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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앙성 산문 27화

소일(消日)과 충일(充日)

전원살이 팁 4 - 익어가는 삶

by 시준

[지난가을 '전원생활 팁 Part 1-겪어보고 터득한 나름의 지혜'라 소제목을 달고 마치 꼭 읽어봐야 하는 글인 양 팁 1,2,3 식으로 번호까지 붙인 글(앙성산문 제6화)을 쭉 읽어주신 분들은 기억하실 것이다.

전원생활 팁 1. 머슴이 봄에 게으르면 가을에 편하다 ('과유 불급' '과잉생산 금지'를 이렇게 유혹하듯 제목을 붙였네요.)

전원생활 팁 2. 적자생존의 철학 (사는 곳의 자연조건에 맞는 것과 함께 하자는 얘기였지요.

전원생활 팁 3. 꽃을 보면 주렁주렁 열매가 보이는 상상력 ( 길게 보고 심고 가꾸자는 얘기였는데 아무래도 제목이 좀 어울리지 않았네요)


관찰하고 보고 느낀 것을 하나하나 글로 저장하는 재미로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남은 4회의 연재 기회를 무엇을 얘기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전원살이 팁 Part 2 격으로 '일상에서의 사유와 나의 생활 철학‘을 얘기하고 싶었다. 물론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얘기이다. 그래서 이번 글의 소제목을 Part 1의 팁 3에 이어 전원살이 팁 4로 붙였다. ]


사회적 분류 기준과 각종의 조례에 따라 노인으로 이미 규정이 되었으면서 새삼스레 ‘노인이 된다는 상상’을 한다는 게 우습지만, 대개는 이렇게 자신만은 예외적으로 아주 천천히 늙을 인간인 것처럼 얘기한다. 아니면 반대로 자신만 세월의 맞바람을 맞아 더 늙어버린 것인 양 침울 모드로 빠져드는 분도 있다. 노년의 상태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프로그램이 심어진 생리적이고 심리적인 변화이고 모든 인류에 제법 공평한 알고리듬(algorithm)이다. 그래서 내가 인생의 이 모드로 들어섰다고 해서 억울해할 일도 저항할 일도 아니다.


전원생활, 귀촌이 화제가 되면 대부분 자연스레 노년의 생활을 떠올리는 것을 본다. 아직은 귀촌이라고 하면 은퇴, 퇴직자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젊은 나이에 귀촌한 경우는 사연 있는 예외로 짐작하는 것 같다.


뭉뚱그려서 ‘직장생활’이란 것으로 일생의 경력을 쌓다 퇴직한 또래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이들이 하던 일을 더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서도 정년이 되도록 질리게 했던 일을 더하고 싶은 심리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과 일상을 구분하는 관성이 계속 작용해서일까?


시골집에 터 잡고 살아보니 우선 일에 대한 개념이 바뀐다. 일이 일상이 되면 일이란 게 특별할 것이 없다. 눈을 감기 전까지는 일을 하실 것 같은 마을의 팔순, 구순을 바라보는 형님들과 아주머니들을 보면 사실 일상을 변함없이 살고 있을 뿐이다. 다른 눈으로 보면 살아있는 동안에는 일과 일상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노동에서 소외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일을 하는 노인들이 ‘일과 일상을 구분’해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도시 노인들보다 말년이 더 평안해 보인다면 너무 주관적인 의견일까?

활기차게 도시의 편의를 만끽하는 분들을 보면 부럽지만 나는 내 능력과 취향을 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멋진 실버타운에서, 요양시설에서 뵙고 마주치는 노인들이 외로움 속에 더 시들어가는 것처럼 느낄 때 귀촌해서 살아가는 선택에 위안을 얻는다.


반면, 노인이 되어 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고장’이라는 명제에 부딪힌다. 모든 기계는 성능 유지를 위한 보수 노력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해도 고장을 피할 수 없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세포의 노화는 누구도 비켜가지 않는다. 그리고 죽기 전에 대개는 이런저런 치명적 질환과 고장을 겪는다. 아무리 건강 우선으로 건강에 주의하며 산다 해도 일상의 마모는 어쩔 수 없다.

살아있는 동안 어딘가 고장 나면 고쳐야 한다. 따라서 몸의 고장을 고치는 병원 근처에서 살아야 한다는 삼단 논법이 통한다. ‘병원 없는 시골에서 아프면 어떡할래’ 하는 지인들의 걱정에 ‘난 안 아플 거야’ 하는 만용을 부릴 수도 없다. 이미 응급실로 실려가 본 경험도 있는 주제라 현실적인 고민이긴 하다. 아직은 차로 오분 거리 면소재지에 경찰서, 119, 보건지소 있는 것에 위안 삼고 믿고 산다. 비정상 마모와 고장을 예방하고 고치는 노력도 노년의 주요한 일이다.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살아갈 날이 많은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드는 '노년'과 더불어 매우 아이러니 한 단어가 ‘소일(消日) 거리’다.

따라서 내가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소일거리를 묻는 것이다. 의무와 책임이 없는 일을 하는 일상의 활동을 ‘소일거리’라고 이해한다. 뭔가를 하다 보면 하루가 사라졌다고 느끼는, 마치 낙엽을 태워 없애는 것 같은 ‘소일’ 이라니 와닿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일 대신 충일(充日)이라는 말을 대신 사용한다. 충일거리는 하루를 충실히 채우는 일이 된다. 나이 들어 갈수록 점차 하는 일의 양은 줄이겠지만 충일거리를 찾으려 한다. 오지랖 넓어 주책바가지라는 얘기를 들을까 걱정이 될 때까지는 충일거리를 잘 찾아서 하루하루를 꽉 채우고 싶다.

소일과 충일은 무엇이 다를까? 호기심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일의 충일거리에 맘 설레며 오늘 제시간에 잠을 청하고 싶다. 충일거리가 있는 삶- 그래서 내일 또 모레 해볼 일을 생각하고 구상하는 시간이 좋다. 그래서 더욱, 조금이라도 뇌의 연상 능력과 학습능력이 감소하는 속도가 늦춰지기를 소망한다.


소일하는 노인은 시들어가고 충일하는 노인은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실감하기에 나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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