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훌리 Oct 20. 2020

일체유심조

종례시간 읽어주는 담임의 편지

선생님은 꽤 긴 시간 동안 교사 임용을 준비했어. 낮은 학점과 적은 티오는 선생님을 자꾸 주눅 들게 했어. 학점은 내가 역사 공부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고, 적은 티오는 그런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어. 내가 진짜 역사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좋아한다 하더라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한 시간들이었어.


막막함은 방황으로 이어졌어.


다른 일을 할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고 교사의 꿈을 포기한다면 평생 후회하고 아쉬워할 것 같았어. 그래서 선생님은 일단 부딪혀보기로 결심해.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 부모님께서 어렵게 마련해주신 돈 300백만 원을 들고 노량진으로 갔어. 사실 공부에 전념하지는 못했어. 많은 수험생들 틈에서 자꾸 작아지기만 했고, 내가 아는 것보다 내가 모르는 것이 더 크게 보였어. 경제적으로 힘들기도 했고 갑자기 안 좋아지신 어머니 건강에 한참을 우는 날도 많았어. 그 해에 예상치 못하게 1차에 합격해. 하지만 선생님은 계속 불안했어. 1차 성적이 낮을 것 같았고 그래서 최종 합격은 어려울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만 계속 들었어.  결국 최종 합격을 하지 못하고 낙방했어.


행복이 눈 앞에서 멀어지는 기분이랄까.


바로 눈앞에 펼쳐졌던 꿈의 세계가 한순간에 멀어지는데 너무 힘들었어. 역사책만 봐도 마음이 아파 다시 공부할 수 없을 것 같았어. 하지만 고지가 눈 앞에 있기에 포기할 수는 없었어. 그래서 정말 마지막 최선을 다하길 결심했어. 다시 불합격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보자! 하고 결심했어.


그 해에 선생님이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난 1등으로 합격한다.'였어. 내 마음가짐은 전년과 달랐고 난 어느 해보다 자신감 있게 공부했어. 내 마음속에 있던 불안들이 사라지고 나니 공부에 더 전념할 수 있었고 공부가 재미있어졌어.  집 근처 도서관을 다니고 가끔씩 친구와 커피 한 잔 하는 일상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지금 생각해도 선생님은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날들인 것 같아. 어느 때 보다 합격에 대한 자신이 있었지만 막상 최종 합격을 하니 눈물이 났어.


이후로 선생님이 늘 하는 말이 있어.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일이라는 불교용어야. 선생님은 실력이 부족해 떨어진 게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떨어진 거였어. 그 후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해 너희도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생각해봐.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그럼 너희가 몰랐던 마음속의 힘이 생겨날 거야.


오늘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있었니? 그렇다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시작해보자.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은 게 인생이니까. 이제 막 발을 떼는 너희의 인생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칠게. 수고 많았어. 잘 가렴.


   


이전 16화 부모님의 이혼을 결심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