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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여니맘 Dec 09. 2022

친정엄마 부재 위로한 가을 옥수수

몇년 간의 망설임 후 심어 본 가을 옥수수, "이젠 해마다 심으려고요"



한달 전인 11월 6일에 수확한 옥수수

    

몇 년째 텃밭을 일구고 있다. 텃밭을 일구다 보면 종종 의외의 것들을 알게 되거나 얻곤 한다. 한 달 전인 11월 6일, 뜻밖에 수확한 옥수수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선물이 되었다.  


옥수수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도 좋아했고 50대 중반을 넘긴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오래전, 정확하게 더듬어 보면 첫째가 돌쟁이였던 1993년 여름, 누구네 집에서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지?' 감탄스러울 정도로 정말 맛있는 옥수수를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소금 한꼬집만 넣고' 쪘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말 맛있게 쪄진 옥수수였다. 


그때 알았다. 옥수수는 수확 후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떨어진다는 것을. 수확하자마자 삶은 것이 최고로 맛있다는 것을. 


이유를 조금 설명하면, 옥수수는 수확 후 30분 가량이 지나면 당분이 전분으로 바뀌기 시작, 24시간쯤 지나면 당분이 모두 전분으로 바뀌기 때문이란다. 음식을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소금을 넣으면 단맛이 더 강해진다는 것을. 그날 먹은 옥수수가 그토록 맛이 있었던 것은 갓 수확해 당분이 많은데 소금 한꼬집을 넣었으니 더욱 맛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하간 그토록 맛있는 옥수수를 맛본 이후 '언젠가 텃밭을 일구게 되면 옥수수만큼은 심어 먹어야지'라고 품고 살았고, 드디어 텃밭을 일구게 된 첫해 희망에 부풀어 옥수수를 심었다. 그런데 이십 포기에서 거둔 것은 손바닥 길이보다 짧은 옥수수 몇 개가 고작. 게다가 알도 워낙 시원찮게 맺혔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거름도 원체 부족하고, 웃거름도 안 줬던가 보네? 어지간히 자랐을 때 비료 몇 알씩 멀찌감치 묻어주면 어지간해선 잘 자라니 다시 심어 보그라.”(친정엄마)  


그때 친정엄마가 이렇게 용기를 준 덕분에 이듬해 다시 심었는데, 농사에 자신감을 가질 정도로 많이 열려줘 몇 해째 계속 심어 따먹고 있다. 옥수수를 원체 좋아하다보니 찐 옥수수 파는 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곤 했더랬다. 옥수수 수확철이 되어 날 옥수수가 팔리는 것이 보이면 꼭 사다 쪄먹곤 했다. 그럼에도 늘 옥수수에 고팠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렸을 때 먹은 그맛이 고팠다. 오랫동안 계속됐던 그 고픔을 내 텃밭에 몇년 째 심어 실컷 따먹고서야 비로소 잠재우게 되었다. 


2021년 옥수수.


2022년 옥수수. 위에 핀 것이 수꽃이다.
2021년 수확 1차
2022년 수확 1차


최근 몇 년 엄마와 영상통화를 자주 하곤 했다. 사실 남편이나 아이들은 물론 그 누구와도 영상통화는 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친정엄마와 영상통화를 자주 했던 것은 텃밭에 자라고 있는 내 작물들을 보여 주고 싶어서였다. 농촌에서 나고 자랐다. 60년 정도 농사를 지었으니 어지간히 질렸을 것인데, 엄마는 내 텃밭에 자라는 것들을 보여 주면 "고것들 참 이쁘게 자라는 것이 기특하고 대견타(대견하다)", 언제나 이렇게 칭찬하곤 했다. 

     

"옥수수 씨 사다 놓은 것 있드나? 꽃 피기 전에 그 옆에 또 심으면 먼저 심은 것 따 먹고 허전할 즈음 익어 따먹을 수 있다 아이가. 옥수수는 부지런만 떨면 한해 다섯 번도 따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자라니 심어보그래. 따자마자 삶아서 냉동실에 두면 겨울 내내 먹을 수 있다 아이가!"(친정엄마)     


전화를 끊을 즈음이면 엄마는 지난해에도 몇 번 말했고, 며칠 전에도, 엊그제에도 했던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지난 해 여름에도 그랬다. 그럴 때마다 그러겠다고 약속하며 끊곤 했지만 단 한 번도 심지 못했다.      


엄마는 실제로 일 년에 몇 번씩이나 옥수수를 심어 찬바람이 날 때까지 친정에 가는 자식들에게 옥수수를 맛보여주시곤 했다. 그래서 엄마 말을 들으며 '그래 심어 볼까?' 마음 먹곤 했다. 그런데 주변 사람 모두 봄에 심어 여름에 따먹는 것으로 끝, 친정엄마처럼 먼저 심은 옥수수가 어느 정도 자랐거나 꽃 필 무렵 추석이나 가을에 따먹을 요량으로 심는 사람은 없었다. 마나님이 옥수수를 좋아해서라며 해마다 아마도 어림짐작 이백 포기는 족히 심는 옆밭 이씨도 봄에 한번 심는 것으로 그치곤 했다.

