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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 Sep 17. 2020

추억이 남다.

종례시간 읽어주는 담임의 편지

바람이 살랑살랑, 나무가 흔들흔들. 선선하니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나를 아프게 하는 나쁜 기억만 있다고 떠올리기 싫었던 시절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잊으려 할수록 자꾸 선명해져서 멀어지려 애썼던 기억들, 온 힘을 다해 떨쳐버리려 했던 시간들인데, 가을 타는지 그 시절이 그립다.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 내가 아껴주고 싶은 사람과 모여서 하하호호 왁자지껄 웃음을 나누던 그 순간이 왜 이렇게 그리워지는지. 그때는 피하고 싶은 자리였는데 말이야.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좋은 사람들과 하는 행복한 자리라는 것을. 그저 내 개인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하는 벅찬 시간들이라고만 생각했었어. 나를 아프게 하던 기억들을 이제는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게 되어 기뻐.


삶에서 행복한 기억 하나 늘고,
슬픈 기억 하나가 줄었다.


인생이 참 신기하다. 안 될 것 같았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시간의 힘이야. 시간이 약이라는 말 이제 알 것 같아. 내 마음에 연고를 바른 것처럼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어. 이 상처가 다 아물면 하나의 추억이 되겠지. 

요즘 너희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여린 마음에도 잘 아무는 연고를 발라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이 너희 나이였을 때를 생각해보면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가 생기곤 했던 것 같아. 그래서 상처 받지 않으려고 나를 꽁꽁 숨기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웅크려있기만 했었어. 상처는 흉터를 남기니까 더 상처 받고 싶지 않았어. 할퀴고 뜯긴 상처없는, 티 없이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런데 흉터도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되었어. 그리고 치유된 내 마음은 나를 더 단단하게 해준다는 걸 알았어. 

너희의 상처도 그렇게 지워질 수 있어. 지금 너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당장은 도망치고 피하고 싶은 일일 테지만 한 숨 한 번에 눈 질끈 감고 건너는 강처럼 그렇게 흘려보낼 수 있어. 그러니 숨어 있지말고, 외면하려고 하지도 마. 이 상황과 시간을 마주하도록 해. 

지금은 많이 아플 거야.  


하지만 아픈 너희의 마음을 외면하지 말고 토닥토닥 위로해주렴. 상처를 알고 마주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치유가 되니까. 너희의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는건 자기자신 뿐이란다. 오늘 이 이야기를 들은 너희들은 선생님보다 조금 더 빨리 알게된거야. 그리고 앞으로 남은 많은 시간들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은 오늘 추억 속의 사람들에게 안부를 물어야겠다. 그리고 감사를 전해야겠다. 나의 추억에 남아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준 너희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구나. 고마워 얘들아. 우리 앞으로 남은 시간, 서로의 추억이 되도록 노력하자. 아끼고 아끼는 나의 제자들. 오늘도 수고 많았어. 잘 가렴.  


너희의 추억이 되고픈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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