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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파파 Dec 07. 2020

우는 아빠

그래도 아직 애들 앞에서 운 적은 없다

이 글을 올리는 2020년 12월 기준 40개월 된 아들과 21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에피소드들은 어제 얘기일 수도 있고 1년 전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2년째 반복되는 얘기일 수도 있고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여자든 남자든 울컥하는 건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이

내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터.

감정이입.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흔한 촉매제다.


스스로 느끼기에 난 잘 운다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눈물이 좀 있는 편이다. 자주 울지는 않지만 울면 크게 우는 치명적 단점을 지녔다. 제대로 발현된 건 다름 아닌 내 결혼식 때였다.


내 결혼식 이전에 타인의 결혼식을 갔을 때도 종종 울컥했던(드라마를 보면서 우는 그런 감정이었다) 경험이 있었기에 난 사실 내가 결혼식에서 울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목표는 '울지 말자'가 아니라 '예쁘게 울자'였다. 뭔가 벅차오르는 감정 속에 눈망울이 촉촉해지는 그런 정도.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고개는 들지 못했고 결국 쏟아냈다.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드레스가 엉키지 않도록 정리해주는 헬퍼 분들은 보통 신부가 우는 상황에 대비해 손수건을 휴대한다. 내 결혼식 때는 우는 신랑을 보다 못한 헬퍼가 손수건을 건네주셨다.


결혼한 지 4년 여가 흐른 지금도 그때 왜 그렇게 울었는지 묻는 이들이 있다.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 관계의 이들도 있을 거다. 그 질문을 하도 많이 받다 보니 스스로 상황을 복기해뒀다.


시작은 신부 친구들의 축가였다. 아내의 대학교 친구들인 그들은 대학 시절 아내와 함께한 사진들을 영상으로 편집해 띄우고선 노래를 불렀다. '저런 시절을 뒤로하고 결혼을 하는 아내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감정이입을 했다. 일부러 한 게 아니고 나도 모르게 그리 됐다. 이어서 신부 측 부모님께 인사. 장모님이 우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웬일인지 장인어른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때 다시 감정이입. '하나밖에 없는 딸을 시집보내는 아비의 심정은 어떤 걸까'. 그때 신호가 왔음을 느꼈다. 추스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어진 내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순간에는 부모님 심정에 감정이입을 한 건지 그냥 내 영혼에 감정을 쏟아낸 건지 암튼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과도한 눈물은 안타깝게도 콧물을 데려온다. 그렇게 난 '폭풍 오열한 신랑'이 됐다.


내 아이들이 우는 아빠를 닮았는지는 아직 확인 불가다. 어린아이들은 수시로 울기 마련이니까. 어느 날 아이들은 감정이입이 아닌 현재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한 눈물을 흘린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근데 또 그게 정말 감정이입 없이 순수한 자신만의 감정일까란 궁금증도 들었다. 감정이입의 다른 말은 공감인데 공감 능력이 뛰어날수록 감성도 풍부하고 눈물도 많은 게 아닐까란 생각에서다. 정확히 가를 순 없지만 아이들은 커가면서 스스로의 감정이 아닌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을 통해 눈물을 흘리는 비율이 커질 거다. 부디 아이들이 흘리는 눈물이 스스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깊게 공감하는 데서 오는 열매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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