에게 실패와 부끄러움, 절망의 심장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생 예수는 ‘길의 예언자’였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있기에, 실망은 이릅니다. 예루살렘, 그 고도의 정치와 부, 명예와 특권의 도시, 그러나 위협적인 대적자들의 도시에서부터 ‘다시’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선생은 말하기를 ‘모든 열매는 최후의 날에 나의 아버지(하나님)가 결정한다.’라는 옛 지혜자 코헬렛의 유명한 잠언(전 12:13-14)을 그대로 선언한 것 같기도 합니다. 열매는 우선적 관심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길을 걷는 자에게는 그 길 걷기 자체가 열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이미 경험했듯, 누구라도 열매를 기대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시시할 수도 있습니다. 선생 예수도 지난 3년 동안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데오빌로님, 나의 선생께서 40일 동안 ‘무엇을 가르쳤다’라는 말 뒤에는 그분이 최소 3년간 사랑하는 제자들과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가난한 동네는 내 집 드나들 듯 다녔습니다. 갈릴리는 본거지였고, 예루살렘, 심지어 나라 경계 밖, 불가촉 지역까지 들어갔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과 성령의 사람들 사이에는 열매가 아니라 과정, 즉 ‘길’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제 편지의 핵심을 잘 이해하시길 기도합니다. 제 편지는 그 길 위에서 일어난 말, 곧 사건을 들려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기대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 길의 역사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이 편지를 쓰는 저와 또 이 편지를 읽는 누군가에게도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일은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바로 성령의 사람들이 길을 걸으며 일으키고 확장된 사건입니다. 그 길은 시골과 도시, 사막과 평야, 평지와 산을 아울렀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아울렀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 곧 사건'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아 참, 데오빌로님은 걷기를 좋아하시나요? 주로 마차를 이용하시겠지만, 제 이야기 속에서 ‘한 걸음씩 걷는 자들의 위대함’을 조금 배워보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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