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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 Sep 25. 2020

선생님으로 산다는 것

종례시간 읽어주는 담임의 편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꿈꾸게 된 건 초등학교 때부터였어. 이제는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많은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이끌어가는 선생님의 모습이 멋져 보였던 것 같아. 선생님은 다행히도 나를 응원해주시는 선생님들을 만났고 그런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어. 나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그런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는 꿈을 키웠지. 학교에서 늘 만나는 선생님들은 조용히 내 마음속에 멋진 어른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어. 그래서 여러 가지의 꿈이 지나가는 동안 선생님이라는 꿈은 마음 한편에 남아있었어. 


선생님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어. 사범대학에 진학할 것 인지 마음의 결정이 필요했어. 오랜 고민 끝에 역사교육과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지. 사범대학이라는 관문을 넘은 다음에는 너무 어려운 임용고시라는 관문이 남아있었어. 그런데 그 관문을 넘고 나니 진짜 선생님이 되기 위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어. 시험을 통과하면 모든게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막막했어. 내가 꿈꾸던 선생님과 내가 될 수 있는 선생님에는 큰 차이가 있었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생님의 역할을 고민해야 했어. 할 수 있는 것들을 아무리 잘해보려고 해도 학교 생활은 계속 엉켜가는 느낌이었어. 그럴수록 나는 내가 해야 할 것에만 집중하고 일했어. '이렇게 하면 도움이 될까? 내가 수업 준비를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할까? 내가 이런 결정을 내렸을 때 합리적인 결정일까. ' 그런데 이 직업은 학생들과 상호작용이 중요한 직업이었어. 수업도 학급 운영도 학생들과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었지. 그 부분을 내가 놓치고 시작했던 것 같아. 내가 더 잘하면,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모든 게 잘 해결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 너희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지. 

학급 경영의 비법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에 힘을 기울이고 나서 선생님으로 산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기 시작했어. 진정 너희의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었고, 응원해 줄 수 있었어. 너희와 나누는 대화가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았고, 학생과 선생님으로 만나 서로 익숙해져 가는 느낌이 좋았어. 너희는 선생님 하루의 기쁨이 되었어. 그런데 우리는 서로에게 정이 들만하면 헤어져야 하는 사이였어. 그렇게 매년 정이 들고, 보내는 일이 반복되면서 학교에 마음 둘 곳을 잃어버리고 힘들어했던 것 같아. 새로운 3월의 설렘보다는 지나간 겨울의 여운을 오래 남기는 것도 습관이 되었지. 너희가 새로운 담임 선생님에 적응하는 동안 선생님도 처음 만난 너희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어.  



선생님으로 산다는 거 일희일비하며 웃었다 울었다 하는 삶인 것 같아.


 선생님의 기쁨과 슬픔은 모두 너희에게서 만들어진단다. 오늘은 너희 덕분에 많이 웃었어. 그리고 많이 행복했어. 많이 웃는 날이 있어서 우는 날도 견딜 수 있어. 선생님이기 때문에 견뎌야 하는 일도 많아. 나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많은걸 참아야 해. 그러니까 선생님의 슬픔에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이 슬픔은 오롯이 선생님의 몫이란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선생님은 너희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거야. 너희는 아직 자라나는 중이잖아. 겪어야 할 일도 많고. 서툴기때문에 하는 실수나 잘못이 많나고 생각해. 그런걸 바로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게 선생님의 일 이기도 하고.  

선생님의 하루는 매일 에피소드가 생긴다. 


선생님의 희망사항이 있어. 제대로 된 선생님 브이로그를 찍는거야. 좌충우돌 우당탕탕 에피소드가 매일 생기는 선생님은 하루는 전혀 평온하지 않은데. 하하. 우리의 학교 생활을 생각해보면 브이로그 보다는 시스콤이 어울릴 것 같다. 근데 그래서 선생님은 학교가 참 좋아. 그리고 너희가 참 좋아. 


오늘따라 내가 선생님이라 행복하다. 이 행복한 기분으로 주말을 보내고, 너희를 만날 월요일을 기다릴게. 오늘도 수고 많았어. 잘 가렴.


2020.09.25. 행복한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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