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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 Nov 17. 2020

고백

종례시간 읽어주는 담임의 편지

온라인 클래스가 끝나고 오랜만에 만나는 우리야. 수없이 반복한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인데 오늘따라 너희를 만난다는 것이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어. 성큼 다가온 이 겨울을 우리가 처음 맞이해서 일까? 그러고 보니 너희와 선생님은 1년의 네 계절을 딱 한 번만 함께 보낼 수 있는 사이구나.


소중했던 시간의 가치를 우리는 알고 지내왔을까? 너희와 보내는 오늘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선생님은 잊고 지냈어.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난 너희를 진정으로 내 품에 안아주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은 깊어지고, 사랑이 깊어진 것만큼 아쉬움이 커진다.



    

매일 너희를 사랑하지는 않았어. 너희로 인해 힘든 날도 많았고 지친 날도 있었어. 하지만 이런 투정을 부리기엔 너희로 인해 웃고 행복했던 날들이 너무 많아. 너희와 웃고 대화하는 시간들이 일상이 되어 선생님 삶에 스미고 있었어. 그걸 조금 더 빨리 알았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그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해 아껴주었을 텐데 말이야.


약간 긴장한 얼굴로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너희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면 안도해. 오늘도 아이들이 무사히 학교에 왔구나. 그리곤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씩 부드러워져. 너희와 웃을 수도 있고 고민할 수도 있는 선생님의 역할로 몰입하게 돼. 너희가 있어야 선생님이 존재하는구나.


애써 달아나려 해도 너희가 자꾸 내 삶에 들어온다.



아무것도 모르던 신규교사 시절, 내 인생의 전부가 학생들이었던 때가 있었어. 학생의 부탁이라면 다 들어줬고, 무조건 이해해 주어야 한다 생각했어. 그렇게 교사의 삶과 나의 삶을 분리하지 못한 나는 24시간 돌아가는 기계처럼 학생들만 생각했어. 당연한 수순으로 난 지쳐버렸고 조금씩 학생들을 일로 대하는 법을 익혀갔어.


그런데 그게 나에게는 맞지 않나 봐. 매년 떠나보내는 순간이 되면 다시 못 볼 너희들의 얼굴이 둥둥 떠다녀.

그리고는 오늘처럼 후회를 한다. 아마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이 시간을 힘들어하실 거라 생각해. 힘들고 싶지 않아 멀어지려 했는데. 어느새 일 년을 지나고 보니 또 너희가 내 한 해를 만들어 주었어.


얼마 남지 않은 너희와의 시간, 정리하는 마음으로 추억을 차곡차곡 담아 가고 싶다. 너희는 '2020년에 만났던 담임선생님이 우리를 참 많이 아껴주셨어' 하고 기억할 수 있는 끝을 맺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아이들아. 선생님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잘 가렴.


2020.11.17. 너희가 보고 싶은 담임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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