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여니맘 Apr 08. 2023

쪽파김치가 봄에 더 맛있는 이유

심어 먹는 것들

올봄, 쪽파를 다시 만나며.


"봄 부추는 딸네도(혹은 사위도) 안 준다"

"봄 부추는 숨겨가며 먹는다더라"


얼마나 맛있으면 딸에게까지 주지 않고 숨겨가며 먹는다고 표현했을까? 봄에 돋아난 부추를 뭐든 아깝지 않은 딸에게도 주지 않는 것은 보들보들, 달짝지근 맛있어서다. 


"그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나왔는데 몸에 얼마나 좋겠어!"


이와 같은 말도 참 많이 들었다. 혹은,  이처럼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설마? 아마도 십중팔구 유독 맛있어서다. 여하간 겨울 지나 처음 올라온 부추는 맛있고, 맛있다.


그런데 봄부추뿐이랴. 겨우내 죽은 듯이 있다가 봄이련가 돋아난 대파와 쪽파도 맛있다. 봄부추가 그렇듯 보드랍고 달짝지근하니 맛있다. 뭣보다 매운맛이 적다. 가을에는 전혀 상상조차 못 할 맛이 봄대파와 봄쪽파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즈음엔 꼭 쪽파김치를 담가먹곤 한다.


                                                                            




그렇다면 봄부추와 봄대파, 그리고 봄쪽파가 왜 그리 맛있을까?


가을 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리는 이유(낙엽)는 잎으로 인한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서, 즉 최소한의 에너지로 겨울을 나야해서란다. 냉이나 뽀리뱅이 등처럼 지난가을에 싹을 틔워 겨울을 나는 식물들도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나기 위한 특별한 대책세운다.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는 한편 뿌리에 당분을 최대한 많이 축적한다. 그래야 뿌리가 얼어 죽지 않기 때문이다.


맹물보다 설탕물이 덜 언다. 이 원리를 알고 있는 것처럼 뿌리에 당분을 최대한 많이 축적하는 것이다. 그래서 봄 냉이 뿌리가 유독 굵고 달짝지근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채소인 부추나 대파, 쪽파, 달래도 마찬가지. 이들 모두 뿌리로 겨울을 난 후 꽃샘 추위 속에 싹을 틔워 올리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어떻게 겨울을 날까?


뿌리를 보다 깊이 내리는 한편 잔뿌리를 많이 만든다. 그래야 겨울에 얼어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뽑아보면, 가을 쪽파나 대파, 그리고 달래보다 겨울을 난 것들의 뿌리가 훨씬 탐스럽다. 잔뿌리도 훨씬 발달해 있다. 그런데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얼어죽지 않으려고 뿌리에 당분을 듬북 저장한 냉이처럼 대파나 쪽파도 뿌리에 당분을 듬북 저장한다.


대파도 쪽파도 그렇게 겨울을 난다. 그래서 울을 난 대파는 구워 먹어도 감칠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맛있고 쪽파도 가을 쪽파보다 훨씬 달다. 상대적으로 매운맛은 훨씬 덜하다. 봄쪽파와 봄대파가 맛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봄에 캐어둔 쪽파 머리(종구)를 말려 가을에 심는다. 잔뿌리 제거, 파란 싹이 돋은 부분이 위로 가게해서 심는데, 싹 난 그대로 심어도 되지만 그 아래를 잘라 심어도 된다.
퇴비를 준 후 물을 뿌린다. 그 후 이렇게 콕콕 넣은 후 흙을 덮어주면 된다(2022년 9월 초)


몇 년째 텃밭을 일구고 있다. 해마다 가을이면 꼭 심는 것이 있다. 쪽파와 대파가 그것. 꼭 필요한 만큼만 뽑아먹고 겨울을 나게 한다. 심은 것이 적다 싶으면 전혀 뽑아 먹지 않고 겨울을 나게 한다. 겨울을 나게 하면 이즈음 지난가을에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고 영양가 많은 쪽파김치를 해 먹을 수 있어서다. 혹은 대파를 듬북 넣은 장국이나 육개장을 끓여 먹고 싶어서다. 혹은 대파장아찌를 담가먹을 수 있어서다.