 

'일 년에 몇 번 심어 먹는 것은 전라도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이곳(경기 북부)에선 글쎄?'


지방마다 날씨 조건이 다르다. 심을 수 있는 것도 다르고 심는 시기도 다르다. 당연히 그에 맞춰 심어야 어느 정도의 수확이 가능하고 말이다. 추석에 가는 자식들에게 옥수수를 맛보여주시곤 해서 엄마의 말에 믿음이 갔지만 이렇게 망설이다가 심을 때를 놓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해마다 되풀이하던 망설임을 접고 한여름에 모종을 만들어 말복이 지난 후 옮겨 심었다.


    


올해 말복 무렵 만든 옥수수 모종. 9월 중순에 옮겨 심었다.
10월 중반 무렵?의 옥수수 상태.


올 1월, 친정엄마가 돌아가셨다. 사십 구재를 지내고도 엄마의 부재가 선뜻 실감 나지 않고 있었다. 함께 산 날보다 떨어져 살아온 날이 많다.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엄마에게 보여 주곤 하던 텃밭 작물들이 눈에 띄게 자라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전화를 시도하다가 '이제는 보여드릴 수 없구나'를 울컥~! 하기를 여러차례 되풀이하며 확실하게 실감하게 되었다.      


"너희 자랄 땐 그래도 군입거리가 풍족한 편이었지. 큰 것들 키울 땐 내 밭 한 조각 없다 보니 자식들 먹인다고 고구마 하나 묻을 수가 있나 옥수수 심을 데가 있나. 하도 아쉬워 집 곁에 겨우 몇 포기 심어 먹이곤 했지 않았더나."(친정엄마)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복숭아 과수원을 시작했다. 엄마가 일 년에 몇 차례씩 옥수수를 심기 시작한 것은 과수원 덕분에 살림이 어느 정도 나아진 후였다. 올여름에서야 다 먹지 못하고 이웃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할 정도로 옥수수를 많이 심었던 어느해 여름 엄마와 옥수수 껍질을 까던 때가, 그때 한숨을 내쉬며 하시던 말이 떠올랐다. 


'옥수수라도 실컷 먹이고 싶었던 마음이 절실하셨나보다. 그래서 그렇게 여러 차례 심고 심었던 거구나. 그래서 나한테도 했던 말을 하고 또 했던 거고'

    

이처럼 이제는 돌아가시고 없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반쯤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반쯤은 엄마에 대한 막연한 죄송함으로 심은 옥수수는 그러나 비실비실, 좀처럼 자라지 않았다. 


조금씩이나마 자라는 것이 뿌리는 내린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만 지나면 쑥쑥 자라겠지' 믿었다. 그러나 봄에 심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도무지 눈에 띄게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옥수수를 볼 때마다 이웃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부끄러운 한편 꽃이라도 필 수 있으려나? 공연히 심었나? 도리어 옥수수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고구마 캐던 날의 옥수수

 

“그것 봐. 내가 뭐랬어. 벌써 10월인데, 이렇게 자라서 꽃이라도 피겠어? 전라도하고 이곳은 날씨 자체가 다르잖아. 이쪽 사람들이 몰라서 안심었겠냐고. 안되니까 안 심었겠지. 작년처럼 무를 심었으면 겨울 내내 먹을 수나 있지!”(남편)     


사실, 초록색이 그리 느껴지지 않고 자라는 것이 가망이 없어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하자니 너무나 아쉬웠다. ‘웃거름이라도 줘볼까?’ 미련이 생겼다. 하지만 이처럼 가져봤던 미련까지 접을 정도로 너무나 부실하게 자랐다.

   

“이것(옥수수)도 아예 뽑아 버릴까? 곧 서리도 올텐데 이쯤되면 희망이 없는 거잖아”(남편)  


10월 15일에 고구마를 캤다. 고구마 줄기를 다 걷어낸 남편이 이처럼 물었다. 

       



11월 6일, 뜻밖의 옥수수를 따다가 찍은 사진


11월 첫째 주 일요일, 모아둔 음식물 쓰레기를 가지고 텃밭에 갔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길에 옥수숫대 옆을 지나려니 고구마 캘 때보다 열매가 훨씬 커져 있었다. 그래도 이미 포기하고 말았던지라 지나칠 생각이었다. 옥수수를 만져본 것은 순전히 습관 때문에. 그런데 옥수수를 만진 그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제법하게 영근 옥수수알이 만져졌기 때문이다.  

    

삼십 개가량 땄다. 이십 포기 정도 심었으니 한포기에 2개씩 달린 것이다.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동안 뜻밖의 선물에 설렜다. 싹이 텄으니 어떻게든 자라 꽃도 피고 열매를 맺은 생명력이 감탄스러웠다. 전체적으로 작은 몸통이었지만 알알히 박혀 있었다. 여름 옥수수와 달리 벌레먹은 것도 하나도 없었다.  

