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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 Oct 23. 2020

부모님의 이혼을 결심하다

종례시간 읽어주는 담임의 편지

어릴 때 부모님이 참 많이 싸우셨어. 싸우는 이유도 다양하셨지. 근데 10년이 넘게 싸우시니 싸우는 이유도 결과도 모두 똑같더라. 부모님의 싸움에 선생님은 완전히 지쳐버렸어. 어느 날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어.


엄마. 너무 힘들면 이혼해.


큰 결심 뒤에 한 얘기였어. 아직 고등학생이던 내가 동생들 모두를 보살피며 살겠다는 생각으로 드린 말씀이었어. 내 꿈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동생들과 함께 살겠다는 그런 계획을 세웠었지. 선생님의 학창 시절은 가족에 대한 걱정과 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어.

중학교 때였어. 밤새 부모님이 싸우셔서 눈물범벅이 된 채 부모님을 말리다 학교에 갔어. 음악시간에 노래를 배우는데 곡조가 어찌나 슬프던지 한 시간 내내 울며 노래를 불렀었어. 퉁퉁 부은 피곤한 눈으로 수업을 듣는데 하루 종일 슬퍼서 창피한 줄도 몰랐어.


고3 때는 부모님의 관계가 극으로 치달았어. 내 수능이 끝나면 이혼하자는 말이 오고 갔지.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자습을 하다 혼자 눈물을 삼키는 날은 일상이었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가에 눈물이 고여. 상처가 너무 깊어 마음이 만신창이 돼버린 듯한 느낌이야.


내 마음고생이 무색하게 부모님은 아직도 함께 계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 여전히 날이 선 말들은 오고 가고 싸울 듯 말 듯한 냉기도 도는데 두 분은 그게 편하시다니 더는 할 말이 없어.


엄마, 이혼하지 않을 거라는 거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어?


선생님 부모님이 조금 덜 다투며 사셨다면 나는 어떻게 컸을지 궁금해. 욕심 많고 승부욕 강하던 나는 지금보다 더 난사람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생각의 폭과 마음의 깊이는 훨씬 좁았을 것 같아. 나는 내 동생들보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맏이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어려움이 뭔지 모르고 자라 작은 위기에도 흔들리는 사람으로 컸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세상에 태어나 겪는 모든 일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아.


아직 살 날이 더 많은 선생님이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얘기해보자면 인생에서 힘든 순간과 고비는 끊이지 않는 것 같아. 그때 무너지지 말고 너희의 길을 걸어가면 빛나는 미래가 펼쳐지지는 않아도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어른이 되어있을 거야.


너희가 험난한 길을 걷고 있을 때 선생님이 작은 불빛이 되어주기를 약속해. 제일 좋은 건 마음이 편안한 거지. 오늘도 평안한 하루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주말 잘 보내. 안녕.


2020.10.23. 단단한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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