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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 Sep 16. 2020

시작

종례시간 읽어주는 담임의 편지

안녕 얘들아. 오늘 하루 잘 보냈니? 매일 종례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너희에게 편지를 읽어 줄 거야. 이 시간이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할 거야.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이는 너희에게 딱딱한 소리만 늘어놓는 선생님이 이해되지 않는 날도 많겠지. 하지만 우리가 함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알차게 보내보자. 선생님에게 매일 2분만 부탁해. 그럼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할게. 


오늘은 선생님이 이 편지를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얘기해줄게. 선생님이 처음 근무를 하게 된 학교에서 꼭 본받고 싶은 선생님 한 분을 만나게 되었어. 수업, 학생 생활지도, 업무 등 모든 것이 완벽한 분이셨어. 아직 학교에서 일한 지 일 년 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그분처럼 완벽한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어. 그때는 몰랐어. 열매가 익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야. 마음만 급했던 나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어. '더 완벽하게 더 잘해야 해.' 외치며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어. 그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조언과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몰라.


선생님의 착한 마음은 어디에서도 통할 거예요.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 잃지 말아요.


그런데 작년에 그분이 갑자기 돌아가셨어. 완벽해 보였던 삶에도 틈이 있었나 봐. 스스로 삶을 포기하셨어. 선생님은 큰 충격을 받았고 내 삶도 흔들리는 기분이었어. 교직의 스승으로 여기며 존경하고 있던 분을 잃어버렸으니까. 여름이 오면 시원한 그늘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고 싶던 이야기들을 모두 마음에 묻어야 했어. 그분을 잊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그분을 기리기 위해 살아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어. 그때 그분이 학생들에게 쓰시던 ‘담임의 일기’가 생각이 났고, 무작정 나도 학생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 


그렇게 쓰기 시작한 편지가 두 번째 해를 시작한다. 왜 시작하셨는지는 알 수가 없어. 일기의 내용을 떠올려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셨던 것 같아. 아픔에서 배우는 인생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어 하셨던 거라 생각해. 두 해가 지나면서 내가 왜 편지를 쓰는지는 확실해졌어.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내가 그려왔던 교사로서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어. 늘 서툴고 어려웠던 학생들과의 관계가 이제 조금 방법을 알 것 같아. 그렇게 선생님은 나의 선생님에게 삶의 지혜를 한 가지 배웠어. 

 고단한 너희의 하루를 위로해주고 때로는 삶의 쓴소리도 해줄게.
그리고 너희의 담임 선생님으로서 너희의 편에 있기를 약속할게.


이 시간을 이제 웃고 울며 채워가려 해. 우리가 함께 웃는 날도 있을 거고, 서로가 미워 눈살 찌푸리는 날 도 있을 거야. 그 모든 날들에 너희의 선생님으로 한 결 같이 함께하기를 다짐한다. 내 품으로 들어온 아이들아 환영한다. 안녕.


아직은 이 시간이 부끄러운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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