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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파파 Mar 19. 2021

자녀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라고?

의미가 없는 고민이면 어쩌지, 그게 두려운 거 같기도.

이 글을 올리는 2021년 3월 기준 43개월 된 아들과 24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에피소드들은 어제 얘기일 수도 있고 1년 전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2년째 반복되는 얘기일 수도 있고요.


어린아이라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그런 말들이 있다. 부정어가 주는 부정적 느낌이 강해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말. '아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할 필요가 없다'는 표현은 매우 부정적이다. 상식을 가진 어른이라면 품어선 안 되는 인식처럼 보인다. 


아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말에 깔린 생각이 뭔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종종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동등한 인격체로서 타인을 대한다는 말은 그의 행동을 보편적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폭력을 쓰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은 비윤리적인 행동을 잘못이라고 여긴다. 그런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건 벌하거나 피하거나 같은 것들이다. 나쁜 건 나쁜 거니까. 이 지점에서 의문이 든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부모는 어떤 잣대를 대야 하는 걸까. 


가장 흔한 상황은 거짓말이다. 아들이 뽀로로를 세 편 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고 아빠랑 목욕하러 가겠다고. 아들이 뽀로로를 시청하는 동안 난 청소를 했다. 옆에 있진 않았지만 세 편이 끝났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이내 아들에게 가서 다 봤으니 씻으러 가자고 했다. 리모컨을 들어 버튼을 누르려 하자 아들이 안된단다. 엄마가 껐으면 좋겠단다. 엄마를 불러왔다. '세 편 다 봤으니 TV 꺼줘'라고 말하니 아들이 울먹거리면서 막아선다.


"엄마, 아직 세 편 다 안 봤어"

(엄마) "다 본 거 아니야?"

"응, 아빠가 잘못 안 거예요."

(아빠) "왜 거짓말해. 아까는 다 봤는데 꺼주는 것만 엄마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그랬잖아."


난 버럭하고 말았다. 아들이 처음부터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거짓말을 작정한 건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TV를 좀 더 보려 상황을 질질 끌다 보니 그리 된 걸 수도 있다. 사실 상황 속 매 순간이 고민이다. TV를 꺼주는 것만 엄마가 해줬으면 좋겠다는 순간에 엄마를 부르는 게 맞는 건지, 아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면 일단 따라주는 게 맞는 거 같지만 말바꾸기와 거짓말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 '아니야, 그건 약속하지 않았잖아'라며 불용하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너 왜 거짓말하냐'며 직접적으로 따지는 것도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 자녀의 행동을 나쁜 행동이라고 공식적으로 규정해버리면 상처가 되고 더 큰 반발과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건 아닐는지.


근본적으로는 자녀의 거짓말에 대해 어느 수준의 잣대를 대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동등한 인격체로 대한다면 거짓말에 대해서는 마땅히 지적하고 합당한 벌을 내리는 게 맞다. 어른이라면 다음부터는 상대를 안 할 수도 있지만 자식이라면 그러지는 못하니. 하지만 아직 인격이 미성숙한 존재임을 고려한다면 판단 기준은 보다 너그러워야 할 것이다. '아직 어려서 그래'라는 말속에는 어리니까 좀 봐줘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동등한 인격체로 보긴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사랑하되 아직 성장 중임을 고려해 관대함을 가져야 한다 정도로 절충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 하나마나한 소리 같아서 썩 와 닿지 않는 건 나만 그런 건가. 그게 정답이라면 애초에 고민이 필요 없던 것 같기도 하고. 


숨을 고르고 문득 나를 다시 바라봤다. 나는 왜 '자녀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라'는 말에 반감을 가졌던 걸까.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여겼으면 가만 안 뒀지. 내 자식이니까 참는 거지. 근데 왜 자꾸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라 그래. 남의 속도 모르고. 차라리 애니까 봐주라 그래. 왜. 그건 교훈적인 말이 아니라서 못하는 거야 다들.'


혼자 떠들다 스스로 위로해본다. 차라리 내가 솔직한 거라고. 이렇게 혼자 복잡하게 고민인데 고민 자체가 의미가 없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고민을 이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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