덧붙이면, 텃밭을 한다면 쪽파만큼은 꼭 심어보라. 종구 윗부분을 조금씩 잘라낸 후 퇴비를 준 후 물을 어느 정도 뿌린 흙에 콕콕 묻는 것만으로 심는 것은 끝,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자란다. 심은지 2~3일쯤이면 싹이 돋기 시작할 정도로 싹을 빨리 틔워 빨리 자라기 때문에 가꾸는 재미도 좋다. 간혹 무름병이나 고자리파리 피해를 입기도 하지만 다른 작물에 비해 병충해가 적은 편이다. 베란다에서도 쉽게 가꿀 수 있다.


뭣보다 쪽파를 직접 심어 먹으면 좋은 이유는 작게 자라 야들야들할 때 뽑아 먹을 수 있다. 게다가 뿌리까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파뿌리가 감기에 좋다고 한다. 육수 만들 때 쓴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비료를 듬북 북 먹고 자란, 비료가 듬북 들어간 흙에서 자란 파뿌리도 좋을까? 생각해 볼일이다.





겨울을 나고 봄이 되어 다시 자란, 올 봄 쪽파. 누런 잎은 지난 해 가을(2022년)에 자라 겨울에 마른 것이다.
지난해(2022년) 가을 쪽파 씨(종구)를 손질하며.


쪽파를 심어 가꾸며.


오늘날 쪽파는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채소 중 하나다. 농업기술과 비닐하우스 덕분이다. 하지만 나처럼 작은 규모로 심어 먹는 사람들은 김장 무렵 혹은 요즘에만 먹을 수 있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엔 쪽파를 심어 먹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쪽파의 씨앗이랄 수 있는 종구를 구할 수 없는 데다가, 자연 적으로라면 아무 때나 싹터 자라지 않아서다.


몇 년 동안 쪽파를 심으며 알게 된 흥미로운 것은 쪽파 스스로 싹터 자라거나 쉬어야 할 때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매우 잘 선택한다는 것이다.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내가 사는 경기북부는 대개 말복이 지나면 심어도 된다. 쪽파는 씨앗이 아닌 종구로 심는다. 종구는, 이즈음 뽑아 먹고 남은 것을 그냥 둔다. 그러면 억세지는 느낌과 함께 양파처럼 생긴 머리 부분이 단단하게 여문다. 대략 4월 중순 지나 5월 초 무렵, 잘 자라는 것 같다가 갑자기 픽픽 쓰러지는데, 오전에만 해도 싱싱했던 것이 오후 들어 누워있기도 한다. 이걸 뽑아 말려 우리가 흔히 파 대가리?라고 하는 오동통한 부분만 추려 심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종구로 쓸 수 있는 것을 캐지 않아 땅속에 여름 내내 둬도 싹을 틔우지 않는다는 것, 장마를 흙속에서 지나는데도 썩지 않기도 한다는 것, 가을을 기다려 싹을 틔운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너무나 부실해 보이는 것 몇 개를 뽑지 않고 흙속에 묻히게 둬버렸다. 그렇게 두면 썩어 거름이 되려니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뭘 심자고 흙속을 뒤지니 봄에 버린 쪽파씨들이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 또 하나는, 무더운 여름 중엔 아무런 기척이 없다가 말복이 지날 무렵 보면 어느새 싹을 내밀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 심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데 심을 때가 지나면 스스로 생명력을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쪽파 재배 현황(출처: 포털사이트 Daum 캡쳐)


쪽파는 노지재배의 경우 말복 이후 심는다. 추석에 먹을 것은 말복이 지난 며칠 후부터 심고 김장에 쓸 것은 추석 무렵까지 심으면 된다. 파 값이 유독 비싸 그 여파로 집에서 파를 길러먹는 것이 유행한 몇 년 전 그때, '아주 늦가을에 심어 겨우내 잘라먹어볼까?'의 욕심으로 좋아 보이는 쪽파 종구 한 줌을 남겼다. 그걸 시월 말쯤 심어보자, 나름 계획했다. 그러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10월 말, 막상 심으려고 보니 알맹이는 흔적 없고 껍질만 남아 있었다.