   

“뽑지 않고 두길 잘했네. 그때 웃거름이라도 줄 걸 그랬어. 고생깨나 한 것 같아 미안하네. 자식들 먹여 살린다고 바짝 오그라든 부모님 같아 보여 안쓰럽고!”(남편)

        

“그러게. 적은 햇빛으로 영글게까지 한다고 아등바등, 얼마나 힘들었을까? 올해는 내가 너무 무책임하게 심은 것 같아. 뿌리내렸으니 어떻게든 살아낸다고 힘들었을 것 같아. 내년에는 엄마 말대로 옥수수 꽃이 필 때 심어봐야겠어. 퇴비도 좀 더 많이 넣어주고. 웃거름도 주고. 정말 기대하지 않았거든. 옥수수가 참 고맙다. 자연도 고맙고. 그지?”(나)       


애초 음식물 쓰레기만 버리고 오려고 갔던지라 남편에게 전화해 담아갈 것을 부탁했더니 달려와 옥수수를 담으며 감탄하며 말했다. 남편이 오는 동안 누렇게 말라가면서도 옥수수알을 영글게 한 옥수숫대를 건들며 옥수수를 따 껍질을 벗기며 엄마와의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던지라 이렇게 대답해 놓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여름에 수확한 옥수수보다 작고 알이 적게 맺혔지만 모두 잘 영글어 쫀득쫀득 맛있었다. 조건이 좋아 걸핏하면 너무 영글어 버리는 여름엔 기대할 수 없을 맛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옥수수부터 쪘다. 옥수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연거푸 맛있다며 옥수수 하나를 해치웠다. 한여름보다 조건이 좋지 못한 계절에 자라 맺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웃거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종자가 그래서일까? 작은 서리가 더 영그는 것을 멈추게 했나? 한결같이 먹기 딱 좋을 정도까지만 영글어 맛있을 수밖에 없는, 야들야들하면서 쫀득쫀득, 정말이지 객관적으로 맛있게 익은 옥수수였다.   

    

“어떻게든 자손을 남기려고 에너지를 모두 짜내 바짝바짝 말라가면서도 열매 맺어 영글게 한 생명력이 경이롭네요!”(지인)     


옥수수 좋아한다는 지인을 만날 일이 있어 수확한 그 날 쪄둔 옥수수 몇 알을 건네며 뜻밖에 수확한 옥수수 이야기를 했더니 이처럼 말한다. 그가 옥수수 맛을 전해왔다.         

 

“옥수수가 찰지면서 야들야들하니 정말 맛있던데요. 서리 맞아서일까요? 서리 맞은 감이 맛있잖아요.”(지인)    


'내년에는 초당옥수수를 심어볼까? 아마도 그냥 옥수수보다 성장부터 수확까지가 빠르니 훨씬 잘 자라지 않을까? 마당에 놓은 화분에 옥수수 몇개 심어 비오는 날 옥수수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소리를 들어볼까? 옥수수잎에 스치는 바람 소리도 들을 수 있을지 몰라!'


요즘 이런 생각에 좀 바쁘다.             



옥수수 암꽃

옥수수는 멕시코와 안데스산맥이 원산지란다. 원산지 야생에서는 '테오신테라'라는 옥수수의 친척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중기인 16세기 후반,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부들에게 잡초제거는 큰 숙제다. "뽑고 돌아서면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와 같은 말이 회자할 정도로 여름 잡초의 생명력은 특히 강하다. 뽑은 잡초를 제대로 놓지 않으면 다시 뿌리를 박고 자랄 정도로 정말 잘 자란다.


그렇다면 잡초는 어찌 그리 잘 자라는 것일까? 햇빛을 훨씬 많이, 그리고 빨리 흡수하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잡초들이 작물들보다 훨씬 빨리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옥수수도 잡초처럼 햇빛을 빨리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작물이란다. 친정엄마처럼 조금만 부지런 떨면 몇 번이고 심어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인 것이다.


옥수수는 어지간하면 잘 자란다. 안정적으로 자라기 시작하면 곁가지가 생긴다. 이걸 잘라줘야(순치기) 한다. 퇴비를 듬북 넣고 심었어도 어른 무릎 높이 정도로 자랐을 때 웃거름을 넣어줘야 열매를 잘 맺는다. 옥수수는 대개 2포기씩 심는데, 서로 의지가 되어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고자란다. 옥수수와 옥수수 사이에 짧게 키워 거둬 먹는 열무나 땅콩처럼 낮게 자라는 것을 심어도 된다. 다만, 봄에 심은 옥수수는 7월 말쯤 수확하게 된다. 반면 땅콩은 10월 중순 이후 수확할 수 있다. 그러니 옥수수 수확 후 심을 것을 고려해 심어야 한다.  


옥수수는 수확 후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떨어진다. 수확 후 30분쯤부터 옥수수의 당분이 전분으로 바뀌기 시작, 24시간쯤 지나면 모두 전분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갓 수확한 옥수수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쪄도 맛있다. 그러니 정말 맛있는 옥수수를 먹는 방법은 따자마자 쪄먹는 것이다. 여름이면 생산지에서 삶아 주는 조건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는데, 정말 맛있는 옥수수를 먹고 싶다면 이 방법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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