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집이 준 소소한 자랑거리
어린 시절의 소소한 자랑거리가 마음속의 멋진 무늬로 남아있는 일화(逸話)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내게도 홀로 흐뭇하게 반추(反芻)하는 소중한 오래된 무늬가 있다.
아버지는 공부와 학습에 대해 특이한 기준을 고집하셨는데 그때마다 나는 학교에서 난처했다.
중학교 일 학년 생의 지리 수업시간 교재이자 숙제용 도구인 백지도(白地圖) 책은 신입생이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했고 모두들 학교 앞 서점에서 백지도 책을 샀다. 전국의 어느 중학교에서나 신입생이 백지도책을 다른 참고서와 함께 사서 수업받을 준비를 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백지도책은 수업 진도에 맞추어 각종의 지리 지식을 써넣으며 공부할 수 있게 이름 그대로 하얀 종이에 한반도와 세계 여러 곳의 지도 윤곽과 경계만이 그려진 지도책이다. 육지의 윤곽만 있을 뿐 내용은 한 글자도 없는 그것을 책이라 불러야 할지 공책이라 불러야 할지 좀 애매한 교재이다. 그래도 서점에서 파는 것이니 책이었을 것이다.
은행알이 담긴 물레를 돌려 구멍으로 나온 은행알에 적힌 번호대로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중학교에 입학했다. 첫 지리 시간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백지도책의 실물을 선생님이 보여 주셨고, 그 책 없이는 지리 공부도 숙제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학교 앞 서점 좌판에 그 백지도책이 높이 쌓였다.
‘아버지 백지도 사야 해요. ’
아버지는 나의 눈을 빤히 바라보시더니
‘텅 빈 백지도를 왜 사야 하느냐?’고 내게 물으셨다. 너무 빤한 것을 물어보시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말이 없자,
‘어차피 지리를 공부하는 것이니 네가 지도를 그려서 공부해라’ 하고는 말씀을 끝내셨다. 그 시절 형제들은 뭘 사달라고 엄마 아버지를 재차 조르는 일은 없었다. 웬만한 불편은 불편으로 여기 지도 않던 착한 시절이었다.
비싸지도 않은 백지도 책도 안 사주는 아버지가 서운하여 심통을 부렸지만, 어린 마음에도 한편으론 아버지 말씀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빈 공책에 지도의 윤곽을 그대로 베껴 그리기로 했다.
나에게 자신의 백지도책을 빌려준 친구는 등하굣길 길동무 중 한 명이었는데 그 친구의 얼굴은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방과 후 태권도 수련을 함께 하고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하는 먼 통학길을 걸어가며 주로 나의 공상과 상상의 허풍을 재미있어하며 들어주던 마음씨 착했던 아이였다.
친구의 백지도 책장에 먹지를 대고 그대로 빈 공책에 본을 떴다. 꼬박 이틀 동안 백지도 책 전체를 빈 공책에 옮겼는데 낡은 먹지를 대고 잉크 떨어진 볼펜을 눌러 옮겼으니 지도 윤곽이 희미하였다.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실 때마다 희끄무레한 선을 이용하여 색연필로 멋지게 그림처럼 채웠다. 여러 색깔을 섞어 산맥과 강과 바다를 실감 나게 그렸다.
선생님은 그때마다 나를 칭찬해 주셨고 칭찬에 으쓱해져 지리공부를 참으로 재미있게 열심히 했다. 학생이 백지도에 적어 채워야 하는 세계의 무수한 나라와 주요 도시와 강과 산맥과 평야를 몽땅 외웠고, 정성스럽게 백지도 공책에 그려 넣고 적어 넣었으니 지리 공부는 중학생 수준을 넘어 제대로 넘치게 한 셈이었다.