이처럼 추석 무렵까지 미처 심지 못한 것은 나름 잘 보관한다고 해도 썩거나 말라버려 생명력이 없어진다. 아마도 한겨울에도 쪽파를 생산하는 농가들은 이걸 극복한 어떤 기술로 종구에 어떤 처리를 해 시설재배(하우스재배)하는 것이고.


텃밭을 일구면 보다 건강하거나, 신선하거나, 맛있는 제철 식재료를 선택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언제 심어 어떻게 수확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수 있는데, 이즈음 판매되는 쪽파 중 길이가 긴 것일수록 시설재배(하우스에서 재배) 한 것일 가능성이 많다. 반대로 오동통 짧을수록 노지에서 겨울을 난 것일 가능성이 많다. 물론 100% 그렇다는 아니지만. 이 점을 염두로 쪽파 고르는 데 참고하면 되겠다.




며칠 전 김치로 담글 쪽파를 손질하며


올 봄, 며칠 전 담근 쪽파김치


쪽파김치를 담그며.


알싸한 쪽파김치의 매력에 대해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쪽파김치를 어떻게 담글까? 이참에 레시피 몇 개를 뒤져봤더니 어머나! 마늘과 생강, 양파를 넣는다는 레시피가 꽤 보인다. 그런데 쪽파나 부추처럼 매운 성질의 채소로 김치를 담글 때는 마늘과 생강처럼 매운 성질의 채소는 곁들이지 않아야 한다. 매운맛에 또 다른 성질의 매운맛을 더한다? 맛은 상상에 맡긴다.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쓰다. 감칠맛도 떨어진다"


당근을 채 썰어 넣는다는 레시피도 보인다. 그런데 당근의 성분 중 하나인 아스코비나아제(ascorbinase)는 비타민 C를 파괴, 김치에 넣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쪽파든 대파든, 파와 궁합이 맞지 않는 대표적인 식품은 미역이다. 파에 많은 인과 유황이 미역의 칼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나물 같은 것을 무칠 때 양념은 쪽파 혹은 대파 흰부분이 적합하다. 대파 파란잎에 있는 끈끈한 성분이 나물맛을 변하게한다. 시원한 국물맛을 내려면 대파 흰부분,감칠맛나게 하는 찌개에는 대파 파란잎부분이 적합하다.


부추김치든 쪽파김치든 고춧가루를 홀랑 벗어버린 것은 맛이 없다. 그래서 내가 시도해 본 것은 풀을 되직하게 쑤어 넣는 것. 김치를 담글 때 찹쌀가루로 써야 한다? 밀가루로 써야 한다? 는 상관없다. 김치에 넣는 풀은 발효를 도와 익었을 때 맛있게 하기 위해서이니 말이다. 국물이 자박자박한 김치가 좋다면 풀을 묽게, 국물이 거의 없게 담그려면 되직한 죽처럼 쑤어 넣으면 된다.


참고로 김치에 풀을 쑤어 넣는 이유는 발효 때문이다. 유산균의 먹이가 되어 맛있게 익게 한다.


대부분의 레시피에 액젓으로 파 흰 부분 위주로 30분쯤 절인 후 고춧가루로 버무리라고 되어 있다. 이런 방법도 나쁘진 않던데, 김치도 바쁜 와중에 담가 먹는 일이 많다 보니 쪽파를 전혀 절이지 않고 그냥 액젓을 넣고 버무릴 때가 많다. 그래도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간 싱겁게 버무리면 회생할 기회가 있지만 좀 짜다 싶은 것은 회생이 복잡하다. 난, 약간 적은 양의 액젓으로 일단 버무린 후 통에 담아 하루 정도 식탁에 올려둔다. 그런 후 맛을 본다. 이때 좀 싱겁다 싶으면 굵은소금 몇 개를 던져 가볍게 섞은 후 2~3통으로 나눠 보관하며 먹는다. 이때 김치통에 랩을 씌운 후 뚜껑을 닫으면 냉장고 냄새 방지에 도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친정엄마 부재 위로한 가을 옥수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