중1 때 지리선생님의 인자하신 얼굴이 생각난다. 성이 한씨였고 학교의 보이스카웃 지도 선생님을 겸하고 계셨다. 학년을 마칠 무렵 한선생님은 잊지 못할 특별한 상을 내게 주셨다. 색연필과 지우개 등 학용품이 가득 든 작은 상자였는데,
‘이렇게 정성스럽게 지리공부를 한 네가 기특해서 특별히 상을 줘야겠다’며 교탁 앞으로 나오게 하셨다. 급우들 앞에서 칭찬과 함께 나의 백지도 공책을 두고두고 후배들에게 자랑하겠다며 당신께 달라고 하셨다.
나는 기쁘게 나의 즐거움이 가득 담긴 백지도 공책을 드리고 선생님이 주신 상품을 받았다. 집에 와서 아버지께 자랑했더니 빙긋이 웃으면서 칭찬하셨다.
‘지리 공부 제대로 했구나’
아버지의 무심한 듯 아들들에게 내미는, 고약한 기분이 들게 하는 사고(思考) 기준과 고집은 중학생의 백지도책으로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학교마다 배우는 교과서가 다르고, 교과서에 더해 추가로 선정해서 함께 공부하는 주요 과목별 참고서도 학교별로 각각 달랐다. 교과서는 사주셨지만 참고서는 아버지께서 근무하는 학교의 교과 선생님들로부터 얻어다 주셨다. 선생님들 사이에선 흔히 그렇게 하셨던 것 같다.
우리 학교에서 쓰는 참고서와 다행히 같은 책일 때도 있지만 다른 출판사의 참고서를 받고서 불평하면
‘어차피 참고서이니 이 책으로 참고해도 된다’로 훈계하시는 것이다.
중학생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참고서가 아예 없는 녀석들도 반에 몇 명은 있었으니까. 고등학생이 되니 상황이 달라졌다. 참고서가 없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숙제하기도 어려웠다. 일 학년 때 영어 참고서로 선택된 책은 새로 나와 인기가 있던 E참고서였다. 들고 만 다녀도 폼이 날 만큼 표지도 멋지고 드물게 매 페이지가 2색도로 인쇄된 꽤 비싸고 두툼한 책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내게 내미신 새책은 나온 지 오래되고 형들도 공부한 전통의 S 참고서였다.
‘아버지, 영어 참고서는 수업시간에 함께 읽고 외워야 하니 같은 책이어야 돼요.’
아버지는 나의 항변을 간단히 물리치셨다.
‘명사 대명사 동사 배우는 영어 문법책 순서는 어느 참고서나 다 똑같다. 영어 배우는데 집중하면 된다.’
영어 시간에 선생님이 내가 펴 놓은 새 책을 들어 보셨다. 그리고는 조용히 물으셨다.
‘왜 이걸 샀냐?’
‘산 게 아니고 아버지께서 주셨습니다.’
‘아버지 선생님이냐?’
‘예’
상황 짐작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 책 보랴 옆 친구 책을 보랴 영어시간이면 바빴다. 쉬는 시간에 친구책을 빌려서 미리 읽어보며 일 년이 휙 지나갔다. 영어는 좋아하기도 했지만 영어 성적만큼은 괜찮았다.
돌이켜 보면, 아버지께서 의도하셨던 아니든, 제법 머리가 총명할 때 취미처럼 즐겁게 몰입했던 백지도 공부나 엉뚱한 참고서로 수업을 따라가던 추억은 학교를 졸업하고 무언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하려는 일의 핵심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주어진 상황에서 즐겁게 할 수 있을까를 상상하는 자극제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상한 고집이 세월과 함께 마음속의 멋진 무늬로 남아 있을 것이다.
글을 정리하면서 문득, 엔지니어라면 일하고 싶어 하던 기술회사에서 신명 나게 근무할 때 회사 업무 개선 제안 최고상을 받은 것을 아버지께 자랑 겸 보고 드려야 했는데 깜빡 잊고 칭찬 찬스를 놓치게 한 것이 아쉽고 죄송하다. 어머니가 가신 후로는 아들들은 자랑할만한 자신의 성취도 자랑할 데가 없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